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1.04.12 19:22
수정 : 2012.01.13 10:41
[미디어 전망대]
지난 주말 인터넷에 들어갔다가 내 눈을 의심케 하는 메일을 하나 보게 됐다. “방통위를 ‘언론검찰’로 만들 셈인가?”라는 제목의 언론노조 성명서였다. 국회 문방위에서 방송사 사찰 법안을 통과시킨 데 대한 항의 성명이었다. 내용인즉슨 방송통신위원회(방통위)가 “필요한 경우 소속 공무원으로 하여금 해당 사업장 등에 출입하여 조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법안이 문방위를 통과한 것이 그것도 지난달 10일이었다니, 언론의 숨통을 틀어막고 국민의 기본권을 말살할 수 있는 법을 국민들이 전혀 눈치채지도 못하게 아주 조용히 물밑에서 처리한 것이다. 그냥 넘어갈 뻔했던 중대 사안이 그나마 문제로 제기된 것도 거의 한달이 지나서인 셈이다. 그 과정에서 야당 의원들의 반대나 견제 혹은 비판의 흔적조차 찾기 어려웠으니 이 또한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국회 홈페이지에 들어가 문방위에서 통과되었다는 이 법안을 찾아봤으나 그 구체적인 내용을 확인하기 어려웠다. 방통위 ‘회의결과 보고’라는 파일에 그날 심사된 27개 법안의 안건 제목 및 가결되었다는 회의 결과만 나와 있었다. 그리고 바로 이어서 그다음 안건 심사로 넘어간 것으로 되어 있다. 다음 안건이 수신료 인상안과 최시중 방통위원장 인사청문회 실시와 관련된 것으로 봐서 야당 의원들은 아마 여론의 주목을 받아온 이들 안건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지 않았을까 미루어 짐작하게 된다. 그런 와중에 방통위 공무원의 방송사 출입 조사권 허용 법안이 상임위를 통과해 버린 것이다.
이 법안이 문제가 되는 것은 방송사에 관계 공무원의 출입을 허용하고, 현지 조사까지 할 수 있게 한 것이다. 이것은 방송사에 기관원 출입을 허용한 것과 다를 바 없다. 명백한 언론 자유 침해이다. 언론사에 기관원을 출입시키고 상주시켜 언론활동을 매일 감시하게 했던 유신시대의 악몽이 되살아난다.
더군다나 조사 대상이 “방송의 다양성·공정성·독립성 또는 시청자의 이익을 저해하거나 저해할 우려가 있는 행위”라니 놀랍기 그지없다. 그것은 방송사가 알아서 조심할 일이고 그에 대한 평가와 제재는 시청자와 시청자권익단체와 법정심의기구 등이 알아서 할 일이다. 기관원 출입과 조사 그 자체가 방송의 독립성과 공정성과 다양성과 시청자 이익을 저해할 우려가 더 있다고 할 것이다. 그동안 정치적 독립성과 공정성을 의심받아 온 방통위로서는 언어도단이자 자가당착이라 아니할 수 없다. 나아가 방송사에 대한 기관원 사찰 행위는 국민의 언론 자유를 보장하고 언론에 대한 검열을 금지한 헌법 정신에 정면으로 배치되므로 위헌의 소지조차 있다 할 것이다.
방통위 입장에서 조사가 필요하다면 현행 방송법의 테두리 안에서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방송법 98조는 정부나 방통위가 필요한 경우 방송사업자 등에 관련 자료 제출을 요구할 수 있게 했고, 이를 위반할 경우에는 그에 대한 벌칙조항도 두고 있다.
왜 굳이 사찰을 하려 하는가? 그 이유는 뻔하다. 방송사를 더욱 감시, 압박, 통제하려는 것이다. 언론사에 기관원을 출입시키는 것은 늘 독재국가에서 하던 일이다. 민주 국가에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다. 최시중 위원장이 2기 위원장으로 연임하면서 만든 정부·여당의 첫 작품이라면 매우 유감이다. 이제 방송통신위원회가 보다 확실한 방송통제위원회가 되겠다는 것에 다름 아니다. 국회에서 이를 막지 못하면 국민에게 또 한번의 죄를 저지르는 셈이다. 방송사 사찰법 반드시 막아야 한다.
강상현 연세대 언론홍보영상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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