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2.12.04 20:12
수정 : 2012.12.04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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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한표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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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전망대
선거 때만 되면 신문 독자와 방송 시청자들은 천편일률적인 후보 사진, 그것도 나란히 게재된 후보 사진들을 끊임없이 대하게 된다. 주로 후보가 ‘인자하게’ 웃는 얼굴로 어린 아이나 시장 상인들과 악수하는 사진, 또는 단호한 표정으로 연설하는 사진이다. 그런데 3일 <조선일보> 1면은 요즘 흔히 보던 신문과 다르게 편집되었다. 슬픈 얼굴을 한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 후보의 큼지막한 사진만 실은 것이다.
신문을 펴 들면서 누구나 맨 처음 보게 되는 1면 중앙에 크게 실린 사진은 독자들에게 매우 깊은 인상을 남긴다. 이 자리에 특정 후보가 단독으로, 더욱이 너무 자주 보아 식상한, 웃는 얼굴이나 굳은 얼굴이 아니라 측근을 잃은 애통함을 담은 얼굴로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은 큰 행운이고, 특혜다. 이번 대선도 정책 선거라기보다는 서로를 비난하는 네거티브 선거, 다시 말하면 이미지 선거로 진행되고 있어 더욱 그렇다.
이런 사진이 유권자들에게 주는 이미지 효과는 매우 크다. 이 사진 바로 밑에는 박 후보의 한 ‘핵심 측근’이 교통사고로 사망했다는 기사가 실려 있었다. 사진이 ‘후보의 활동’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교통사고 기사와 관련된 사진이라는 편집 형식을 갖춘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 사진의 주제가 ‘교통사고’가 아니라 ‘후보’였음은 편집자 자신도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이날 조선일보 1면은 지금까지 한국 언론이 줄기차게 유지해온 선거 보도의 ‘기계적 중립’조차 깨어버린 사례다. 한국 언론의 사주나 편집·보도 간부들 역시 일반 유권자들처럼 지지하는 후보가 있고, 거부하는 후보도 있다. 하지만 이들이 만드는 신문이나 방송은 ‘기계적 중립’을 유지한다. 이들은 그것으로 공정보도를 한다고 자위한다. 이들이 생각하는 ‘공정보도’는 경합하는 후보들에 대한 선호 판단을 내보이지 않고, 똑같은 비중으로 보도하는, 기계적 균형을 갖춘 보도이다.
후보의 정책을 보도하는 경우에도 양적인 균형에만 신경을 쓴다. 정책에 대한 심층 분석과 편집자의 판단이 있어야 할 자리는 상대 후보 쪽의 객관성을 잃은 비판이 대신한다. 유권자들이 후보의 정책에 대해 분별하지 못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유권자들이 접하는 자료는 결국 언론이 만들어내는 각 후보의 이미지뿐이다. 그런데 조선일보는 기계적 중립이라는 관행조차 팽개치고, ‘멋진 이미지’를 만들 기회를 붙잡은 것이다.
편집자들은 기계적 균형을 넘어 진정한 공정보도로 나아가는 길을 모색해야 한다. 객관적 보도라는 방패 뒤에 숨지 말고 각 후보에 대한 언론사의 입장을 드러내는 것도 한 방법이다. 보도는 철저히 객관성을 유지하되 논평을 통해 후보의 정책과 문제점에 대한 자신의 판단을 분명히 밝히는 것이다. 미국의 언론들은 지지 후보를, 지지하는 이유와 함께 밝히는 관행을 유지하고 있다.
이럴 경우 유권자들은 자신이 평소 신뢰하는 특정 언론의 입장을 알고 투표에 참고할 수 있다. 각 후보에 대한 특정 언론의 입장을 알면 그 언론의 선거 관련 보도, 특히 이미지 만들기에 대한 비판적 안목이 생기게 된다. 편집자들은 어느 후보를 지지하는지가 드러나면 그 언론에 대한 신뢰에 금이 가지 않을까 걱정할 수도 있다. 하지만 유권자들이 언론을 믿지 않는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편집자들만 모르고 있을 뿐이다.
성한표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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