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2.04.24 21:17
수정 : 2012.04.24 2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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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연우 세명대 광고홍보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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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전망대]
1964년 미국 뉴욕에서 한 여성이 강도에게 살해당했다. 그 여성이 격렬하게 반항하면서 비명을 지르고 30분 이상 버텼는데도 주변의 40가구에서는 어느 누구도 돕지 않고 경찰에 신고도 하지 않았다고 한다. 서로 책임을 미룬 결과다.
국민이 시청주권을 빼앗겼다. 벌써 <문화방송>(MBC)은 90일이 가까워오고, <한국방송>(KBS)과 <연합뉴스>도 50일, 40일을 넘겼다. 문화방송 시청자들은 기다리던 프로그램을 보지 못하고 재방이나 지난 프로그램을 편집한 프로그램을 보는 것으로 아쉬움을 달래야 했다. 시청자들이 사랑하던 프로그램 대신에 허접한 것들로 채워진 시간도 늘어났다. 뉴스는 시간도 대폭 줄었을 뿐 아니라 내용도 부실하기 그지없다. 저널리즘 기능은 아예 엄두도 못 낼 지경이다.
국민들이 시청주권을 누릴 수 있도록 해야 할 주체들은 그저 손을 놓고 있다. 방송사의 경영진들은 방송주권 훼손에 대해 책임을 느끼기는커녕 공정 방송을 요구하는 노조를 탄압하고 징계로 맞서고 있다. 왜 이런 사태가 일어났는지에 대해 반성하는 최소한의 염치조차 없는 모습이다. 방송에 대한 최고 정책 행정기구인 방송통신위원회도 책임있는 대안과 해법을 내놓지 않는다. 문화방송 대주주인 방문진 이사들과 한국방송 이사들도 모르쇠로 일관하긴 마찬가지다. 공영방송 이사는 시청자들의 시청권을 지켜주고 방송이 공적 역할을 잘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자리다. 시청권이 근본적으로 위협받고 있는데도 해결에 나서지 않는 것은 심각한 직무유기다. 국민이 선거를 통해 직접 선출한 것은 아니지만 이들은 방송에 관한 국민의 대리인이다. 시청권이 훼손될 때에는 대책을 마련해야 하는 것이 그들의 책무다. 이번 파업이 방송사 안의 문제라고 하며 관여하지 말아야 한다는 주장을 하는 이도 있다고 하니 이들은 자신들이 왜 존재해야 하는지조차 알지 못하는 게 아닌가 싶다.
시간이 흐를수록 시청권이 침해되는 것은 물론 다양하고 수준 높은 프로그램을 제작하고 방송할 수 있는 기반마저 약화된다. 방송체계는 한번 무너지면 회복이 어렵거나 오랜 시간과 비용이 걸린다.
그런데도 어느 단위도 책임있게 나서지 않고 시간만 끌고 있다. 방송장악의 책임이 있는 청와대나 충실하게 엄호했던 여당은 여전히 외면하고 있고, 방송장악 청문회를 열겠다고 하는 야당도 얼마나 진지하게 고민하며 해결할 의지가 있는지 의심스럽다. 방송파탄의 가장 큰 책임이 있는 방통위와 공영방송 이사회도 손을 놓고 있는 상황이다. 서로가 책임을 미루고 눈치만 살핀다. 너무 책임있는 주체들이 많기 때문에 다들 방관자가 되는 비극적 상황처럼 보인다. 모두들 발뺌하고 그저 자리만 지킨다. 방문진 이사들이 한 것은 사장 해임안을 부결시키고 사장의 요구에 따라 임원 선임안을 통과시켜준 것뿐이다. 공영방송사의 야당 추천 이사들조차 수적인 열세만을 탓하며 무기력한 모습을 보인다. 국민의 돈만 축내면서 들러리 노릇을 해주는 것이 아닌가 하는 비판을 받을 만하다.
그저 먼발치에서 내 책임이 아니라는 듯이 팔짱을 끼는 것은 배임 행위다. 서로 책임을 미루는 틈에 방송주권만 속절없이 무너진다. 자신의 역할을 한번 되새기고 책임있는 행동에 적극 나서야 한다. 그럴 뜻이나 의지가 없다면 차라리 자리를 어지럽히지 말기 바란다.
정연우 세명대 광고홍보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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