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3.01.29 20:12
수정 : 2013.01.29 20:12
|
장행훈 언론광장 공동대표
|
미디어 전망대
영국 언론계가 부적절한 언론 관행을 규제할 법정 독립기구를 만드는 문제로 고민하고 있다. 작년에 하원 청문회까지 열게 한 악명 높은 도청 스캔들의 재연을 막을 언론 규제 기구의 탄생을 예고하는 산고가 시작된 느낌이다. 루퍼트 머독은 그가 소유한 주간지 <뉴스 오브 더 월드>가 불법 도청을 한 사실이 폭로된 이후 여론 악화로 자신의 미디어 제국이 위기에 몰리자 169년 역사를 자랑하는 이 신문을 자진 폐간했다. 신문 부수를 늘리기 위래 왕실과 사회 명사들의 통화를 도청하는 등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은 사실이 드러난 악덕 언론에 누리꾼들은 광고 불매 운동을 벌여 <뉴스 오브 더 월드>의 문을 닫지 않을 수 없게 만든 것이다.
머독은 총선 때 휘하 신문과 방송을 이용해 선거운동을 해주는 대가로 영국의 정치를 조종했다. 그는 공식 명단에 없는 영국 정부 각료로 알려져 있다. 여야를 떠나 영국 정치인들이 머독의 과대한 미디어 권력을 제한해야 한다고 한목소리를 냈다. 도청 외에 그의 신문들이 자행해온 불법 취재 관행을 조사해야 한다는 요구가 분출했다. 이러한 분위기에서 보수당의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가 영국 언론의 문제점을 총점검하는 조사위원회 구성을 의회에 제안했다. 위원장의 이름을 딴 레비슨 위원회다. 2011년 11월 출범한 위원회가 조사를 마치고 지난해 11월29일 ‘언론의 문화 관행 및 윤리에 관한 보고서’를 발표했다.
보고서는 1900쪽에 이른다. 영국 언론의 현황과 당면한 문제점을 총망라했다고 볼 수 있다. 핵심은 언론이 언론 윤리를 준수하지 않고 선정주의에 치중하는데다 언론과 정치인들 간의 유착이 “근친상간 수준”에 이르렀다는 진단과, 언론의 타락한 관행을 규제할 독립 기구를 법으로 설치하라는 권고로 집약될 수 있다. 고등법원 판사인 브라이언 레비슨 위원장은 ‘탈선 사례들이 있지만 이런 탈선은 전체적으로 언론의 문화와 관행 및 윤리에 영향을 줄 정도는 아니다’라는 언론계의 주장을 “전적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따라서 자율 기구를 통해서 언론 윤리를 재확립할 수 있다는 신문업계의 주장을 일축했다. 레비슨 위원장은 “언론인들이 마치 언론 윤리가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선정적인 기사를 써서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고 타인의 권리를 유린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머독이 경영하는 신문들의 언론인들을 강하게 비판했다.
보고서는 지금까지 독자와 피해자의 불만을 다뤄온 자율 기구인 신문고충위원회는 기능을 제대로 못하고 있다며 법정 독립 기구로 대체할 것을 권고했다. 보수당은 의견이 갈리지만 연정 파트너인 자유민주당이나 노동당은 법정 독립 기구의 설립에 적극 찬성한다. 독립 기구는 언론의 독립을 가장 위협하는 존재로 간주되는 언론사 사주와 정치인들의 참여를 배제한다. 지난 30여년간 신문을 통해 배후에서 정치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해온 매체 사주들에게는 재앙이다. 권언 유착의 기회를 최대한 막기 위해 정치인의 참여도 배제한다.
문제는 이런 이상적인 기구를 만드는 법을 어떻게 제정할 것이냐다. 우선 거대 언론사 사주들의 태도가 부정적이다. 지금까지 언론 개혁에 마지막 장애물이 언론사 사주들이었다. 독립 기구가 설립된 이후에도 이 기구를 얼마나 생산적으로 운영하느냐도 결코 쉬운 문제가 아니다. 영국 언론의 혁신을 그린 레비슨 보고서가 어떻게 행동으로 구현될지에 세계 언론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장행훈 언론광장 공동대표
광고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