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2.01.31 20:12
수정 : 2012.01.31 2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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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형철 숙명여대 미디어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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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을 공부하는 나는 공영방송사 사장을 강제로 쫓아내고 형사범으로 몬 일을 정확히 기록해 둘 의무를 느낀다. 정연주 <한국방송>(KBS) 사장 강제해임은 민주 절차로 위임된 권력을 방송 장악에 동원한 제반사태의 신호탄이었다. 이어진 우장균 등 <와이티엔>(YTN) 기자 대량 해직, 이근행 <엠비시>(MBC) 피디 해직 등 민주화 이후 유례없는 거친 방식이 공영방송의 입을 막았다. 보수주의를 내세워 선출된 정부가 그 가치를 추구하다 잘못한 일들에 대해서는 우리가 비판할 수 있어도 책임 묻기는 어렵다. 그러나 각종 ‘꼼수’를 통해 공영방송을 장악한 일은 책임을 져야 한다.
국세청이 한국방송에 법인세를 부과한 것을 놓고 정 사장이 법원의 조정을 받아들여 내지 않아도 될 세금을 낭비했다는 것이 해임과 기소의 주요 이유였다. 법원의 권고대로 했는데 법원에 그것을 이유로 유죄를 선고해달라고 하는 것은 애초부터 억지스런 것이었다. 뻔한 이치를 두고도 그를 기소한 것은 공영방송을 장악하지 않으면 나라를 편히 끌어갈 수 없을 것이라는 강박에서 비롯됐을 무리수였다. 현 정권은 2008년 출범 직후 구여권이 임명한 한국방송 이사들을 한명씩 제거하면서 일련의 작업을 개시했다. 그해 5월에 김금수 이사장이 전격 사퇴했다. 6월에는 신태섭 이사가 해임된다. 허락 없이 한국방송 이사 활동을 해왔다는 이유로 소속 대학이 갑자기 그를 해임했고, 다시 교수직 박탈을 빌미로 방송통신위원회가 한국방송 이사에서 해임한 것이다. 빈자리엔 새 인물들이 들어와 신 여권 인사들이 이사회를 장악했다.
그 와중에 검찰은 배임혐의 수사를, 감사원은 갑작스런 ‘특별감사’를 실시한다. 당시 한국방송 노조 지도부도 ‘정연주 사장 퇴진과 낙하산 사장 반대 서명운동’이라는 속 보이는 일을 벌이면서 자신들의 조직이 유린되는 것에 동조한다. 감사원은 정 사장 해임을 요구하였고, 일부 신문들도 사설 등으로 사퇴를 압박했다. 결국, 한국방송 이사회는 사원들의 반대시위를 뒤로하고 해임안을 결의한다. 정 사장은 해임된 다음날 체포되고 3년 넘게 재판을 받았다.
지난달 그의 무죄가 확정됐다. 이에 앞서 신태섭 교수도 재판 끝에 교수직에 복귀했다. 이제 민주주의의 자랑거리인 공영방송을 모욕하는 데 행동대원으로 나섰던 이들이 책임을 지는 일이 남았다. “전 정권이 임명한 사람은 알아서 나가는 게 양심적이었다”라고 항변하는 사람은 “한국이 글로벌 시대의 주역이 되자”는 말을 앞으로는 절대 삼가길 바란다. 천 보 양보해 “새 정부에 힘을 실어주기 위해서였다”는 일말의 충정(?)을 인정한다손 쳐도 이 일에 참여했던 사람들은 최소한 더는 공직을 맡지 않을 것을 권한다. 언론 관련 직무면 더 그렇다.
한국은 프랑스와 달리 식민지 시절 부역자들을 제대로 처벌하지 못했다. 아니, 오히려 이들이 요직을 차지하며 역사의 교훈을 훼손했다. 이 때문에 역사를 두려워하지 않고 당장의 힘을 좇는 인물이 많은 듯하다. 보복의 악순환을 피하기 위해 뒷날에 관련자를 처벌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이들이 앞에 나섬으로써 우리 아이들에게 정의를 가르치는 일에 방해가 되는 일은 적어도 없었으면 하는 것이다. 소신이었다고 아무리 항변해도 언론자유를 막은 사람들을 인정해줄 역사책은 없다. <한국방송 90년사>, <한국방송 100년사> 등 앞으로 나올 역사는 이 사건을 필히 기억할 것이다. 이에는 주요 인물들의 행위도 필히 기록되어 후손들이 볼 것이다.
강형철 숙명여대 미디어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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