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1.06.14 20:26
수정 : 2012.01.13 10:29
미디어 전망대
<한국방송>(KBS) 새 노조가 지난 7일 이명박 대통령의 격주 ‘라디오 연설’을 폐지하라고 사쪽에 요구했다. 처음 나온 이야기도 아니다. 이 대통령이 5월30일 방송한 제66회 연설에서 “연봉 7천만원을 받는 노동자들이 파업을 벌였다”며 사실과 다른 통계를 인용하면서 유성기업 노동자들의 파업을 비난한 것이 분노를 촉발시킨 계기가 됐다. 이 대통령의 주례 라디오 연설은 2008년 10월 첫 방송이 나갈 때부터 자주 ‘논란’의 불씨가 됐다. 라디오 연설을 정권의 입장을 정당화하고 반대 의견을 공격하는 장으로 이용했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한국방송 기자, 피디들은 공영방송의 전파를 정권의 홍보 수단으로 해서는 안 된다는 저널리즘 원칙에서 대통령의 주례 라디오 연설을 반대했다. 민주국가에서 당연히 나와야 할 주장이다. 그러나 한국방송은 대통령의 주례 라디오 연설을 강행했고 시간이 흐를수록 기자, 피디들의 우려는 현실로 나타났다.
이 대통령의 라디오 연설을 옹호하는 사람들이 흔히 내세우는 선례가 미국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의 라디오 연설 ‘노변담화’(fireside chats)이다. 그러나 잘못 알고 있는 것이 있다. 루스벨트의 라디오 연설은 주례 방송도 아니었고 정권 홍보도 아니었다. 루스벨트는 1933년부터 1944년까지 11년에 걸쳐 30차례 방송했을 뿐이다. 일년에 한번 연설한 해도 세차례나 있다. 연설 내용은 모두 아주 중요한 정책 발표였다. 루스벨트가 자신의 뉴딜 정책에 반대하는 보수 언론이나 의회 반대 세력의 어깨 너머로 국민과 직접 대화하는 방법으로 라디오를 이용한 것은 사실이지만 당파적인 연설은 하지 않았다. 그래서 국민의 반응이 좋았던 것이다.
정권 홍보로 주례 라디오 연설을 시작한 사람은 “위대한 소통인”으로 통하는 레이건 대통령이었다. 그는 1982년부터 매주 토요일 주례 라디오 연설을 시작했다. 배우 시절 반공 강연을 많이 해 본 그는 라디오 연설을 잘 활용했다. 그러나 후임자인 (아버지) 부시 대통령은 주례 라디오 연설을 하지 않았다. 레이건과 같은 언변이 없어 스스로 라디오 연설의 효과에 의문을 가졌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그러나 클린턴이 주말 라디오 연설을 다시 살려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오바마는 토요일 주례 라디오 방송을 한다. 방송 시간은 방송국과 지역마다 다르다. 방송국이 방송 시간을 정하기 때문이다. 자연히 주례 연설을 듣는 사람이 그리 많지 않다. 그래서 오바마는 얼마 전부터 연설을 유튜브로 만들어 시청자를 끌고 있다. 그 때문에 주례 ‘라디오 연설’은 이제 막을 내리고 있다고 예견한 신문도 있다. 오바마는 라디오보다 트위터와 페이스북 , 링크드인 같은 사회관계망으로 소통 통로를 확장하고 있다. 또 지난달 28일(토) 라디오 연설처럼 대통령 대신 바이든 부통령이 연설하기도 한다.
우리도 마찬가지이다. 통계는 없지만 엠비의 라디오 연설을 듣는 국민은 그리 많지 않을 것으로 본다. 신문이나 방송을 통해 연설 내용을 알고 있을 뿐이다. 그런데 최근 몇달간 보수언론 조중동에서조차 그의 라디오 연설을 제대로 보도하지 않고 있다. 라디오 연설이 여론의 관심을 끄는 것은 사실과 다른 통계로 노동자 파업을 비난하는 등 그 내용이 국론을 갈라놓았을 때이다. 이처럼 국론을 분열시킬 때가 아니면 관심을 끌지 못하는 대통령의 주례 라디오 연설을 공영방송을 통해 방송하고 있는 민주국가가 세계 어디에 있는가?
장행훈 언론인·언론광장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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