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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2.02.28 21:58 수정 : 2012.02.28 21:58

강형철 숙명여대 미디어학부 교수

<와이티엔>(YTN) 김수진 기자가 쓴 글을 읽었다. 원래 사내 게시판에 올렸던 것인데 사쪽이 삭제하고 본인이 다시 올리는 일을 반복하다가 결국 <해직자복직 비대위 특보>(www.ytnmania.com)에 실렸다고 한다. 김 기자는 글에서 후배들에게 언론자유가 침해당했을 때는 “반드시 싸워야 하고, 싸워도 괜찮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해직자 복직을 위한 싸움에 나선다고 말한다. 그는 훗날 자신이 데스크가 되어 “지금 데스크들처럼 비판정신이 희미해지고 권력에 굴종하려 할” 때 이러한 저항의 역사, 승리한 투쟁의 전통을 아는 후배들이 “마음 놓고 비판하고 반기를 들고 저를 밀어내 주기를 기대”한다고 썼다.

김 기자의 대학시절 선생이자 와이티엔을 거쳐 간 선배로서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나는 예전에 와이티엔 회사 창립과 초기 정착과정에 함께했기 때문에 이 뉴스조직에 각별한 정을 느낀다. 개인적 이야기를 더 하자면, 한때 이곳에서 함께 근무했던 내 아내도 컴퓨터 앞에 쪼그려 앉아 해직동료 관련 기사와 동영상을 보며 눈물짓곤 한다. 현 정부 초기, 서슬 퍼렇던 때에 큰 방송사들도 못한 낙하산 사장 반대투쟁을 시작하고 4년이나 버텨온 것은 이들의 독특한 문화 때문이다.

와이티엔은 오로지 뉴스만을 위한, 뉴스 전문인들의 공공방송사이다. 노종면 등 대학을 갓 졸업한 수습기자들을 주요 인력으로 하여 1995년에 개국했다. 몇 안 되는 경력 선배들은 이들에게 “진실을 바르고 빠르게 알리는 것이 지고지선”이라고 강조했다. 이들은 열악한 조건 속에서도 기성 방송사들과 경쟁하기 위해 ‘해병대처럼’ 혹독하게 훈련받았다. 개국 3개월 만에 터진 삼풍백화점 붕괴사건에 지상파를 제치고 가장 먼저 현장 인터뷰와 화면을 내보냈을 때 보도국 전체가 “와~” 하며 탄성을 하던 모습이 기억에 생생하다. 솜털이 보송보송한 수습사원들을 강인하게 훈련시켰던 당시 ‘시경캡’ 등 선배들의 열정과, 부족한 자원을 최대한 모아 방송을 구성했던 지상파 출신 간부들의 전문성도 한국 최초의 24시간 뉴스 실험에 큰 몫을 했다. 외환위기 때는 모두가 순차적으로 무급휴직을 하며 자본잠식 상황을 이겨냈다. 그때의 후배들은 지금 전문인력으로 성장해 “배운 대로 하려는 데 직업마저 뺏느냐?”고 묻는다. 이제는 간부와 임원이 된 선배들은 “조직을 위해서”라며 항변한다. 사태의 본질은, 약자로서 어려운 시절을 함께 극복해온 뉴스전문인의 강한 유대의식과 프로페셔널리즘이 ‘현실주의적 변절’에 저항하는 것이다.

오랜 기간의 갈등으로 조직 유대가 극심하게 갈라졌다고 한다. 서로 경원시하다 보면 보도조직의 생명인 정보공유도 잘 되지 않을 것이다. 후배들 편에 선 유능한 선배들은 중요한 경력관리 시기에 요직에서 배제되며 드러나지 않는 희생을 묵묵히 겪고 있다. 어떤 선배들은 처음에는 동조적이었지만 일부 후배들의 ‘거칠음’에 실망해 돌아섰다고 말하기도 한다. 머지않아 해직자들이 복직되고 과거의 일상으로 돌아가더라도 이 과정에서 서로 주고받은 마음의 상처는 큰 후유증으로 남을 것이다. 소소한 ‘네 잘못 내 잘못’이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크게 보면 이 문제는 보도조직의 절대가치인 공정성을 지키려는 프로페셔널리즘적 애사심과 21세기에도 권위주의적 세계관에서 차마 벗어나지 못하는 두려움 간의 갈등이다. 이제라도 해직 기자들을 복직시켜 ‘비상’이 아닌 ‘정상’ 상황에서 후유증을 하루빨리 치유하는 것이 현명한 선택이다.

강형철 숙명여대 미디어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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