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4.02.13 20:06
수정 : 2014.02.14 16:44
|
장행훈 언론광장 공동대표
|
나흘 전인 10일 한국언론정보학회(회장 김서중)가 ‘한국 민주주의 위기와 지식사회: 저널리즘을 통한 지성의 실천’이라는 주제로 신년 토론회를 열었다. 당면한 민주주의의 위기와 그 해결을 위한 지식인과 저널리즘의 역할을 고민해보자는 자리였다. 현재 민주주의 위기의 뿌리에는 대선 부정선거 의혹이 자리잡고 있다. 1년 넘게 국민적 저항이 계속되고 있다. 언론 상황 역시 위기다.
대의민주정치는 선거로 출발한다. 선거에 영향을 주는 선거운동에 정부기관이 개입하는 것은 민주국가에서는 용인될 수 없는 일이다. 그런데 18대 대선은 국가기관 중에서도 가장 조직이 잘돼 있고 힘이 센 국정원·군·경찰이 선거에 개입한 사실이 속속 밝혀지고 있다. 그래서 박근혜 대통령이 과연 합법적 대통령이냐는 문제 제기까지 나오는 실정이다.
10일 천주교 광주교구 정의구현사제단의 시국미사가 열렸다. 새해 들어 벌써 세 번째 시국미사다. 정규완 신부는 강론에서 지난해 1월 선거 무효 소송인단이 대통령 직무정지 가처분신청과 함께 대법원에 소를 제기한 사실을 상기시키며 “이제 우리는… 당당히 국민 주권을 행사할 엄중한 책임을 통감”, “모두가 나서 가짜 대통령을 국민의 이름으로 해임하자”고 외쳤다고 한다. 사퇴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가 국민이 나서서 해임하자는 주장이다.
그런데 이렇게 중대한 사제단의 선언이 <한겨레>에만 보도되고 다른 신문에는 일절 보도되지 않았다. 한국 언론의 치부다. ‘공영’ 방송과 거대 신문이 사실을 보도하지 않으니 사실을 정확히 모르는 지식인의 행동도 축소될 수밖에 없다.
프랑스에서도 일찍이 지식인과 언론의 역할이 문제된 적이 있었다. 1927년 작가 쥘리앵 방다는 당시 극우 신문 <악시옹 프랑세즈>의 반민주적 행동을 방관하는 지식인들의 태도를 비판하는 <지식인들의 배반>이라는 책을 써서 지식인 사회에 충격을 주었다. 5년 뒤 1932년에는 철학자이며 언론인인 폴 니장이 권력에 아부하는 언론인들을 경비견(guard dog)이라고 규탄하는 책을 써서 또 한번 파문을 일으켰다. 언론이 권력을 감시하는 감시견(watch dog)이 아니라 “주인집을 지키는 개”라고 멸시한 것이다.
한데 당시 지식인을 침묵하게 만든 원인을 캐보면 진보 지식인들을 짓궂게 공격한 우익 신문의 언론 폭력을 중요한 원인의 하나로 꼽을 수 있다.
프랑스는 해방 후 나치에 부역한 언론인들을 숙청했다. 언론계 분위기가 상당히 정화됐다. 그러나 경영이 어려워지면서 옛 사주들이 다시 신문을 장악하게 됐다. 언론인은 대자본의 하수인으로 전락했다. 언론인에 대한 국민의 불신이 60%를 넘는다.
<르몽드 디플로마티크>의 사장 겸 주필 세르주 알리미가 이런 상황을 1930년대 언론에 빗대는 <새 경비견>이라는 책을 냈다. 현직 언론인들을 실명으로 비판했다. 2년 전 이 책을 다큐
영화로 만들어 전국 극장에서 상영했다. 영화가 끝난 후에는 제작진과 관객들의 기탄없는 토론의 장을 마련했다. 영화는 프랑스 국경을 넘어 이웃 벨기에, 스위스, 독일에서도 상영돼 유럽의 언론 개혁에 상당한 역할을 했으리라는 평가가 나온다.
우리도 한국 언론의 현상을 고발하는 다큐 영화를 만들어 국민에게 언론의 실상을 알리고 그들과 토론하는 기회를 마련하면 어떨까. 언론이 좌우를 떠나 많은 지식인의 의견을 반영하고 그래서 국민 통합에 긍정적인 역할을 하는 효과를 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장행훈 언론광장 공동대표
광고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