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1.08.16 21:39
수정 : 2012.01.12 16:56
미디어 전망대
말과 정책이 따로 놀 경우 우리는 흔히 ‘속 빈 강정’이라고 비판한다. 이명박 대통령의 8·15 경축사에서 나온 ‘공생발전’이라는 말도 여기에 속한다. 말로는 ‘서민’을 강조하면서, 정책은 ‘부자감세’로 나가는 것이 그렇다. ‘지당하지만 공허한’ 속 빈 강정은 시간이 흘러 저절로 소멸하기를 기다리기만 하면 그만이다.
하지만 이 말이 새끼를 치면서 헛된 환상을 만들어 낼 조짐이 보인다. <조선일보>가 ‘공생발전’을 경제 칼럼니스트 아나톨 칼레츠키가 주장하는 ‘자본주의 4.0’과 연결시키려 하는 것이다. 15일치 조선일보는 “이 대통령과 청와대는 경제성장 과정에서 소외된 계층에 대한 관심과 배려가 필요하다는 최근의 ‘자본주의 4.0’ 움직임에 깊은 관심을 갖고 있다”고 보도했다.
칼레츠키는 세계적인 금융위기를 맞아, 지난해 자본주의가 다시 진화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이를 ‘자본주의 4.0’이라고 불렀다. 자유방임의 고전자본주의(1.0), 정부 주도의 수정자본주의(2.0), 시장경제에 모든 걸 맡기는 신자유주의(3.0)에 이은 자본주의 4.0 단계라는 것이다.
조선일보는 ‘자본주의 4.0’이라는 화두를 붙들고, 이를 이명박 정부의 ‘공생발전’과도 연결시킴으로써 뛰어난 변신의 감각을 과시했다. 그동안 신주처럼 받들었던 신자유주의를 버리지는 않으면서도, 이를 벗어난 것처럼 ‘보이게’ 하는 주제로 안성맞춤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조선일보는 기업의 미움을 사지 않으면서 한국경제의 현실에 대해 비판적인 여론을 탈 수 있는 안전판을 찾아낸 것이다.
하지만 조선일보의 ‘자본주의 4.0’은 일반이 이해하는 선을 벗어났을 뿐만 아니라 이 대통령의 ‘공생발전’과도 어긋나 있다. “위기일수록 정부 정책의 중심을 서민에 두어야 한다”는 것이 ‘공생발전’의 핵심이다. 칼레츠키가 말한 4.0판의 자본주의는 정부와 시장의 어느 쪽이 옳은가보다 양자가 견제와 균형을 바탕으로 밀접한 관계를 갖는, ‘책임 있는 자본주의’다.
반면에 조선일보는 ‘자본주의 4.0’을 ‘따뜻한 자본주의’로 요약한다. 조선일보는 신자유주의의 모든 폐해를 들춰내어 비판한다. 빈익빈 부익부, 극심한 차별을 받는 비정규직, 신빈곤층 등의 문제를 신랄하게 지적하고, 시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조선일보는 이런 문제를 정부의 개입이 아니라 기업이 주체적으로 풀어나가야 한다며, 구체적인 방법으로 기업인들의 자발적인 기부와 자선사업을 권장한다.
다시 말하면 자선사업에 앞장서는 미국의 기업가 빌 게이츠나 워런 버핏이 ‘자본주의 4.0’ 시대의 주역이고, 미국에는 벌써부터 4.0 시대가 와 있다는 이야기가 된다. 그러나 워런 버핏만 해도 3.0 단계 자본주의 위기의 본질인 미국 재정적자를 줄이기 위해 국내 갑부들에게 세금을 더 내도록 해야 한다고 정부를 채근하고 있는 판이다.
‘자본주의 4.0’이라는 새로운 시대는 국민 대부분을 구성하는 중소 영세 기업가들과 노동자들이 대기업의 ‘시혜’로 생을 이어가야 하는 시대여서는 안 된다. 조선일보로 대표되는 보수언론이 말하는 ‘자본주의 4.0’이 사람들의 머릿속에 주입되는 사태에 대해 브레이크를 걸어야 한다. 뭐라고 불러도 좋다. 신자유주의 이후의 자본주의 운영이 어떠해야 하는가에 대한 적극적인 논의가 필요하다.
성한표 언론인·전 <한겨레> 논설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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