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1.09.13 20:21
수정 : 2012.01.12 16:53
미디어 전망대
국회에서 미디어렙(미디어광고판매대행업) 관련법안을 통과하는 일이 긴박한 문제가 되었다. 오랫동안 지상파방송의 광고판매는 한국방송광고공사(코바코)가 대행해왔는데, 2008년 헌법재판소는 이 독점이 헌법불합치라고 결정한 바 있다. 이를 고치기 위한 법안 7개가 국회에 제출된 상태지만 여당의 소극적 태도로 법 정비는 표류되고 있다. 관련법이 없다면 민영 지상파 방송사와 올해 말 시작할 종합편성채널은 미디어렙을 통하지 않거나 직접 미디어렙 자회사를 설립해 직거래 광고영업이 가능하다.
쉽게 생각하면 방송사가 광고유치를 직접 하든 말든 스스로 선택할 일이라고 볼 수도 있겠다. 한국의 방송영역이 경제원론에 등장하는 합리적 시장이라면 방송사가 광고영업 조직과 직원을 추가로 두는 부담보다는 미디어렙 회사에 이를 대행시키는 길을 자연스레 택하게 될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큰 방송사들이 자율 광고영업을 주장하는 것을 보면 한국 방송시장은 결코 합리적이지 않은 것 같다.
큰 방송사들이 그렇게 생각하는 데는 두 가지 이유가 있을 것이다. 첫째로, 이들은 미디어렙 회사를 통할 경우 자신들의 정당한 이득이 다른 작은 방송사들한테 돌아가게 될 것을 우려한다. 실제로 코바코는 큰 지상파 방송사의 시청률 높은 프로그램을 광고주에게 판매할 때 작은 방송사의 프로그램도 함께 ‘끼워팔기’ 하며 이들을 도와왔다. 한편으로, 시청률에 따라 광고요금이 정해지는 것을 피하여 처음에는 시청률이 낮았던 <무한도전>과 같은 실험적 프로그램도 쉽게 폐지되지 않고 살아남아 결국에는 ‘거물’로 성장하는 데 뒷받침이 되기도 하였다. 둘째로, 큰 방송사들은 자신들이 직접 나서면 광고를 더 많이 팔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는 한국 언론의 광고유치가 취재보도 활동을 등에 업는 경향이 점차 강해지는 데서 비롯된다. 기업이나 공공기관의 처지에서 단 한 개의 신문사에만 광고를 내는 일은 “뭔가 잘 모르는 데서 나오는 용기”가 없으면 불가능할 정도이다. 한 기자는 “예전에 편집국과 광고국은 서로 단절된 영역이었는데, 요즘은 무언의 사내 압력을 계속 받다보니 우리 신문을 빼 놓고 다른 곳에만 광고를 내는 출입처에는 나도 모르게 섭섭함과 분노가 치밀어 오르게 됐다”고 토로한다.
원론적으로 케이블티브이 채널은 광고영업을 자율로 하는 것이 맞다. 그러나 종편은 허가제를 통해 경쟁자의 진입을 막아주고, 케이블티브이 방송국이 반드시 이들을 채널 라인업에 넣도록 하며, 행정지도를 통해 좋은 채널번호를 받게 하겠다는 공언의 대상이 되는 ‘특혜 상황’에 놓여 있다. 더구나 이들은 시청률 등의 객관적 지표만을 내세워 광고주를 설득하지는 않을 것이다. 한국 사회의 광고비 총액은 일정한 상황에서 광고를 빼앗기지 않으려는 다른 지상파 방송사들까지도 종국에는 언론의 힘을 이용한 광고유치에 함께 뛰어들게 될 것이다.
주요 방송사들의 광고영업을 미디어렙으로 묶는 것은 합리적으로 보인다. 이것은 광고 수익을 위한 언론이 아닌 언론을 위한 광고가 되기 위해서이기도 하고, 광고독식으로 인한 약소 언론의 기회박탈을 방지하기 위해서이기도 하다. 이는 또한 공정경쟁을 통한 한국 방송의 품질 제고는 물론, 기사 경쟁만으로도 충분히 지쳐가는 기자들의 존엄성을 위해서도 ‘한국적으로’ 급히 필요한 과제이다.
강형철 숙명여대 미디어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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