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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3.06.06 20:03 수정 : 2013.06.06 20:03

성한표 언론인

한국 언론사는 언론인들이 당하는 끊임없는 수난과 이 수난을 딛고 일어선 사람들이 뚫고 나가는 새로운 전망의 역사다. 1975년 <동아일보>와 <조선일보>에서 해직된 기자들이 대거 출판계로 진출하면서 출판 문화의 꽃을 피우는 데 밑거름이 되었고, 한국 최초의 ‘독립 언론’ <말>이 탄생했다. 이들은 5년 뒤인 1980년 전두환 정권에 의해 해직된 기자들과 힘을 합쳐 1988년 국민주 신문 <한겨레>를 창간했다. 언론인들의 수난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고, 이들에 의해 새 언론의 지평이 계속 확대되고 있다.

이들 중에서 지금 가장 주목받고 있는 매체는 탐사저널리즘이라는 새로운 길을 걷고 있는 <뉴스타파>다. 이명박 정권 당시 <문화방송>(MBC)과 <와이티엔>(YTN) 등에서 해직당한 언론인 중심으로 출범한 <뉴스타파>는 2012년 초 첫 방송을 내보낸 지 1년 반 만에 탐사저널리즘의 위력을 보여주었다. 국제탐사보도언론인협회(ICIJ)와의 공동 작업을 통해 국외 조세회피처에 페이퍼컴퍼니(유령회사)를 설립한 한국인 명단 245명을 확보하고, 이들 중 전두환 전 대통령의 장남 전재국(시공사 대표)씨 등 18명의 명단을 이미 발표했다.

속보 경쟁에서는 방송이나 인터넷, 트위터, 페이스북 등 뉴미디어에 뒤처질 수밖에 없는 신문이 사회적 영향력을 유지하면서 살아남을 수 있는 길은 잘 훈련된 취재 인력을 활용하는 탐사보도밖에 없다. 하지만 한국에서 탐사보도에 취재력을 집중하는 신문은 아직 없다. 거대한 조직을 유지해야 하는 신문으로서는 어떤 외압과 위협에도 흔들리지 않는 독립성을 지키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문화방송에서 <피디수첩>을 담당했던 최승호 피디는 <기독교방송>(CBS)과의 인터뷰에서 “거대 조직인 문화방송에서는 보호막은 튼튼했지만 권력 견제는 불가능했다. 반면에 <뉴스타파>에서는 보호막은 취약하지만 원하는 취재를 마음대로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일반 언론사보다 <뉴스타파>가 강한 점은 외압에 흔들리지 않는 독립성 외에도 한국 언론 중 가장 강력한 리서치 팀을 보유하고 있다는 점을 들었다. 국제탐사보도언론인협회가 조세회피처 공동 취재의 파트너로 거대 언론사를 배제하고, 취재인력이 20명밖에 안 되는 <뉴스타파>를 선택한 것도 <뉴스타파>의 분석력을 평가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반면에 정치·경제·사회 등 분야별로 나뉘어 있는 편집국 조직과 출입처별로 진행되는 취재 관행이 신문이 가진 취재력과 분석력의 집중을 가로막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편집국 조직과 취재 관행을 바꾸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그래서 ‘가장 가치 있는 것들은 대개 고난이라는 포장지로 싸여 있다’는 격언이 실감 있게 들린다. 해직 언론인들이 언론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 온 것은, 잘 나갈 때는 고난이 덕지덕지 붙은 포장지를 뜯어 볼 생각이 나지 않는다는 것과 같은 이치가 아닐까 싶다.

언론사는 서로 충돌하는 이중적인 목표를 가진 조직이다. 하나는 기업으로서 살아남아 안정된 일자리를 제공하는 일이며, 이를 위해 정부와 광고주인 대기업 등 권력과 본격적으로 대립하는 일을 피해야 한다. 다른 하나는 권력을 감시하고 국민들의 알 권리를 확장하는 일이고, 이를 위해서는 권력과의 대립은 불가피하다. <뉴스타파>의 ‘성공’이 이 땅의 언론인들에게 경종과 동시에 용기를 주고 있다.

성한표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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