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3.06.20 20:13
수정 : 2013.06.20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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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행훈 언론광장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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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전망대
17일부터 <한국일보>에서 세계 언론사에 기록될 불유쾌한 사건이 벌어지고 있다. 장재구 ‘사주’ 쪽이 외부 ‘용역’을 고용해서 기자들의 편집국 출입을 힘으로 막아 190명의 기자들이 쫓겨난 상태에서 10여명의 간부들이 통신 뉴스를 얽어 ‘짝퉁’ 한국일보를 만들고 있다. 사주가 기자들의 신문 제작을 방해하는, 일찍이 들어보지 못한 언론 탄압 행위다. 나쁜 사주가 좋은 신문을 망치는 한국 현실의 일단이다.
사건의 발단은 이미 밝혀진 대로다. 창업주 고 장기영 부총리의 2세들이 신문을 방만하게 운영한 후유증이다. 직접적인 원인은 한국일보 노조가 장재구 회장을 200억원 배임 혐의로 검찰에 고발하고 이에 장 회장이 보복 인사를 단행한 것이 도화선이 됐다. 유죄 여부는 검찰 조사로 밝혀지겠지만 노조와의 대립을 처리하는 데서 장 회장이 취한 행동은 그의 잘못된 언론관에서 비롯됐다.
먼저 장 회장이 언론 자유 개념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지 의문이다. 언론매체는 헌법이 보장하는 기업이다. 영리를 목적으로 하지 않고 국민의 표현의 자유를 실현하는 것을 사명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 기자다. 신문사 사주라도 제한할 수 없는 중요한 역할이다. 그런데 장 회장은 기자의 편집국 출입을 외부의 힘을 빌려 봉쇄했다. 중대한 언론 자유 침해다. <한겨레>와 <경향신문>이 한국일보 사건을 중시하며 장 회장의 태도를 비판하는 사설을 싣고 사태를 조속히 정상화할 것을 촉구한 것은 책임 있는 언론의 당연한 반응이었다. 그런데 <조선일보>·<동아일보>·<중앙일보>는 아직까지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다. 정확한 동기는 알 수 없으나 책임있는 언론의 태도라고 생각되지는 않는다.
1993년 유럽평의회는 ‘언론 윤리에 관한 결의’ 1103호를 채택했다. 결의는 제7~16조에서 각국은 언론매체의 자유를 보장하는 것으로 충분하지 않고 매체 내부에서도, 곧 편집인이나 사주 및 기자 사이에서도 자유를 보전하고 보호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신문사는 사주라고 해서 마음대로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영리 기업이 아니라 언론 자유를 실현하는 민주주의의 수단이다. 기자들도 사주의 명령에 복종하는 단순한 월급쟁이가 아니라 독립적인 편집권을 갖고 있다는 것은 민주 국가에서 인정되는 상식이다. 따라서 장 회장은 당장 편집국 봉쇄를 풀고 노조와 대화를 통해 갈등을 풀어야 할 것이다.
지난해 11월 프랑스에서 <신문(전국지) 사주들, 모두 나쁘다>라는 책이 나와 화제가 됐다. 삼성이나 현대 같은 대재벌들이 여러 언론매체를 소유하고 있는 프랑스의 언론 풍토를 다른 나라의 언론과 맞대놓고 비교할 수는 없겠지만, 저자는 대기업 사주가 지배하는 언론매체가 언론 자유를 훼손하는 일이 많다고 진단했다. 사주가 언론을 타락시키는 일이 많다는 것이다. 머독이 좋은 본보기다. 정상급 신문이던 영국 <더타임스>는 머독이 인수하면서 2류 상업지로 타락했다. 미국 <월스트리트 저널>도 머독에게 넘어가면서 신뢰를 잃었다. 언론매체를 영리 수단이나 정치적·경제적 목적 달성의 도구로 이용하는 인물이 사주가 될 때 그 언론매체는 타락의 길을 걷게 되기 마련이다. 이번 사건을 통해서 한국일보 장 회장도 그런 인상을 많이 풍긴다.
한국일보 사태를 오래 끄는 것은 한국 언론을 위해 해롭다. 국가는 언론 자유를 보장할 의무가 있다. 노조의 배임 고발을 받은 검찰은 하루속히 사건을 조사해서 한국일보 정상화에 기여할 의무가 있다.
장행훈 언론광장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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