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3.05.23 20:38
수정 : 2013.05.23 2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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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행훈 언론광장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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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전망대
대통령까지 참석하는 5·18 민주화운동을 <조선일보>와 <동아일보> 계열의 종합편성채널(종편)인 <티브이조선>과 <채널에이>가 북한군이 개입한 불순한 사건으로 폄훼하는 방송을 내보내 많은 국민이 분노하고 있다. 지역과 여야를 초월해서 전 국민이 33년이나 한마음으로 기념해온 ‘5·18 민주화운동’이 북한군이 개입한 ‘폭동’이었다면 기념식에 참석한 대통령은 북한군이 개입한 것도 모르고 그들이 침투해서 성공한 ‘폭동’ 기념행사에 참석했단 말인가?
5·18을 폄훼하려는 증오심에 사로잡힌 나머지 보수우익이 도끼로 제 발 찍는 어리석은 광기를 부린 꼴이 됐다. 더 심각한 것은 한국에서 역사가 가장 오래됐다는 두 신문사 종편이 터무니없는 주장을 방송으로 내보낸 것이다.
두 종편의 5·18 민주화운동 왜곡보도는 80년 전의 독일 국회의사당 방화 사건을 연상시킨다. 1933년 2월27일 밤에 일어난 사건이다. 네덜란드인 공산주의자 마리뉘스 판데르뤼버가 의사당 방화범으로 체포되자 나치는 곧 있을 총선에 이 사건을 이용할 셈으로 방화의 배후에 공산당의 음모가 있는 것처럼 라디오 방송으로 선전한다. 그러고는 개인의 권리를 탄압하고 반대 신문들을 폐간하며 대중집회를 금지하고 4000명이 넘는 공산주의자와 수천명의 좌파 지식인들을 구속해서 집단수용소에 가둔다. 공산당의 음모를 선전할 목적으로 라이프치히에서 의사당 방화의 ‘재판 쇼’를 연출한다. 그러나 재판은 조직적 음모를 밝혀내지 못한다. 방화 혐의자 반 데어 루베가 끝까지 단독범임을 주장하고 공산당의 개입을 입증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결국 반 데어 루베를 단독범으로 사형에 처하고 공산당 혐의자들은 모두 무죄 석방하는 것으로 재판은 마무리된다. 하지만 나치는 그 뒤에도 의사당 방화의 공산당 음모설을 계속 우겼다. 5·18 북한군 개입설과 상통하는 대목이다.
방화사건 이후 75년이 지난 2008년 독일연방검찰은 판데르뤼버에게 해당하는 범죄는 ‘주거 침입 방화 미수’뿐이며 방화죄는 무죄라고 결정한다. 결국 모든 것은 나치가 꾸민 근거 없는 음모였다는 것이 결론이다.
조선·동아 종편의 5·18 민주화 폄훼 방송은 언론의 심각한 탈선이며 언론과 종편의 민주주의와의 관계를 재조명하게 한다. 미디어는 표현의 자유라는 인간의 기본권을 행사할 수 있게 해주는 소중한 수단이다. 그런데 사회가 변하고 발전하면서 언론이 권력화해 가고 있다. 자본이 미디어를 지배하면서 언론사주가 언론을 지배하고 언론을 경제적·정치적 수단으로 심지어 이념적 세뇌 수단으로 악용하는 불행한 사례들이 대세를 이루고 있다. 두 종편은 그 대표적인 사례의 하나에 불과하다. 언론이 민주주의를 신장하는 것이 아니라 민주주의에 위협이 되는 시대가 됐다. 시민이 언론을 경계해야 할 시대가 됐다.
국가 최고지도자를 선출하는 대통령 선거에 영향을 끼치기 위해 국정원이 조직적으로 개입한 혐의가 짙은 증거사건들이 계속 불거지고 있는데도 조·중·동에서는 이에 관한 뉴스를 보기 어렵다. 이들 언론이 보수 권력과 유착하고 있다는 의심을 갖게 하는 이유다. 특히 종편은 미국의 <폭스뉴스>처럼 민주 시민에게 필요한 뉴스나 분석을 제공하기보다는 특정 정당이나 세력의 입장을 홍보하는 매체로 변질해 가고 있다. 특히 선거 때 그 편파성이 두드러진다. 이명박 정권이 종편을 보수 언론에만 허가해 준 데는 보수 집권을 의식한 정치적 고려가 작용했다고 본다.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사이비 언론을 경계해야 할 때다.
장행훈 언론광장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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