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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4.08.21 19:59 수정 : 2014.08.21 19:59

성한표 언론인·전 한겨레 논설주간

요즘은 언론이 사회의 빈축과 지탄을 받고 있는 데다, 부끄러운 모습을 보이는 전직 언론인들도 종종 나타나, 나를 기자출신이라고 소개하기가 꺼려진다. ‘전직’이 이런 정도라면, ‘기레기’(기자+쓰레기)라고 불리며, 스스로도 그렇게 부르는 현직 기자들의 참담한 심정은 다시 말할 나위가 없을 것이다. 그런데 사실은 기자들 중에 정작 ‘기레기’라고 조롱받아 마땅한 경우는 많지 않을 것이다.

‘기레기’라는 사회의 조롱에 대한 언론계 내부의 대응이 나오고 있다. 하지만 언론에 큰 변화가 일어날 것 같은 기대가 생기지 않는 것은 대응들이 초점이 어긋났거나, 역부족으로 느껴지기 때문이다. 우선 기자협회와 신문협회 등 5개 언론단체가 제정했다는 ‘재난보도 준칙’이 있다. ‘기레기’가 재난보도에서만 적용되는 조롱이 아닐진대, 언론 단체들이 재난보도에 한정하여, 보도준칙을 내놓은 것은 적절한 대응이 아니다. 보도준칙도 ‘재난현장 취재협의체’ 조항을 제외하면, “기자들이 올바른 태도로 잘 보도해야 한다”는 원론적인 규정들이 대부분이다.

더욱이, 매체의 성격이나 논조가 천차만별인 언론사들이 취재협의체를 구성하는 것이 가능할지도 의문이다. 설사 협의체가 구성되더라도, 취재와 보도의 ‘통제’에 방점이 찍혀, 바람직한 재난보도와는 거꾸로 갈 수도 있다. 취재의 과열경쟁을 방지하기 위한 ‘대표취재’나 당국의 브리핑 중심 취재 등이 정부의 정보 통제를 쉽게 만들 위험이 있는 것이다. 이러한 위험은 세월호 참사 보도를 통해 이미 드러났다.

보도준칙은 ‘기레기’라는 비난이 기자들의 취재경쟁 과열로 인한 무례하고 거친 태도가 피해자 가족들을 분노하게 만들었다는 진단에서 출발하고 있다. 이런 진단의 타당성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유족들이 분노한 더 큰 이유는 그 많은 기자들과 신문 방송들이 참사 원인과 구조과정의 ‘진실’을 밝히는 데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하고, 문자 그대로 ‘쓰레기’같은 기사들만 양산했다는 데 있다. 결국 보도준칙이란 것은 5개 언론단체가 가만히 있지 않았다는 알리바이를 만드는 것 이상의 의미가 없을 것 같다.

또 하나의 대응은 언론시민 현업단체 대표들의 유가족 단식 농성 동참이다. 여기에는 용기 있는 기자들의 참여가 줄을 이을 것이다. 이런 동참은 생사의 경계를 넘나드는 단식을 이어가는 유가족들에게 큰 격려가 된다. 하지만, 진실을 파헤치는 한 줄의 기사가 이분들에게 동조 단식보다 더 큰 힘을 줄 수가 있다. 기자들이 언론사 내부에서 겪는 좌절감을 거리에 나와 격렬한 언론운동으로 푸는 것은 이해할 만 하다. 그러나 그 힘을 바깥이 아니라, 내부에서 폭발시켜야 한다.

기자들은 ‘기레기’라는 자기 조롱과 패배주의에서 빨리 벗어나야 한다. 언론사 안팎에서 가해지는 압력과 과열경쟁, 취재인력 부족 등 객관적 조건에 문제의 원인을 돌리기 전에 자신이 최선을 다하고 있는지를 먼저 반성해야 한다. 진실을 파헤치는 기사를 쓰지 못한 것이 정말 압력 때문인지, 아니면 겁이 나거나 취재가 어려워, 지레 포기한 것인지를 되짚어 보아야 한다. 또는 압력보다는 스스로 빠져 있는 정치적 편향성이 더 큰 문제가 아닌가를 생각해 보아야 한다. 자조는 그 자체만으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지만, 이것이 자신을 추스르는 에너지로 바뀌면 큰 변화로 이어질 수가 있다.

성한표 언론인·전 한겨레 논설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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