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2.07.17 19:28
수정 : 2012.07.18 0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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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한표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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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방송>(MBC) 노동조합은 ‘잠정 중단’이라는 형태로 파업을 일단 끝냈다. 노조는 파업의 중단에다 ‘잠정’이라는 전제를 달았다. 더욱이 파업 중단은 사쪽과의 일체의 협상이나 합의 없이 노조가 일방적으로 결정했다. 노조는 필요하다면 언제든지 중단상태를 끝내고 다시 파업한다는 의지를 보인 셈이다.
무려 170일 동안 지속된 문화방송 노조 파업은 언론인으로서는 최고의 자리에 오른 언론사 사장의 처신이 어떠해야 하는가를 깊이 생각하는 계기를 만들었다. 언론사는 일반 생산기업과는 성격이 근본적으로 다르다. 공장은 파업으로 생산 라인이 일부라도 멈춰서면 생산량이 줄어들고, 납품기간에 맞추지 못해 기업의 신용과 재정이 급격히 악화되기 마련이다. 파업이 사회적인 관심의 환기와 함께 경영진에 대한 실질적인 물리적 압박으로 작용할 수가 있다는 것이다.
반면에 언론사 파업의 경우, 경영진에게 가하는 물리적 압박은 생산 공장에 비해 매우 약하다는 사실을 이번 문화방송 파업이 실증했다. 파업으로 일선 기자와 피디뿐만 아니라 일부 간부진까지 일손을 놓았으니 방송시간이 절반 이하로 뚝 떨어져야 마땅했지만, 문화방송은 방송시간을 조금도 줄이지 않았다. 파업으로 제작되기 어려운 프로그램은 다른 값싼 프로그램을 구입하여 대체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한 방송 질의 저하는 전문가들과 방송에 깊은 관심이 있는 사람들의 눈에는 훤히 보였다. 파업 초기에 핵심 프로그램인 <뉴스데스크>의 시간조차 대폭 줄어, 방송의 공신력에 치명타를 입을 것으로 전망되기도 했다. 그런데도 일반 시청자들이 프로그램의 질이 달라진 것을 제대로 느낄 수 없었던 것은 방송이, 언론이 만들어내는 환상과 착시효과의 덕이다.
다시 말하면 문화방송은 장기간의 파업으로 심한 내상을 입었지만, 이 상처가 밖으로는 아직 드러나지 않고 있다. 몸은 골병이 들었지만, 겉보기에는 멀쩡하게 보이도록 짙은 화장을 한 것에 비유할 수 있는 상황이다. 솔로몬의 지혜를 빌려올 것도 없이, 이런 상황에서 사장자리에 집착하는 김재철 사장과 파업 잠정 중단의 결단을 내린 노조 중 누가 더 문화방송을 사랑하는가는 분명해진다.
노조는 파업을 중단하면서 발목에 어떤 족쇄도 차지 않았다. 파업을 풀 때 노동자들이 흔히 다짐하는 “들어가서 싸우자”는 구호가 이번 문화방송 노조의 경우 단순한 구호가 아니라 실제상황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사장의 자질에 있다. 김재철 사장과 같은 인격과 고집을 가진 인물이 다시 사장이 되면 갈등이 풀리지 않을 것이고, 노사가 충돌할 개연성이 높다. 이것은 당사자인 문화방송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에도 불행한 일이다.
8월에 새로 구성될 방송문화진흥회(방문진)는 문화방송 사장을 선임할 때 김 사장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사장을 고를 때 흔히 ‘추진력’을 들먹거리는 경우가 많은데, 언론사의 경우 최소한의 양식, 특히 물러나야 할 때를 제대로 아는 품성을 가지고 있는가가 가장 중요한 잣대라는 것이다. 여기서 2003년 노무현 대통령 시절 <한국방송>(KBS) 사장으로 선임되었다가 일주일 만에 자진 사퇴한 서동구씨의 경우를 상기할 필요가 있다. 그는 언론사 사장으로서 가져야 할 양식이 무엇인지를 잘 알았기 때문에 사퇴를 선택할 수 있었다.
성한표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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