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2.03.20 20:24
수정 : 2012.03.20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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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한표 언론인·전 <한겨레> 논설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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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전망대
노조 파업으로 방송의 파행이 50여일째 계속되고 있는 <문화방송>(MBC) 사태는 바로 37년 전 이맘때인 1975년 3월 <동아일보>와 <조선일보>에서 일어났던 자유언론 실천운동을 연상시킨다. 당시 동아와 조선 사주 쪽은 박정희 유신독재의 언론탄압에 맞섰던 언론인들에 대해 대량 해고로 응답했다. 동아에서 134명의 기자, 프로듀서, 아나운서, 엔지니어들이, 조선에서 33명의 기자들이 해직당했다.
문화방송 사태를 보면서 37년 전의 일을 연상한 것은 문화방송에서도 당시처럼 대량 해고의 위험이 크지 않다고 보기 때문이 아니다. 지금은 박정희 유신독재체제였던 당시와 근본적으로 다르다. 더욱이 총선이 3주도 채 남지 않았고 대선이 잇따르고 있어 사주가 아니라 월급 사장일 뿐인 김재철 사장이 ‘대량 해고’라는 강수를 둔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하지만 김 사장은 이미 이번 파업과 관련해 해고의 칼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그의 완강한 태도로 보아 파업에 참여한 언론인들의 희생 없이 사태가 ‘평화로운 결말’로 이어진다고 속단하기는 어렵다. 이번 사태에서 37년 전의 동아·조선 대량 해고 사태를 연상한 것은 해고 사태 이후 동아와 조선이 걸어온 길을 오늘의 엠비시가 반면교사로 삼았으면 하기 때문이다.
37년 전 동아·조선에서 쫓겨난 170명 가까운 언론인들은 두 언론사가 권력과 야합하는 것을 막아주는 사내 양심세력의 상당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 이들을 모두 거리로 몰아낸 동아·조선은 재빨리 보수화의 길을 밟고, 권력의 품속으로 급속도로 줄달음쳤다. 그 결과 이들이 어떤 언론으로 ‘성장’했는지는 우리가 다 아는 바다.
그런데 두 신문의 발행부수와 영향력은 대량 해고 사태를 거치면서 역전되었다. 조선의 4배나 되는 언론인을 해고한 동아가 조선에 추월당한 것이다. 대량 해고로 동아가 더 큰 타격을 받았다고 볼 수 있다. 문화방송 역시 이미 치명적인 타격을 받고 있다. 시간이 갈수록 이미지의 손실은 더 커진다. 단시일에 회복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문화방송은 노조원들을 대상으로 손해배상청구소송을 내고, 노조원들이 살고 있는 집에 대해 가압류 딱지까지 붙이고 있다고 한다. 노조의 파업에 대해 소송을 낼 수 있느냐 하는 법리논쟁을 떠나 파업사태에 대해 절대적인 책임을 져야 하는 김 사장이 노조에 전적인 책임을 떠넘기는 것은 적반하장이다.
문화방송 사태의 평화적인 해결은 김 사장이 사퇴하는 길밖에 없다. 그런데 왜 김 사장이 사퇴하지 않고 버틸까? 방송사 사장이라는 자리는 청와대의 사인이 없으면 마음대로 물러서지도 못한다는 해석도 있다. 청와대로서는 김 사장이라는 둑이 무너지면, 문제가 이미 불거진 <한국방송>(KBS), <와이티엔>(YTN) 등도 무너질 것을 두려워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사퇴의 결단을 가로막는 가장 큰 걸림돌은 뭐니 뭐니 해도 사장직에 대한 집착과 사장직을 떠난 이후 입지에 대한 걱정일 것이다.
문화방송의 주인은 누구인가? 정권 담당자도, 대주주인 방문진의 이사들도, 사장도 아니다. 이들은 모두 한동안 문화방송 위에 군림하다가 임기가 끝나면 떠나갈 사람들이다. 이들이 자신의 옹고집과 이해관계에 골몰하여 이곳에서 평생을 지내야 할 사원들과 맞서는 동안 생명체인 문화방송이 시들어 가고 있다.
성한표 언론인·전 <한겨레> 논설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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