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4.03.13 19:52
수정 : 2014.03.13 1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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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행훈 언론광장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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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25일로 박근혜 정부 출범 1주년을 넘겼지만 나라가 아직도 안정을 못 찾고 어수선하다. 국가정보원의 대선 개입을 둘러싸고 국론이 갈라져 있기 때문이다. 10일에도 인천 부평1동 성당에서 부정 선거를 규탄하고 민주주의의 회복을 기원하는 시국미사가 열렸다. 박근혜 대통령의 진지한 사과와 이에 상응하는 행동이 없는 한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상황이 이렇게 된 데는 정부가 장악한 방송 등 ‘친박 언론’ 책임이 크다. 언론이 청와대와 국정원을 성역처럼 받들고 그들의 잘못을 문제삼지 않아 일어난 현상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선거를 며칠 앞두고 국정원이 인터넷 댓글로 박근혜 후보 선거운동을 한다는 야당의 고발로 경찰이 수사에 나섰다. 그러나 경찰은 거짓 수사 결과를 발표했고, 언론은 그 발표를 그대로 옮기면서 야당이 근거 없는 고발을 했다고 오히려 역공을 폈다.
친박 언론 탈선의 극치는 <조선일보>의 채동욱 검찰총장 ‘혼외 아들 폭로’다. 국정원 대선 개입 수사가 원칙대로 진행된다면 박 대통령이 자리를 지키기 어렵게 될 수도 있었다. 조선일보는 채 전 총장을 찍어내줌으로써 박 대통령에게 큰 은혜를 베풀었다.
이와 관련해 두 가지 의혹이 제기됐다. 하나는 10년간이나 아무도 모르고 있던 ‘혼외 아들’의 존재와 신원을 누가 어떻게 알아냈느냐는 것이다. 본인 허락 없이 개인의 신상 정보를 조회하는 것은 불법이다. 조선일보의 힘만으로는 어려운 일이다.
또 하나는 혼외 자식 존재는 채 전 총장의 직무와는 아무 관계가 없다는 것이다. 다만 그런 사실이 공개되면 사회적 이미지에 상처를 줄 수 있다. 거취에 영향을 줄 수 있다. 채 전 총장은 특수한 상황에 있었다. 불법 선거 사건을 수사하는 검찰총장이었다. 고로 그에게 불리한 사생활을 공개하고픈 세력이 있다면 ‘혼외 아들’을 사회문제화해서 검찰총장 자리에서 그를 찍어내려는 사람들일 것이다. 조선일보도 그런 동기를 어렵지 않게 파악할 수 있었다. 폭로를 통해 그가 물러난다면 조선일보는 역사적인 대선 불법 개입 수사를 좌절시켰다는 비난을 피하기 어렵다. 언론 윤리상 보도해서는 안 된다는 일이다.
그러나 조선일보는 채아무개군의 존재를 대서특필했다. 그 여파로 채 전 총장은 자리에서 물러났고, 지휘탑이 무너진 검찰의 국정원 수사는 와해 상태가 됐다. 조선일보 보도가 언론계에서 강한 비난을 받은 것은 그 때문이다.
누가 조선일보에 채군의 정보를 제공했을까? 맨 먼저 국정원과 청와대가 의혹의 대상으로 떠올랐다. 검찰보다 더 강한 권력층이 정보 출처였다면 수사는 쉽지가 않다. 그래서 지금 지지부진 상태인 것으로 보인다. 어쩌면 영원히 소스를 찾지 못할지도 모른다. 조선일보는 외부에서 얻은 것이 아니고 자사 기자들의 취재로 찾아낸 특종이라며 두 기자에게 1급 특종상을 수여했다.
그런데 2월 말 미국 국무부의 인권보고서가 발표돼 조선일보가 거듭 난처하게 됐다. 국무부 인권보고서는 한국 검사들이 “채를 사임하도록 압력을 가하기 위해서 국정원이 한 보수 신문(조선일보)에 그 정보를 흘린 것으로 믿고 있다”고 밝혔다. 그게 사실이라면 조선일보는 국정원이 흘린 정보를 보도함으로써 국정원 대선 개입 사건 수사를 좌절시키는 데 결정적 공을 세운 셈이다.
한국 민주주의의 앞날이 걱정스럽다. 국민이 친박 언론을 부단히 감시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이유다.
장행훈 언론광장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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