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1.08.02 20:05
수정 : 2012.01.12 17:19
미디어 전망대
1987년 민주화 이후 요즘처럼 공영방송이 시민을 경시하는 때도 없던 것 같다. 시민이 알아야 할 뉴스도 정치권력이 싫어할 것이라면 방송하지 않는다. 사회문제에 대해 생각을 밝히는 시민은 방송인이 될 수도 없다. 도청사건으로 논의가 중단된 수신료 인상 문제에도 실추된 시민의 신뢰를 먼저 회복하고자 나서지 않고 권력에 의존하는 방법을 쓴다. <한국방송>(KBS) 기자와 피디들이 나서 자체 조사로 “치욕”을 벗자고 호소하지만 사쪽은 맹목적 수신료 인상을 위한 “사원들의 일치단결”을 강조한다. 모르쇠 하다 보면 언론자유와 국회의원 면책특권을 내세워 수사가 흐지부지될 것이고, 어찌되든 수신료 인상안만 국회를 통과하면 만병통치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이미 야당 의원들도 수신료 인상에 합의한 적 있고, 국내외를 막론하고 지역구 국회의원은 방송사에 취약하다고 판단하기 때문인 듯하다. 공영방송사 경영진은 자신들을 뽑아준 빚 때문에, 그리고 임기 내 업적을 쉽게 이루기 위해, 오랜 시간이 걸리는 시민과의 관계보다는 즉각적인 권력과 자본의 관계에 더 민감하다.
하지만 정치권력과 자본을 가까이하는 것은 달콤한 독배를 마시는 일이다. 서구에서도 정치권력은 전통적으로 ‘콧대 높은’ 공영방송에 호의적이지 않으며, 자본은 공영방송이 약자 편을 들고 평등을 지향하는 것에 불만을 품는다. 속속 등장하는 새 미디어 때문에 공영방송의 독점적 지위가 흔들리면서 상황은 더욱 나빠졌다. 정치권력은 공정경쟁을 명분으로 공영방송 관련 정책을 좌지우지하며 ‘탈규제’가 아닌 ‘재(再)규제’에 나선다. 한편으론, 수신료 인상을 ‘부탁하는’ 공영방송에 회심의 미소를 짓고 있다. 광고를 놓고 신매체들과 경쟁하게 된 공영방송은 자본에도 취약하게 되었다. 정치권력은 특혜를 주고 자본은 광고를 준다. 하지만 이는 영혼을 내줄 경우만이다. 전세계의 정치인들은 공영방송의 힘을 빼서 자신들에 대한 비판을 약화하고자 하고 자본가는 공영방송의 폐지를 원한다. 맛좋은 사탕은 낭떠러지를 향한 길 위에 뿌려져 있다.
물론, 공영방송이 권력과 거리를 두고 시민사회에 기대려면 매우 불안할 것이다. 시민들이 점차 개개인으로 고립돼 수동적인 ‘시청자’로 전락해가는 상황에서 이 기구를 위해 한데 모이고 큰 목소리를 내줄 것을 기대하기란 어렵다. 더구나 시청자의 관심은 점차 모바일 미디어 등 신매체로 옮아가고 있다. 공영방송한테 시민을 믿으라고 권하는 것은 특정 종교를 설파하는 것과 같게 들릴지 모른다. 그러나 “공영방송이 기댈 곳은 시민사회”라는 명제는 신앙이 아니라 과학이다. 시민사회는 적어도 이 제도의 폐지를 원하지 않는다. 좋은 공영방송의 바른 역할을 원할 뿐이다. 정치권력과 자본이 이를 없애거나(민영화) 유명무실하게 만들려고(역할 축소) 할 때 나서줄 지원군은 시민사회밖에 없다.
공영방송은 이들 시민이 뉴스와 교양과 오락을 함께 나눔으로써 뿔뿔이 흩어져버리는 것을 막도록 도와야 한다. 중요한 의제를 알려주고 토론의 장을 만들어 정치참여를 북돋우는 것도 중요하다. 이들과 만나는 방식도 바꾸어야 한다. 지상파 채널에 안주할 것이 아니라 인터넷과 모바일 미디어 등 개인매체를 통한 서비스를 늘려야 한다. 이것이 공영방송의 바른 역할인 동시에 자신의 지지토대를 굳건히 하는 일이다. 시민을 계도의 대상으로만 여기며 무시하다가는 어느 순간 고립무원에 놓인 것을 깨닫는 날이 올 것이다.
강형철 숙명여대 미디어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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