등록 : 2014.12.01 19:38
수정 : 2014.12.01 19:38
방송 발전을 거스르는 퇴행적 현상이 한국 공영방송에 또 일어나고 있다. 새누리당 의원 155명이 ‘공공기관 운영에 관한 법률’(공공기관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주요 내용은 <한국방송>(KBS)과 <교육방송>(EBS)을 공공기관으로 지정하려는 것이다. 지난 2006년 노무현 정부가 공공기관법을 제정하면서 양 방송사를 공공기관 범주에 잠시 포함시켰다가 바로 제외한 바 있는데, 현 새누리 정권에서 이를 다시 취소하려는 것이다.
개정안의 가장 큰 문제는 정부통제를 강화하려는 것이다. 그동안의 정치적 통제에 더해 기획재정부가 그것의 기능과 존재 방식에 대해 결정력을 행사하는 경제적 통제를 꾀하고 있다. 경영 투명성과 합리성 제고는 당연히 중요한 문제이다. 공공기구는 일반적으로 종사자나 규제자의 이익에 포박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떠한 책무성 확보 방안도 언론자유, 특히 공영방송에게 핵심적인 독립성과 상충하지 않아야 한다.
공영방송을 전기, 수도 등과 같은 공익설비사업으로 보는 것은 원초적인 시각이다. 한국의 공영방송은 과거 오랜 독재정권 동안 이렇게 취급되었다. 종사원은 기자든 피디든 기술진이든 주사, 사무관 등의 공무원 신분을 지니고 있기도 했다. 이러한 구조에서 공영방송은 ‘정권의 나팔수’ 역할을 하며 공정성의 싹을 잘랐으며, 선전 방송에 시청자를 유인하기 위해 품격을 내버렸다. 현재 한국방송에서 보는 비공영적인 요소 대부분은 공익설비사업으로 공영방송을 자리매김했던 어두운 과거의 유산이다. 서구 사회가 초기부터 이것을 ‘공공영역’, 즉 시민들이 의견을 나누고 경합하는 장(場)으로 취급해 온 것과 대비된다. 한국도 1987년 민주화 운동 이후 이 기구를 국가와 시민사회의 중간지대에 자리매김하고자 노력해왔다. 공영방송을 공공기관 규제 대상에서 제외한 것은 이러한 변화의 상징이었다.
공영방송을 수도나 전기를 관리하는 방식으로 할 수는 없다. 이 사회기구에 요구하는 경영의 합리성은 적은 금액으로 많은 생산을 해 내는 ‘효율성’이 아니라 주어진 사회적 목표를 얼마나 달성했는지를 나타내는 ‘효과성’이다. 효율성은 창의성의 목표와 어울리지 않는다. 방송사 초기에 권총을 차고 다니던 한 대표자는 절약을 강조하면서 드라마 대본을 쓸 때 원고지에 빈칸을 띠우지 말고 빼곡히 채워 쓰라고 지시하였다는 증언도 있다. 유신 때 ‘공무원 다방 출입 금지령’이 내렸는데 기자나 피디가 단속에 많이 걸렸다고 한다. 공공기관법은 공영방송의 창의성을 위협하고 독립성을 해칠 것이다.
|
강형철 숙명여대 미디어학부 교수
|
한국방송은 현재 감사원의 감사, 방송통신위원회의 방송평가와 재허가 심사, 국회의 예결산 심사와 국정감사, 수신료 금액 승인 등의 규제를 받고 있다. 공영방송으로서의 독립성과 책무성을 동시에 추구하기 위해 여타 공공기관과는 다른 방식들을 발전시켜 온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 대한 이해 없이, “두 발로 걷는 것은 다 사람이다”라는 식의 단순명제의 적용은 매우 위험하다. 급변하는 미디어 환경 아래 한국의 공영방송이 사회문화적 목표와 경제적 목표의 조화를 이루며 성장하는 방안을 찾기도 정신이 없을 판이다. 그런데 집권당이 미래지향적인 일들에 대해선 잘 모르는지, 알고도 안 하는 건지, 아니면 공영방송 통제 필요성을 강하게 느꼈는지 케케묵은 카드를 꺼내 들었다. 필자 또한 지난 8년 동안 먼지가 쌓인 파일을 뒤적이며 과거의 싸움을 다시 시작하려니 한숨이 먼저 나온다.
강형철 숙명여대 미디어학부 교수
광고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