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3.02.12 20:04
수정 : 2013.02.12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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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한표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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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전망대
무상의료 시스템을 자랑하는 영국에서 최근 전모가 밝혀진 의료 스캔들은 영국의 의료 수준이 우리와 비교해도 별로 높지 않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스태퍼드 병원의 부실 진료에 대한 공식 조사 보고서는 2009년까지 4년여 동안 부실 진료로 사망한 것으로 추정되는 환자가 수백 명에 이른다고 밝혔다. 환자들에게 마실 물도 제대로 주지 않아 꽃병의 물을 마셔야 했다는 등의 충격적인 증언도 자세하게 열거했다.
한국의 언론들이 이 사건을 대서특필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하지만 일부 병원에서 불거진 충격적인 부실 진료만 부각시킬 것이 아니라 영국 사회가 이 문제를 풀어가는 태도를 볼 수 있어야 한다. 스태퍼드 병원에 대한 정부 조사가 시작된 것은 공영방송 <비비시>(BBC)를 비롯한 영국의 언론이 유가족들이 제기한 부실 진료 의혹을 끈질기게 보도함으로써 환자의 사망률이 타 병원보다 높은 것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환기시켰기 때문이다.
병원 환자의 정상 사망률에 대한 기준과 사회적 관심은 고사하고, 사망률에 대한 병원 단위의 조사가 이뤄지고 있는지조차 의문인 한국과는 판이하다. 한국에서는 진료의 품질에 대한 시비는 처음부터 쟁점이 될 수가 없다. 진료 결과에 대한 병원 쪽의 과실을 입증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우며, 과실이 법적으로 확정되지 않은 진료에 대한 보도는 언론에서 금기로 되어 있는 것이 현실이다.
스태퍼드 스캔들에 대한 조사는 이번이 5번째다. 1년 이상 진행된 이번 조사는 1800쪽의 공식보고서를 통해 부실 진료를 은폐한 병원 내부의 비밀주의와 환자의 안전보다는 비용 절감을 앞세우는 병원 문화가 바뀌어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영국 정부는 유사한 부실 진료 혐의가 있는 병원 5곳을 추가로 조사하기로 했다. 구조적인 문제를 개인적인 비리로 축소시키는 우리 사회의 관행과 구조적인 문제가 드러나기까지 조사를 멈추지 않는 영국이 대비된다. 하지만 보고서의 어느 대목에도 무상의료 원칙에 대한 문제 제기는 없다.
그럼에도 한국의 일부 신문에서는 이번 사건을 바로 ‘무상의료의 한계’라는 식으로 몰아가고 있다. 8일치 <조선일보>는 1면 5단 기사로 스태퍼드 스캔들이 “무상의료 제도가 질 좋은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지 못해 오히려 국민 건강을 위협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는 사례”라고 보도했다. 9일치 <동아일보>는 ‘횡설수설’ 난에서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가 “영국 의료 제도의 끔찍한 실패에 사과한다”고 했으니 원죄가 무상의료에 있음을 시인한 셈이라고 엉뚱한 해석을 했다.
그런데 영국에서는 ‘무상의료’가 선택 사항이 아니라 국민의료보험이 시작된 1948년부터 지켜져 온 불가침의 원칙이다. 스태퍼드 스캔들에 대해 국민에게 사과한 보수당 소속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도 “국민의료보험이 특별한 것은 당신이 누구건, 어디 출신이건, 어떤 질병이건, 부자건 가난하건 간에 누구나 찾아가서 치료받을 곳이 있다는, 아주 간단한 원칙 때문”이라고 강조했을 정도다. 영국의 의료 수준이 우리보다 못한 측면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영국의 경우 그것은 일부 특수층이 아니라 전 국민에게 공평하게 제공되는 의료 수준이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한국의 일부 언론이 영국의 의료 스캔들을 들어 복지 강화를 요구하는 사회적 압력에 찬물을 끼얹으려는 것은 지나친 견강부회이다.
성한표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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