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1.12.27 20:09
수정 : 2012.01.12 16:40
미디어 전망대
한국 언론이 위기다. 단순히 경영이 어려워졌다는 것이 아니라 존재 이유의 위기다. 어떤 이는 매체환경의 변화 때문이라고 진단한다. 기존 언론 대신에 트위터를 비롯한 에스엔에스(SNS)를 통해 정보와 의견을 주고받는 사람이 늘어나면서 언론의 사회적 역할이 줄었다는 것이다. 새로운 소통수단의 등장이 분명 위기의 한 원인은 될 수 있지만 근본적 요인은 아니다. 핵심은 바로 신뢰의 상실에 있다. 많은 국민들은 기존 언론을 불신하고 그들이 괴담의 진원지라고 비난하는 팟캐스트 나꼼수를 더 믿는다고 했다. 기존 언론사에는 어려운 입사 시험을 거쳐 스스로 우수하다고 믿는 기자들이 수백명이나 있지만 국민들은 그 언론들을 불신한다. 나꼼수가 잇따라 특종을 한 것은 단순히 취재와 정보수집 능력이 더 탁월했기 때문은 아닐 것이다. 나꼼수의 진행자들 누구도 이른바 언론고시라는 높은 문턱을 넘은 주류 언론 출신은 없다. 그럼에도 그들이 신뢰받는 비결은 감추어진 진실을 찾아 국민들에게 알리고 권력에 대한 비판과 감시라는 저널리즘 정신이 살아 있었기 때문이다.
어떤 이는 기존 언론이 제구실을 못하는 이유를 권력의 언론장악이나 반민주적 사주 탓으로 돌리기도 한다. 광고가 언론의 밥줄이니 광고주의 눈치를 보는 것도 한 요인이다. 이는 결국 기자 개인이 문제가 아니라 구조가 문제라는 것이다.그러나 언론사와 외부적인 환경에만 책임을 돌릴 수는 없다. 기자들이 짊어져야 할 책임도 결코 가볍지 않다는 말이다. 언론에 대한 불신 못지 않게 기자들에 대한 불신도 깊다.
언론사 입사시험에는 수많은 지원자가 몰린다. 경쟁률만 따지면 진짜 고시도 이에 비할 바가 아니다. 한국 사회에서 고시는 시험으로 입신양명을 하는 통로였다. 언론사 입사시험을 언론고시라고 부르는 것은 언론인이 되는 시험이 그만큼 어렵다는 것을 강조하려는 의미였을 것이다. 그러나 한편으로 고시라는 말 속에서 은연중 스스로를 권력자나 엘리트라고 여기지는 않았는지 모르겠다. 그런 의식을 가진 기자들에게 기자직은 통속적 성공을 위한 또 하나의 방편으로 여겨질 수 있다. 사실 뛰어난 기자가 되기 위해 필요한 자질은 다양하다. 풍부한 상상력과 탁월한 취재 능력 그리고 이를 설득력 있게 형상화할 수 있는 표현력은 기본일 것이다. 하지만 기자로서 소명감이 부족하다면 다 쓸모없는 것이다. 얼마 전 한 방송사 기자가 집회를 취재하던 중 시민들에게 봉변을 당했다. 기자 출신으로 정부 고위직에 올랐던 어떤 이는 뇌물을 받은 혐의로 구속되어 불행한 끝을 보여주었다. 일부 기자들은 언제나 저널리즘 정신으로 형형하게 살아 있기보다는 경영진이나 권력 주변을 기웃거렸다. 진실을 수호하는 것이 아니라 조직의 상급자나 권력자의 비위에 맞게 곡필을 하기 일쑤였을 것이다. 그럴듯한 궤변과 정보로 포장하는 솜씨는 뛰어날지 모르겠다. 그들의 잘 다듬어진 문장과 매끈한 비유는 세상을 현혹하는 무기일 뿐이다. 그들은 기자로 위장한 사이비 기자이다. 그런 자들이 언론에 대한 불신의 뿌리다. 기자 정신이 애초에 없었거나 그것을 지켜갈 의지가 약했기 때문이다. 어려운 시험을 통과했다는 오만한 엘리트 의식에 사로잡혀 있으면 낮은 곳으로 임할 수가 없다. 자칫하면 진실을 찾아내는 눈이 흐려진다. 기자 지망자들은 기사 쓰는 기법과 기술을 익히기에 앞서 기자 정신을 챙기고 벼리는 게 먼저다. 저널리스트란 어떠한 존재여야 하는가 성찰과 다짐이 있어야 한다. 권력과 자본의 유혹이나 압력에도 넘어가지 않고 오로지 진실의 수호자이자 사회적 감시자가 될 수 있는지에 대해 스스로 물어야 할 것이다.
정연우 세명대 광고홍보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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