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2.02.14 21:42
수정 : 2012.02.14 2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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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한표 언론인·전 <한겨레> 논설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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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전망대
“김재철 사장이 나가지 않는 한 엠비(MB)씨의 엠비시라는 멍에는 벗어날 수 없다.”(정영하 노조위원장)
“기자들이 어떤 식으로 취재를 해 오든 결국 결과물은 윗선의 의도대로 짜 맞춰진다는 것이 두렵다.”(파업에 참여한 한 기자)
“엠비시의 역량을 키워 사상 최대의 매출을 기록하고 시청률 1위를 달성한 경영진의 퇴진을 요구하는 불법 파업.”(김재철 사장)
<문화방송>(MBC) 노조의 파업사태를 내부에서 보는 세 갈래 시선을 요약하면 이렇게 된다. ‘정권의 방송’이라는 멍에를 벗기 위해 김 사장의 퇴진을 요구하는 노조, 엠비시 뉴스가 시청자들의 조롱을 받는 상황이라 현장취재를 나가기가 두려운 기자, 그리고 찬반투표라는 법적 절차를 거친 파업을 ‘불법 정치파업’으로 몰아세우는 경영진의 입장이 잘 드러나 있다.
지난달 25일부터 시작된 기자들의 제작거부에는 부장급 간부를 포함한 보도국 전체 기자 238명 중 76%가 참여했다. 시사교양 피디뿐만 아니라, 시사 문제와는 거리가 먼 예능 피디의 참여율도 높다. 부장급을 포함하여 모두 62명의 예능 피디 중 파업에 참여하는 노조원이 50명이나 된다. 제조업체라면 제품이 나올 수 없는 파업 규모다.
그럼에도 엠비시 프로그램은 여전히 전파를 타고 시청자들의 가정에 배달된다. 그래서 경영진이 큰소리를 칠 수도 있다. 기자들이 파업하면 뉴스시간을 줄여서 대처하고, 피디들이 파업하면, 과거에 방영했던 프로그램들을 다시 내보내면 된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프로그램의 질이 떨어진다고 해서 광고를 이에 연동해서 줄일 만큼 용기 있는 광고주들도 많지는 않을 것이다. 당장의 생계를 이어가야 하는 조합원들에 비해 ‘무노동 무임금’이라는 겁박 수단과 법적 대응이라는 무기를 가진 경영진은 파업의 장기화에도 더 잘 버틸 수 있다. 만일 김 사장이 이번 파업사태를 이 정도로 안이하게 보고 있다면, 엠비시뿐만 아니라 김 사장 자신으로서도 참으로 불행한 일이다. 그는 기업의 경영자이기에 앞서 방송인이고, 언론인이다. 그와 엠비시한테 매출액보다 더 중요한 것이 방송의 공공성과 독립성을 지키면서 프로그램의 수준을 높이는 일이라는 말이다.
그는 엠비시 대주주인 방송문화진흥회(방문진) 김우룡 이사장으로부터 ‘청와대에 불려가 조인트 맞은 뒤 좌파를 정리한 사장’이라는 소리까지 들은 적이 있을 정도로 청와대와는 코드를 잘 맞춰 왔다. 하지만 청와대만 믿고 버티기에는 내부 분위기가 너무 나쁘다. 노조 파업 찬반투표에서 69.4%라는 다수가 찬성했으며, 노조가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그의 사장직 유지에 93.5%가 반대했고 사장 퇴진 투쟁에 대해 87.7%가 찬성표를 던졌다.
김 사장이 내부 구성원들에 의해 사실상 불신임을 당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된다. 따라서 그가 엠비시를 안정시킬 수 있을 것이라 믿고, 청와대가 그를 계속 밀어준다는 보장이 없다. 더욱이 엠비시의 문제는 파업만 종식되면 해소되는 것이 아니다. 파업이 어떤 모습으로 끝나느냐가 매우 중요하다. 가라앉은 분위기를 되살려내어 프로그램의 경쟁력을 회복하고, 흩어진 시청자들을 다시 끌어모을 수 있으려면, 파업이 노조의 일방적인 패배로 끝나서는 안 된다. 자칫하면 그는 사장 자리에 집착한 나머지 엠비시를 망친 방송인으로 기억되기가 십상이다.
성한표 언론인·전 <한겨레> 논설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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