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1.06.07 20:41
수정 : 2012.01.13 10:32
미디어 전망대
지난주 금요일(3일) 낮에 국내 주요 방송사들은 모두 같은 프로를 생중계했다. <한국방송>(KBS), <문화방송>(MBC), <에스비에스>(SBS) 등 지상파방송 3사는 물론, 24시간 뉴스방송을 내보내는 <와이티엔>(YTN)과 <엠비엔>(MBN) 같은 보도채널과 <시비에스>(CBS) 라디오 방송까지도 같은 방송을 내보냈다. 그 시간에 방송을 보는 사람들이라면 대개 그중 하나는 접할 만한 채널들이다. 그런 동시 생중계 방송은 국경일 기념행사나 국민적 관심이 지대한 빅 이벤트가 있을 때, 혹은 국내외에서 큰 재난이나 사건사고가 터졌을 때 있는 일이다. 간혹 국가 원수인 대통령이 중대 발표나 특별담화를 할 때도 많은 방송사들이 이를 동시 생중계하곤 한다.
그런데 지난 3일의 동시 생중계는 한국방송기자클럽이 주최한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 초청토론회였다. 물론 방송사들 입장에서는 현실적으로 중요한 현안이 많이 다루어지는 토론회라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전국의 모든 시청자들에게 같은 시간에 토론회 시청만을 강제하는 듯한 방송사들의 ‘담합 편성’을 두고 볼 때는 시청자의 시청권을 크게 제약한 조처라 아니 할 수 없다. 우연의 일치인지는 모르지만 토론회 진행자와 패널을 내보낸 방송사들이 모두 동시 생중계를 했다는 점에서 본다면 참여 방송사들의 ‘기획 편성’이라는 의혹을 떨치기 어려워진다. 자기들끼리 모여서 하면 될 행사를, 전국에 동시 생중계했다는 점에서 ‘최시중 위원장 모시기 토론회’, 나아가 ‘방통위 홍보성 토론회’가 된 듯한 인상도 짙다. 이 역시 우연일 수 있겠지만, 마침내 ‘통신비 1000원 인하’라는 생색내기 결정을 발표한 바로 다음날 이루어진 토론회 생중계라는 점에서 홍보성 기획 방송 아니냐는 의혹은 더욱 커진다. 시장 논리 운운하면서도 결국은 한나라당의 여론 달래기용 압력에 굴복하고 통신업체를 겨우 굴복시킨 어설픈 승전보를 알리는 행사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특별하지도 않은 날에 (시청자 입장에서는) 별로 특별하지도 않은 분을 모시고 행한 토론회이고 보니 토론 내용에서도 특별한 내용은 없었다. 진행자는 “산재한 현안들에 대한 밀도 있는 토론”을 요구했지만, 방통위원장은 현안들에 대한 구체적인 해법을 내놓기보다는, 국민과 시청자의 편에서 열심히 노력하고 있다는 식의 업적 과시와 현안 해결을 위한 관심과 협조를 당부한다는 원론적인 ‘대충 토론’으로 일관했다. 준비된 마무리 발언에서는 국민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국민을 섬기면서 ‘세계 초일류 방송통신 코리아’를 실현하는 데 앞장서겠다며 끝을 맺었다.
언중유골이라고 할까. 그런 가운데서도 가장 새겨들을 만한 얘기는 종합편성채널(종편)에 대한 강력한 지원 의지였다. 곧 출범하는 종편을 갓 낳은 아기에 비유하면서, 아기가 “걸음마를 할 때까지는 각별한 보살핌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종편이 안착할 수 있도록 최대한 지원하겠다는 뜻도 밝혔다. 결국 글로벌 미디어기업 육성 운운하면서 (80점 이상의) 합격점을 받았다던 종편사업자가 갑자기 걸음마도 제대로 못하는 불쌍한 아기로 둔갑해 버린 셈이다. 정부가 도와주지 않으면 안 될 처지인 종편이 언제 글로벌 미디어기업으로 성장하여 초일류 방송통신 코리아의 선봉에 설지 자못 궁금해진다. 그리고 국민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국민을 섬기겠다는 방통위원장의 말은 차라리 하지 않았으면 더 좋았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국민과 여론을 무시해 왔던 그간 그의 행보를 잘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다.
강상현 연세대 언론홍보영상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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