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2.10.09 18:57
수정 : 2012.10.09 2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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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형철 숙명여대 미디어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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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전망대
대선 보도의 편향성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 한 보수신문은 야권 후보가 공동저자로 돼 있는 논문이 주저자의 석사논문을 ‘재탕’한 의혹이 있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학위논문을 다른 사람과 함께 다듬은 뒤 그를 공동저자로 하여 논문집에 싣는 것은 바른 학술 절차다. 한 공영방송은 같은 후보의 박사학위 논문이 다른 논문을 표절했다고 보도했다. 전문 학자들은 아니라는데 기자는 그렇다고 단언한다.
검증 명분의 일방적 공격은 더 기승을 부릴 것이다. 반대로, 특정 후보에게 불리한 정당한 검증 내용은 그를 ‘미는’ 언론에서 생략되거나 ‘물타기’로 희석될 것이다. 이는 여느 때보다 유력 후보 3인의 정책 차이가 크지 않으며, 이들 모두 깨끗하고 믿을 만한 이미지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기성 정당에 속해본 적 없는 신뢰도 높은 후보가 ‘무당파’를 흡수하고 있다. 정책이 비슷할 때 유권자의 중요한 선택 기준은 인품이며, 깨끗한 이미지를 깨는 방법은 ‘오물 뒤집어씌우기’이다.
선거에서 정책이 아닌 이미지가 중요해지는 것은 세계적인 추세다. 이는 계급·지역·직업 등을 지지층으로 해왔던 기성 정당이 힘을 잃었기 때문이다. 기존의 지지층은 인구 이동과 교육 수준 상승 등으로 인해 특정 정당과의 연계성이 약해졌다. 늘어난 부동층을 포섭하기 위해 정당들은 이념의 강도를 낮추고 ‘중도’로 이행한다. 멀리 떨어져 경쟁하던 상점들이 점점 이동해 결국은 바로 옆에서 영업하게 된다는 경제학자 해럴드 호텔링의 ‘제품 차별화 최소 원리’가 정치에도 적용되는 현상이다. 차별성이 사라진 공간은 이미지가 메운다.
이미지 정치의 다른 원인은 21세기 자본주의를 사는 시민들이 ‘먹고사는 데 바빠’ 공동체 문제에 신경 쓸 겨를이 없다는 사실이다. 여러 나라에서 조사한 바로 유권자들은 선거로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은 하지만 투표장에 잘 안 나가며 구체적인 정책을 살펴가며 투표하지도 않는다. 그 대신 이들은 ‘믿을 만하고 깨끗한’ 후보를 고르는 편한 방법을 택한다. 미디어도 정책보다는 수용자가 선호하는 개인 신상과 이미지 뉴스에 적극적이다. 이 때문에 후보자는 카메라 앞에서만 시장을 돌아다니고, 장애아동을 목욕시키며, 군을 방문해 총을 든다.
이때 상대편 후보의 이미지 훼손을 위해 ‘폭로 저널리즘’에 나서는 것이 정파 언론이다. 정치는 중도로 가는 반면 미디어는 더욱 정파적이 돼간다. ‘미디어 빅뱅’으로 경쟁자들이 급증하는 와중에 개별 미디어는 일부라도 확실한 수용자를 잡기 위해 정파성을 키우는 것이다. 영국 미디어학자 제임스 커런은 정파 언론이 정치에 대한 무관심을 완화할 가능성이 있다며 긍정적으로 보기도 한다. 그러나 이것은 정파 언론들 사이에서 공영방송이 정제된 보도로 중심을 잡고 있을 경우에 한한다.
한국도 정파성의 열기를 뜨겁게 경험하고 있다. 주류 보수신문들은 고연령과 보수적 가치를 적극 대변하고, 에스엔에스(SNS) 등 유무선 인터넷 미디어들이 전반적으로 저연령과 진보적 가치를 대변하며 균형을 겨우 맞추고 있다. 이럴 때 공영방송은 보수신문과 인터넷에서 소외된 중간층을 아우르는 동시에 근거 없는 폭로를 바로잡는 역할을 해야 한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공영방송이 권력 편에 서서 균형을 깨고 있다. 공영방송이 권력을 감시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시민이 공영방송을 감시해야 하는 서글픈 상황이다.
강형철 숙명여대 미디어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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