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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1.09.27 21:47 수정 : 2012.01.12 16:52

미디어 전망대

‘형식적, 양적 균형.’ 한국 언론이 신주처럼 떠받들고 있는 선거보도 원칙이다. 공직선거법은 ‘언론기관의 공정보도의무’(8조)를 규정하고 있다. 공정성이라고 할 때, 균형 잡힌 보도를 빼놓을 수 없다. 하지만 여기서 말하는 ‘균형’은 형식적 균형이 아니라 실질적 균형이다. 실질적 균형이란 큰 것은 크게, 작은 것은 작게 보도하는 것이다. ‘형식적 균형’이라는 원칙이 선거 때마다 도마에 오르는 것은 형식적 균형이 거꾸로 실질적 불균형을 가져오는 경우가 더 많기 때문이다.

여권 일각에서 서울시장 예비후보로 내세운 이석연 전 법제처장에 대한 신문들의 최근 보도에서 이런 조짐을 본다. 이 전 법제처장을 박원순 전 희망제작소 상임이사의 ‘맞수’인 것처럼 내세우는 보도가 많이 나오고 있다. ‘맞수’라고 주장하는 근거로는 두 사람이 비슷한 연배(이씨는 1954년, 박씨는 1956년생)이고, 둘 다 변호사이며, 시민운동을 ‘함께’ 했다는 점을 든다.

이 예비후보가 26일 박 예비후보에게 수도 이전, 시민운동 방법론, 천안함 폭침 사건 등 3가지 이슈에 대한 ‘맞짱토론’을 제안했다. 3가지 이슈도 시장선거와는 걸맞지 않은 정쟁적인 주제이지만, ‘맞짱’이라는 토론형식도 논란의 여지가 있는 제안이었다. 하지만 각 언론은 이것도 의미있는 뉴스로 다뤘다. 이런 편집은 ‘조중동’으로 대표되는 보수언론의 지면에서만 볼 수 있는 특징이 아니다.

진보언론으로 자임하는 <한겨레>와 <경향신문>에서도 볼 수 있다. 지난 17일치 한겨레 5면과 22일치 경향 1면이 그렇다. 박, 이 두 예비후보의 사진을 크게, 나란히 싣는 편집은 앞으로 선거운동이 본격화되면서 독자들이 지겹도록 만나게 될 ‘형식적, 양적 균형’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신문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이와 같은 편집은 두 사람이 ‘맞수’라는 인상을 독자들에게 심는 효과가 있다.

그래서 두 사람을 맞수로 다루는 편집이 정당한가를 따져 볼 필요가 있다. 우선 두 사람이 각각 여와 야의 통합후보로 나서게 될 가능성을 어떻게 보는가이다. 현재로서는, 박 예비후보는 민주당의 박영선 예비후보를 넘어서야 하는 고비가 남아 있지만 야권 통합후보가 될 가능성이 큰 반면, 이 예비후보는 나경원 한나라당 예비후보를 넘어설 가능성이 크지 않다는 데 대부분 언론이 동의할 것이다.

신문이 두 사람을 같은 비중으로 다루고, 대비시키는 보도는 두 사람이 여야 통합후보로 나선 뒤에 시작해도 된다는 말이다. 시민단체 활동의 경력을 들어 두 사람의 유사성을 강조하는 것도 지나친 단순화이다. 두 사람을 대비하려면, 시민운동에서 두 사람이 차지하는 위치와 영향력도 감안해야 하고, 최근 몇 년 동안 두 사람이 몰두했던 일이 무엇인지도 비교해야 한다.

이 예비후보에 대한 언론의 보도가 그를 무리하게 띄우려 하거나 질주하는 박 예비후보에 대한 관심을 식히려는 물타기라고 몰아세울 생각은 없다. 형식적 균형을 취했다고 해서 모든 언론의 의도가 다 같은 것도 아니다. 문제의 한겨레 기사는 한나라당의 ‘이석연 카드’에 대한 이러저러한 해석을 소개했고, 경향 기사는 정치권에 대한 시민사회의 도전을 부각시켰다. 다만 내가 강조하고 싶은 것은 형식적 균형이라는 함정에 빠져 실질적 균형을 놓치는 일이 없었으면 하는 것이다.

성한표 언론인·전 <한겨레> 논설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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