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1.07.19 20:24
수정 : 2012.01.12 17:45
미디어 전망대
<한국방송>(KBS) 탐사보도팀장을 지낸 김의철 기자가 ‘케이비에스 기자 도청 의혹’과 관련해 김인규 사장이 직접 나서라는 글을 최근 사내게시판 ‘코비스’에 올렸다. 한국방송 기자 누구도 도청한 사실이 없으며, 한나라당 등에 녹취록을 넘겨주지 않았다고, ‘직을 걸고’ 밝히라는 것이었다. 도청 의혹이 시원하게 해명되지 않아 해당 언론사 기자들이 얼마나 답답해하고 있는지를 잘 보여주는 주장이다.
도청 의혹에 대해 한국방송은 그동안 몇 차례나 성명을 냈지만, 해명다운 해명이 되지는 못했다. 성명의 주체가 공식 대표성을 가진 김 사장이나 이사회도, 대변인도 아닌, 실무 부서인 ‘홍보실’과 ‘정치부’라는 점에서, 나중에 딴소리를 할 수 있는 여지를 남기는 것이냐 하는 의혹이 또 제기된 것이다. 성명의 내용은 더 문제다.
보도문 작성에 익숙한 언론사에서 나온 문건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애매모호한 표현 때문이다. 성명 내용을 요약하면 이렇다. “민주당이 주장하는 식의 이른바 도청 행위를 한 적은 없다”(홍보실) “정치부의 어느 누구도 특정 기자에게 이른바 도청을 지시하거나 도청을 지시받은 바 없음을 분명히 한다. (민주당) 회의에 관련된 제3자의 도움이 있었음을 부득불 확인한다.“(정치부)
한마디로 두 문건 모두 ‘절반의 해명’으로 그치고 있다. 도청 자체에 대한 부인이 아니라 도청의 방식이나 도청 전후의 상황에 대한 해명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민주당이 주장하는 식의 도청은 없었지만, 도청 자체가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또한 ‘도청을 하라는 지시는 없었지만, 기자가 자기 판단으로 도청을 했는지에 대해서는, 그리고 민주당 회의에 관련된 제3자의 도움이 있었지만, 그가 누구인지, 어떤 도움을 받았는지는 말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만일 언론사가 아닌 어느 누가 이런 식의 해명을 했다면, 한국방송은 물론이고, 모든 언론이 벌떼같이 일어나 ‘사실상 시인했다’고 몰아갔을 것이다. 불법 도청이냐 아니냐에 따라 형사사건 피의자가 되느냐 아니냐가 달려 있어 도청 여부의 진실 규명은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공공적인 이익을 위한 주요 보도자료를 얻으려고 도청했다면, 법에 따라 처벌받는 것과 상관없이, 반드시 기자윤리를 어겼다고 보기 어렵다.
그런데 이번 경우는 야당 주요 회의의 발언내용이 담긴 자료를 여당 의원에게 넘겨준 사람이 있다는 점에서 성격이 다르다. 언론자유가 곧 언론인의 자유는 아니가 때문이다. 자료를 넘겨준 사람이 만일 기자라면, 이 사람은 더 이상 기자여서는 안 된다. 기자 아닌 기자가 기자사회에, 그것도 공영방송의 엘리트 기자들 틈에 섞여 있으리라고 믿고 싶지는 않다. 그래서 이번 사건에 기자가 개입되었다는 의혹이 말끔히 해명되기를 간절히 바라는 것이다.
해당 언론사의 대표인 김인규 사장이 ‘직을 걸고’ 그런 사실이 “있다, 없다”를 분명히 밝히면, 자기 말에 책임을 져야 하는 공인이기 때문에 그만큼 무게를 실을 수 있다. 물론 결정적인 열쇠는 한선교 의원 본인이 가지고 있다. 누구에게서 자료를 받았는지를 분명히 밝히면 그만이다. 의원의 면책특권을 주장하며 입을 닫으면, 유야무야로 끝나거나 법적인 처벌이 미뤄질지는 모르지만, 그것은 정치적인 파산선고를 자청하는 태도다.
성한표 언론인·전 <한겨레> 논설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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