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4.04.10 19:20
수정 : 2014.04.10 2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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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형철 숙명여대 미디어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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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한 다시보기 사이트에서 한국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를 본 수치가 20억건을 넘었다고 한다. 총 21편짜리였으니 한 회당 평균 1억명 정도가 봤다는 이야기이다. 외국인들이 한국 드라마에 이토록 열광했다는 사실도 놀랍지만 인터넷을 이용한 다시보기만으로 이런 현상이 빚어졌다는 것이 흥미롭다. 지금까지 생방송이든 재방송이든 텔레비전 프로그램은 실시간으로 시청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하지만 다시보기, 즉 주문형 비디오(VOD)가 시청 방식의 주도권을 쥐게 될 날이 멀지 않은 것 같다. 원하는 시간에 ‘한번에 몰아보기’, ‘싫은 장면 넘겨보기’, ‘빨리 감아 보기’ 등을 통해 시청자는 돈을 더 내고라도 시간 통제력을 갖고 싶어 한다.
미국의 다시보기 인터넷 서비스 업체인 ‘넷플릭스’는 지난해와 올해 2월 각각 자체 제작한 드라마 ‘하우스 오브 카드’ 시즌 1과 시즌 2 시리즈 13편씩을 한 번에 업로드하였다. 미국 정계의 권력 다툼을 생생하게 그린 이 드라마는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등도 즐겨본다고 한다. 텔레비전에 방송했던 것을 나중에 내려보는 것이 아니라 ‘다시보기’ 서비스에서 ‘처음 보는’ 프로그램이 방송편성의 새로운 장을 연 것이다.
한국의 주문형 비디오 서비스 시장도 매년 20% 이상씩 급성장하고 있다. 지상파 방송사들도 이곳에서 돈을 더 벌어보려 애를 쓴다. 가격도 많이 올렸고 예전에는 본방송 후 2주가 지나면 아이피티브이(IPTV) 등에서 무료로 보게 했는데 이제 그 기간도 3주로 늘렸다. <문화방송>(MBC)과 <에스비에스>(SBS)는 ‘푹’(POOQ)이라는 별도의 지상파 방송 다시보기 서비스도 만들었다. 문제는 이러한 유료화 추세에서 이를 즐길 수 있는 계층과 그렇지 못한 계층이 갈리게 된다는 점이다. 유료화는 처음부터 지녀왔던 보편적 서비스 의무에서 방송을 점점 더 멀어지게 하고 있다.
그래도 최후의 보루는 역시 수신료로 운영하는 공영방송이다. 그러나 현재 <한국방송>(KBS) 홈페이지에서 저화질만 무료이고 고화질은 돈을 내야 한다. 한국방송은 ‘푹’ 서비스에도 참여하고 있다. 최근에는 무료 저화질 서비스에 광고를 넣는 방안도 고려하고 있다고 한다. 실시간 시청자가 줄고 젊은 사람들은 다른 매체로 이탈하고 있다. 이런 와중에 공영방송이 다시보기 서비스를 부가적인 수익창출 수단으로만 사용하고자 하는 것이 아닌지 참 안타깝다.
세월이 변해도 다른 방송사들과 구별되는 고품질 콘텐츠를 보편적으로 서비스해야 한다는 공영방송의 명분은 결코 변하지 않는다. 현 상황에서는 지상파 방송이든 새로운 융합매체든 가리지 말고 적극 활용하는 것이 이를 달성하는 방법이다. 무료 지상파 채널을 하기 위해 다시보기 서비스 등에서 돈을 번다는 ‘지상파 채널 중심’ 패러다임을 버려야 한다. 수신료와 해외판매로 재원을 조달하고 국내에서는 모든 자사 매체의 무료화를 지향하는 영국 <비비시>(BBC) 사례를 생각해보자. 첫 방송 후 2주간 무료로 제공하고 오히려 그 이후에는 유료화하는 것도 생각해 볼 수 있겠다. 비비시도 ‘아이플레이어’(iPlayer)와 ‘유뷰’(YouView) 등의 인터넷 다시보기 서비스를 일정기간 무료로 제공한다. 가끔씩은 다시보기 서비스에서 먼저 방송하고 지상파 채널에서 재방송하는 발상의 전환도 기대해본다. 보편적 서비스의 확대는 위기 상황에 처한 공영방송의 탈출구이며, 적정한 수신료 금액과 바람직한 성과가 선순환하게 하는 출발점이다.
강형철 숙명여대 미디어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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