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11.06.21 20:07 수정 : 2012.01.13 10:28

미디어 전망대

심층보도와 분석을 할 수 있다는 점이 신문의 강점이다. 지면이 비교적 넉넉하고, 기자들이 잘 훈련되어 있으며, 인터넷이나 텔레비전 방송에 비해 시간에 덜 쫓기고, 제작과정이 덜 복잡하다는 신문의 특성 때문이다. 하지만 신문이 이런 특성을 충분히 활용하고 있는지 의심스러워질 때가 있다.

보건복지부가 편의성을 내세워 박카스 등 일반의약품 44종을 슈퍼나 마트, 편의점 등에서도 살 수 있는 ‘의약외품’으로 전환하는 방침을 세운 것에 대해 약사들이 안전성을 내세워 반발하고 있다. 이 갈등을 전하는 신문 보도를 보면, ‘일반의약품 슈퍼판매’를 둘러싼 정부와 약사들의 갈등은 매우 단순하다. 국민 편의성이 우선이냐, 안전성이 우선이냐 하는 싸움같이 보인다.

‘슈퍼판매’가 가능한 일반의약품 44개 품목의 연간 생산액은 1600억원. 전체 의약품 시장 14조5000억원에 비하면 큰 규모가 아니다. 약사들이 한사코 이를 반대하는 것이 지나치다는 생각이 든다. 약사들의 ‘제 밥그릇 챙기기’에 역정이 솟기도 한다. 누구나 늦은 밤이나 휴일에 약을 사지 못해 헤맸던 기억들은 있다. 여기까지가 우리가 알고 있는 ‘갈등’의 전모다. 신문과 방송이 여기까지만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이쯤에서 약사들의 항변을 들어보자. “복지부가 청와대 지시를 받고 추진하는 일반약 슈퍼판매는 곧 개국할 조선, 중앙, 동아 등의 종합편성채널을 위한 것”이라는 주장이다. 약품의 슈퍼판매가 신생 종합편성채널을 위한 것이라니…. 심층보도에 목숨을 걸어야 할 신문이라면 당연히 추적취재를 해야 한다. 하지만 신문들은 이 주장을 무시하고, 더는 파고들지 않았다. 종합편성채널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한겨레와 경향조차 그랬다.

그런데 방송통신위원회가 지난해 초 대통령에게 보고한 ‘2010 업무계획’에는 “사회경제적 환경에 따라 방송광고 금지품목 축소를 추진하겠다”는 내용이 들어 있다.

여기서 말하는 ‘사회경제적 환경’은 종편채널을 위한 광고시장 확대와 경기활성화를 위한 매출증대의 필요성이다. 의약품 중 현재 방송광고가 금지되어 있는 전문의약품은 전체 의약품 시장의 75%를 차지한다.

기획재정부는 복지부, 한나라당 등과 협의하여 의약품을 재분류하기 위한 약사법 개정을 추진한다고 밝혔다. 의사의 처방전이 있어야 약국에서 살 수 있는 전문의약품이냐, 처방전 없이도 약국에서 살 수 있는 일반의약품이냐, 슈퍼에서도 살 수 있는 의약외품이냐를 재분류하겠다는 것이다. ‘슈퍼판매’를 늘리겠다는 뜻이다.


신문은 이런 단편적인 ‘사실’들을 모은 뒤 맥락을 잡아 한 줄로 꿰기만 하면 된다. 복지부가 슈퍼판매를 허용하겠다고 밝힌 44개 품목은 시작일 뿐이다. 재분류를 통해 일반의약품, 특히 거의 절대적으로 광고에 의존하게 될 의약외품을 폭발적으로 늘리면, 청와대가 기대하는, 종합편성채널을 위한 광고의 획기적인 확대가 실현된다.

신문이 보도한 ‘갈등’은 빙산의 일각이다. ‘슈퍼판매’는 편의성이라는 장점이 있지만, 광고 확대로 인한 약값 인상과 약품의 오남용이라는 부작용이 따른다. 편의성이냐, 안전성이냐라는 단선적인 논쟁이 아니라, 장점을 살리되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방안은 무엇이며, 약사들의 ‘과욕’은 어디까지 눌러야 하는지에 대한 토론을 끌어내는 것이 신문의 역할이다.

성한표 언론인·전 <한겨레> 논설주간


광고

브랜드 링크

기획연재|미디어 전망대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