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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12.15 18:57 수정 : 2006.01.17 03:57

지난달 3일 소록도와 전남 고흥군 도양읍 녹동 사람들이 함께 제주도를 찾았다. 한 녹동 주민 자원봉사자가 소록도 주민을 엎고 오르막을 오르고 있다. 사진 녹동항만발전협의회 제공

① 녹동과 소록도, 손 맞잡은 ‘제주 여행’

눈총이 싫어서, 힐끔 보고는 외면하는 그 눈길이 싫어서 여행 한번 제대로 하지 못했다. 불과 600m, 배로 딱 5분이면 건너편 뭍을 밟을 수 있는데, 섬사람들은 뭍엣사람들을 만나기조차 꺼렸다. 섬과 뭍을 갈라놓은 좁은 바다가 그들에게는 태평양처럼 넓어보였다.

그 섬, 소록도 사람들이 지난달 초 제주도로 여행을 했다. 무려 30여명이, 언론에 자랑까지 하고 단체로 다녀왔다. 여행길에는 코앞에서 마주보고 살면서도 수십년을 외면해 왔던 녹동 사람들이 동행했다. 소록도에 한센인들이 들어간 뒤 두 동네 사람들을 갈라놨던 마음의 벽을 허무는 ‘아름다운 동행’이었다.

“멋쩍어 돌린 눈길 비수였다니…”

소록도로 가려면 전남 고흥군 도양읍 녹동항에서 배를 타야 한다. 소록도 사람들에게 녹동은 제2의 삶터다. 관공서도, 은행도, 시장도 모두 녹동에 있다. 그런데도 두 지역 사람들은 서로 눈을 맞추지 않으며 살아왔다.

지난 6월, 국가인권위원회가 이곳에서 ‘지역사회 공동체 토론회’를 열었을 때였다. 소록도 사람들은 녹동 사람들에게 가슴에 묻어두었던 이야기를 작정하고 털어놓았다. “서럽다. 다른 사람들보다도 당신네 녹동 사람들한테 사람 대접 못 받는 게 서럽다!”

그 여름, 소록도 사람들의 말이 녹동 사람들 가슴에 박혔다. 서둘러 눈길을 피했던 게 진심은 아니었는데, 녹동 사람들도 멋쩍어 그랬던 것인데! 그 이야기를 들으니 비수에 찔린 듯 가슴이 아팠다. 그리고 가을, 녹동 주민들 모임인 녹동항발전협의회가 소록도 사람들을 초대했다. 제주도에 가자고. 녹동에 사는 경찰, 공무원, 해운사 대표, 건설사 직원 등 회원 열넷이 나들이를 준비했다. 그 소식에 녹동 다른 사람들이 뜻과 돈을 보탰다. 여행단 규모도 커졌다. 모두 75명이 1박2일 예정으로 제주도행 배를 탔다.

“소록도가 녹동 발전을 가로막는다고 여기는 사람들도 사실 있어요. 하지만 진정한 지역 발전을 위해서는 소록도 사람들을 이웃으로 대하는 게 먼저라고 마음을 모았어요.” 김양섭 녹동항만발전협의회 회장은 힘을 보탠 이웃들에게 공을 돌렸다.

수십 년 꽁꽁 묶여있던 감정의 매듭은 여행길에 나서자 술술 풀려나갔다. “녹동 사람들이 같이 여행을 가자고 해서 말할 수 없이 반가웠습니다. 여행을 하면서 수십 년 동안 맺힌 마음이 다 풀렸습니다. 이제는 정말 오순도순 이웃으로 살았으면 좋겠어요.” 김명호 국립소록도병원 주민자치회 회장은 “지금도 일흔을 넘긴 어르신들이 모여 앉아서 제주도에 갔던 얘기를 하면서 고맙다는 말을 하고 또 한다”고 전했다.


내년엔 몸 불편한 분들도 함께

따듯한 마음 씀씀이란 생각보다 얼마나 빨리 퍼져 나가는지, 발전협의회에 이어 다른 녹동 주민들도 소록도를 찾아가기 시작했다. 녹동 주민들은 최근 몸을 못 움직이는 소록도 환자들의 머리 손질 봉사를 시작했다.

내년에는 아마도 더 떠들썩하게 여행을 다녀올 것 같다. 김주식 고흥항운노동조합 위원장은 “올해에는 건강한 분들만 함께 여행을 다녀왔는데, 내년에는 몸이 불편해서 몇 해 동안 바깥 나들이를 하지 못한 어르신들과 같이 제주도 구경을 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지금 소록도와 고흥만 사이에는 2007년 완공을 목표로 다리 공사가 한창이다. 콘크리트 다리보다 더 튼튼한 이웃간의 정이 소록도와 녹동항 사이를 이미 이어주고 있었다. 고흥/박주희 기자 hop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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