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1.05.31 20:38
수정 : 2012.01.13 10:33
미디어 전망대
얼마 전 어느 기자가 쓴 ‘기자에게 영혼이 없다’는 제목의 칼럼이 눈길을 끌었다. 그는 “기자들이 이젠 용기가 없는 것이 아니라 영혼이 없어져 간다”고 한탄했다. 기자에게 영혼이란 기자 정신일 것이다. 기자 정신과 영혼이 없는 기자는 사이비 기자에 불과하다. 그들은 기자의 흉내를 내지만 그것은 단순한 밥벌이나 출세를 위한 발판 이상의 의미가 없다. 영혼이 없으니 진실을 밝힐 의지도 판단할 안목도 없다. 누군가의 지시와 조종에 충실히 따라 취재를 하고 기사를 쓸 뿐이다. 권력과 자본 그리고 그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언론 경영진의 요구에 순응한다. 사안의 본질을 파헤치려는 어떠한 노력도 필요 없다. 이들에겐 진실과 정의 따윈 중요하지 않다. 조직의 논리와 자신의 이익이 더 중요하다. 그러니 오보를 내고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자사의 이해가 걸린 사안에 대해서는 앞장서서 여론몰이를 하기도 한다. 사주의 경호원 수준으로 전락하기도 하는 조·중·동이야 말할 나위도 없고 공영방송마저 그러한 행태를 보인다. 수신료 인상이나 중간광고, 미디어렙 등에 대해 방송기자들이 어떻게 보도했는지 깊이 반성할 일이다.
진실을 지키려는 언론인으로서의 사명감을 지닌 지사적 기자는 이젠 철 지난 시절의 모습으로 여겨진다. 어쩌면 낭만적 사치라고 느끼는지도 모른다. 언론사 간의 경쟁이 날로 치열해지고 생존 경쟁에 내몰리기 때문이기도 하다. 애초 영혼 있는 사람들이 아예 기자가 되는 길이 점점 멀어지고 있다. 언론사 사주들은 언론 자유를 지키고 권력과 자본을 비판하고 감시하는 기자들을 영 못마땅해한다. 사주의 입맛에 맞고 상품가치가 있는 기사는 제대로 쓰지 못하면서 언론의 자유나 윤리의식만 내세우는 기자들을 뽑지 않으려 한다는 얘기가 나돈 적도 있었다.
한나 아렌트는 2차대전 때 수많은 유대인들을 학살했던 아이히만의 재판을 보면서 국가적이고 사회적인 악은 악한 성품을 타고난 사람이 저지르는 것은 아니라고 지적했다. 악은 지극히 모범적인 사람에게서도 얼마든지 저질러질 수 있다는 것이다. 자신의 행위가 사회적으로 어떠한 의미를 갖는지를 도대체 성찰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거짓과 왜곡보도는 세상을 어지럽히는 사회적 흉기라는 것을 도무지 인식하지 못한다. 비판적 사유능력이 없는 자들은 그저 조직이 요구하는 대로 충실할 뿐이다.
사이비 기자들이 득실거린다. 알량한 글재주로 사람을 끌어 들이는 기자들도 많다. 아이히만은 성실하기라도 했지만 사이비 기자들은 자기 직업에 대한 성실함이란 덕목조차 갖추지 못했다. 그저 권력과 자본이 던져주는 정보를 덥석 받아서 사실확인조차 하지 않고 기사로 내보내고 있으니 말이다. 유성기업 노동자들의 평균 연봉이 7000만원이라는 보도만 해도 그렇다. 배부른 노조의 불법 파업이라는 시나리오를 써놓고 그것에 맞추기 위한 재료로서의 쓰임새가 필요했던 것이 아닌가 싶다. 조금만 확인하면 금세 사실이 밝혀질 일이었다. 어쩌면 이들에게 사실은 중요하지 않거나 확인하기 싫었는지도 모른다. 불편한 진실을 외면하고 싶기 때문이다. 이들은 기자를 사칭하여 국민을 속이는 사기꾼에 불과하다.
자신의 이해와 밥그릇을 넘어서는 자가 진정한 기자다. 자신의 직업의식과 존재에 대한 성찰이 필요하다. 기자 영혼 회복 운동이라도 벌여야 할 판이다. 기자정신이야말로 갈수록 기승을 부리는 자본과 권력의 압박 속에서도 비판적 저널리즘을 지킬 마지막 희망이다.
정연우 세명대 광고홍보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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