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2.05.22 20:20
수정 : 2012.05.22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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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한표 언론인·전 <한겨레> 논설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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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전망대
한국 사회 빈곤층의 보수 성향이 중산층·상류층보다 더 높고, 보수 정당을 더 지지한다는 최근 <한겨레> 보도는 충격적이다. 지난 15일치 한겨레는 여론조사에서 스스로 경제적 ‘하층’에 속한다고 생각하는 이들 가운데 26.8%가 자신의 정치성향을 ‘보수’라고 응답(‘상층’ 21.6%, ‘중층’ 19.1%)했고, 4·11 총선에서 새누리당에 투표한 비율도 빈곤층이 더 높았다고 보도했다. 한겨레는 여론조사 결과를 해석하면서 대략 두 갈래의 견해를 소개했다. ‘소외계층이 강력한 국가를 표방하는 보수정당에서 자아정체성을 찾으려는 것’이며, ‘소외계층은 자신들에게 관심을 갖고 연탄 한 장이라도 주는 쪽을 선호’한다는 것이다. 빈곤층에 대한 이와 같은 인식은 오래된 고정관념의 하나다.
한겨레 보도는 20여년 전 창간 초기 한겨레 편집에 참여할 때의 경험과 겹쳐진다. 당시 한겨레는 노사 갈등의 현장에서 노동자들의 입장을 옹호하는 유일한 언론이었다. 하지만 현장 노동자들 중에 한겨레를 구독하는 비율은 극히 낮았다. 파업투쟁이 머리기사로 보도된 해당 작업장의 노동자들도 예외가 아니었다. 이런 사실 앞에서 우리는 풀리지 않는 질문을 던졌다. 노동자들이 자신을 대변하는 정당후보를, 이를테면 민주노총 조합원들이 당시 민주노동당 후보나 친노동자적인 야당 후보를 지지하지 않고, 지역주의에 휘둘리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보수언론에 눌려 한겨레의 목소리가 잦아드는 것은 보수신문이 신문시장의 판매망을 장악하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질문은 다람쥐 쳇바퀴 돌듯 원점으로 되돌아오곤 했다.
20년이 지난 이제 답이 떠올랐다. 보수언론이 쏟아내는 정보와 담론의 홍수 속에서, 몇 안 되는 진보언론이 제 역할을 못하기 때문에 빈곤층의 계층의식과 정치의식이 자라지 못한다는 것이다. 빈곤층 본래의 특성이 아니라 빈곤층에게 가까이 다가가지 못한 진보언론의 한계가 문제라는 말이다. 한겨레를 꼼꼼하게 읽어보면 참 열심히 만든 신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신문을 대충 훑어보고 던져버리는 대부분의 독자들이, 특히 바쁜 노동자들이 한겨레가 선호하는 이슈와 논리, 문장을 얼마나 친숙하게 받아들일까? 기자들은 진보언론이 빈곤층의 실생활을 파고들어 이들의 삶의 질이 정치 변화와 어떻게 연관되는지를 끊임없이 들춰내는 일보다 지식인 위주의 고담준론에 치중하지 않았나를 성찰할 필요가 있다.
한겨레를 비롯한 진보언론은 지금까지 빈곤층을 위해 지면을 크게 할애해 왔다. 하지만 한겨레는 ‘빈곤층을 위한 신문’에 머물지 않고, 빈곤층이 사랑하는, ‘빈곤층의 신문’으로까지 나아가야 한다. 이들이 보수언론 대신 진보언론을 생활의 동반자로 선택하고, 진보언론을 ‘우리 신문’이라고 받아들일 때, 비로소 이들에 의해 새로운 세상이 열릴 것이라 믿는다.
성한표 언론인·전 <한겨레> 논설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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