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4.09.11 19:12
수정 : 2014.09.11 1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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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행훈 언론광장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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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방송>(KBS) 이사회가 5일 이인호 서울대 명예교수를 새 이사장으로 전격 선출했다. 조부의 친일 경력과 뉴라이트 역사교과서 개정을 주도해온 그의 이력을 고려할 때 이 교수는 공영방송 이사장을 맡기에는 적합지 않다는 반대의견이 언론계에 강하다. 공영방송은 방송의 독립성과 공정성을 생명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청와대의 특별한 배려 탓인지 이 교수는 이사에 추천된 지 몇일 만에 이사장에 선출됐다. 일본군 장교 박정희의 딸 박근혜와 할아버지가 친일 거물인 이인호 사이에는 ‘뉴라이트 공감대’가 형성돼 있었던 것 같다는 후문이 나돈다.
뉴라이트 성향의 이 교수의 한국방송 이사장 인선은 정권의 공영방송 장악 의도를 노골화하는 것으로 비치고 있다. 정권이 공영방송을 언론자유와 민주주의를 후퇴시키는 도구로 악용하지 않을까 우려해 반대하는 목소리가 높다.
무엇보다 당장 새 이사장과 한국방송 기자·피디 관계가 불과 물 사이라는 사실이 걱정된다. 문창극씨가 총리 후보자로 지명된 직후 한국방송 기자들이 “한국이 일본의 식민지가 되고 남북이 분단된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말한 문 후보자의 강연 영상을 입수해서 방송했다. 이것이 문 후보자의 낙마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많은 국민이 이 방송을 보고 분노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교수는 문 후보자 강연에 감동을 받고 이런 사람이 “낙마한다면 이 나라를 떠날 때라고 생각하게 됐을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보수우파 인사들 사이에서는 흔히 볼 수 있는 반응이었다.
그러나 언론계의 반응은 전혀 달랐다. 한국방송의 문창극 보도는 방송기자협회에서 주는 ‘이달의 방송기자상’, 한국방송기자협회의 보도상, 한국기자협회의 ‘이달의 기자상’ 등 각종 기자상을 휩쓸었다. 당연한 결과라고 본다. 그런데 이 교수는 정반대의 반응을 보였다. 의식이 다른 사람들이 한 지붕 아래서 같이 일하게 됐으니 분란이 일 것이 뻔하다. 어떻게 이런 인사를 했을까. 이인호 이사장 체제의 앞날이 불안하다.
한국방송은 이명박 정부 때부터 정부에 장악돼 그 선전 도구 구실을 해왔다. 박근혜 정부에서도 달라진 게 전혀 없다. 프랑스에서도 우파의 사르코지 대통령이 방송을 장악하려 해 방송기자들의 저항이 있었다. 그래서 사르코지와 맞선 사회당의 올랑드 후보는 “당선되면 언론의 독립을 보장하는 대통령이 되겠다”고 공약했다. 그리고 2012년 대통령이 되자 약속대로 대통령의 공영방송 사장 지명권과 3명의 방송위원회 위원 지명권을 폐지하도록 법을 개정했다. 위원장 1명만 대통령이 지명할 수 있게 했다. 그리고 방송위원을 여야 동수로 하고 공영방송 사장은 상하 양원의 문화위원회에서 3분의2 다수로 선출하도록 했다. 여당이 방송을 장악할 수 있는 소지를 없앤 것이다. 이래야 공영방송이 독립을 유지할 수 있고 민주주의가 정상적으로 운영될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런데 박근혜 대통령 후보는 대선을 9일 앞두고 공개한 정책공약집에도 구체적인 방송정책을 담지 않았다. 당선 뒤 공론장을 통해 논의를 구체화하겠다는 입장이 고작이었다. 그리고 취임 1년 반이 지난 지금까지 이명박 정부의 ‘방송장악정책’을 유지·강화하고 있다. 만약 언론장악 의도가 없다면, 빨리 민주적이고 구체적인 공영방송정책을 국민 앞에 내놔야 할 것이다.
장행훈 언론광장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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