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1.07.05 20:19
수정 : 2012.01.12 17:50
미디어 전망대
<한국방송>(KBS)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불만을 표현한다. 여러 형태의 비판이 있겠지만, 이것들은 ‘불공정성’이라는 키워드로 요약된다.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공영방송에 대한 비판은 불공정성 이외에도 이것이 소비자선택권을 제한하고, 민족 정체성을 훼손하며, 교양이 부족하고, 돈을 자기 마음대로 쓰며, 지역성을 훼손하며, 문화적으로 고리타분하다는 내용이 주를 이룬다. 그러나 특이하게도 한국에서는 불공정성만이 유독 두드러지는 비판의 주제이다. 한국방송이 불공정하다는 것은 이 방송이 정권과 자본의 이해에서 독립적이지 못하다는 것을 뜻한다. 이명박 정부에 들어서 이 공영방송은 사회적 약자의 편을 들기보다는 사람이 아닌 기계도 할 수 있는 ‘중립’을 내세우며 사회적 불평등에 눈을 감는 방식으로 공정성을 위배해왔다. 십여년 전 한국방송 고위 임원이 “대통령은 국민이 뽑았기 때문에 국민의 방송인 한국방송은 현 정부의 정책을 지원해야 한다”는 말을 했다고 하는데 현재도 이러한 단순논리로 정부홍보의 당위성을 내세우는 경향이 강하다.
불공정성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지배구조를 개선해야 한다는 주장이 최근 들어 소리를 높이고 있다. 민주당도 개선안을 내놓았다고 하며 한국방송 노동조합도 지배구조 개선을 촉구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그러나 이러한 지배구조 개선 노력의 이면에서 지나쳐선 안 될 것은 한국방송 종사자들 스스로의 전문인 문화(프로페셔널리즘)이다. 물론 언론인이 전문직인지 여부에는 이견이 있을 수 있고, 전문직 자체가 가지는 엘리트주의에 대한 비판이 있기도 하다. 하지만 언론인에게는 전문성에 더해 윤리성과 자율성이 요구된다는 점에서, 그리고 언론이 권력과 자본의 영향에서 자유롭기 위해서 전문인 문화를 강조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언론인 개인을 자율성을 지닌 전문인으로 간주하지 못할 때 한국방송과 <문화방송>(MBC)과 <와이티엔>(YTN)에서처럼 방송사의 목표와 제작에 대한 의견이 경영진과 다르다고 방송인을 해직하거나 전출시키고 징계하는 등의 일이 발생한다.
역사를 거슬러 살펴보면, 한국에서는 국가 통제의 전통이 전문인 문화의 성장을 심각하게 방해해왔다. 이는 한국방송이 미군정에 이어서 대한민국 정부 설립과 함께 정부조직의 하나로 시작한 것에서 비롯된 것이기도 한다. 지금은 과거와 달리 국가에서 독립한 공영조직이 되었다고는 하지만 정부 관여의 문화는 여전한 유산으로 남아 있다. 날로 심화하는 매체 경쟁 상황에서 언론인들은 스스로를 ‘전문 언론인’보다는 ‘조직의 일원’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강한 듯하다. 이러다 보니 새로운 권력이 사장을 불법적으로 해임하는 일이 벌어졌는데도 방송인들은 오불관언이거나 심지어는 이에 동조하였다. 친일 인사 미화 프로그램을 방송하고, 수신료를 올리겠다고 기자들까지 나서는 모습도 안타깝다. 1987년 이후 많은 사회 영역이 민주적 가치를 발전시켰는데도 공영방송 조직이 이 정도에 불과하다면 외부적 요인에 앞서 내부적 문제점을 찾아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영국 <비비시>(BBC) 조직 문화를 연구한 스위스 학자 루시 큉 솅클만은 이 방송이 국가 등 각종 이해세력의 압력을 막아내 오면서 성장할 수 있었던 주요인은 방송인들의 프로페셔널리즘이었다고 분석한다. 한국에서도 공영방송 종사자 스스로가 이를 각성하고 전문인 문화를 계발하고 실천하는 일이 무엇보다도 절실하다.
강형철 숙명여대 미디어학부 교수
‘미디어전망대’ 새 필자로 강형철 교수가 합류합니다. 그동안 좋은 글을 써주신 강상현 연세대 언론홍보영상학부 교수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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