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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2.06.24 19:50 수정 : 2012.07.12 1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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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거노인 120만명 중 77%가 빈곤층
노인돌봄이 등 정부 지원 못미쳐
실태조사 결과 12%가 자살 시도
50~60대 중년 고독사도 급증 추세

3평 남짓한 연립주택 반지하 방은 대낮인데도 어두침침하고 습했다. 창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날씨도 화창한데 열어놓으시지 그랬어요”라고 묻자 이석곤(70) 할아버지는 “지나다니는 사람들이 혼자 사는 늙은이를 하도 쳐다봐서…”라고 말끝을 흐렸다.

결혼도 하지 않은 채 홀로 살아가는 이석곤 할아버지가 지난달 23일 서울 영등포구 당산1가 자신의 지하 단칸방 문 앞에서 취재를 끝나고 돌아가는 <한겨레> 취재진을 배웅하고 있다.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지난달 15일 찾아간 서울 영등포구 당산1가 한 연립주택의 단칸방 주인인 이 할아버지는 40살 때 고향 전주에서 서울로 일자리를 찾아서 올라온 뒤 평생 결혼도 하지 않은 채 혼자 살고 있다. 지금의 반지하에서는 9년째 거주중이다. 서울에 올라온 뒤 건설현장에서 막노동을 하며 지내온 그는 “저 같은 사람과 누가 결혼하겠어요”라고 자조 섞인 목소리로 말한다. “결혼할 기회도 없었지만 생기기도 못생겼잖아요”라는 말도 이어진다. 여동생은 둘이 있으나 그다지 자주 왕래하지 못한다. “내가 있어야 밥이라도 먹었느냐고 하지, 내 것 없으면 매제와 조카 보기에도 눈치가 보여요.”

이 할아버지는 13~14년 전부터 몸이 안 좋아지면서 일을 그만두고 월 28만원가량 나오는 ‘기초생활수급’과 65살 이상 고령연금 9만1000원에 기대어 산다. 여기에 월 13만원의 월세를 내고 나면 생활비도 벅차 저축은 꿈도 못 꾼다. 햇볕이 잘 드는 지상으로 옮기려고 해도 20만원은 줘야 하고, 그러면 병원에도 못 가는 현실에 가로막혀 있다. 그나마 병원 진료비와 약값은 기초생활수급자로 지정돼 거의 무료이지만 자기공명영상촬영(MRI)이나 컴퓨터단층촬영(CT) 등 고가의 장비는 ‘그림의 떡’ 같은 존재이다.

인터뷰 내내 시원한 대답을 주저하던 그는 “어디가 안 좋으시냐”는 물음에는 주섬주섬 여러가지 약봉지를 꺼내며 속내를 털어놓는다.

“당뇨도 있고, 허리디스크도 안 좋아요. 간도 안 좋고…. 당뇨약, 고혈압, 심장약, 안과 망막증약 등은 5~6년 전부터 먹고 있어요.” 특히 당뇨는 심하게 진행돼 합병증 증상까지 나타나고 있다.

그래도 이 할아버지의 삶은 2년 전에 비해 크게 나아졌다. 영등포노인종합복지관이 관내 독거노인 실태를 전수조사하면서 이 할아버지를 발견하지 못했다면 고독사했을지도 모른다. 노인복지관의 ‘돌봄이’가 2년 전 이 할아버지 집에 처음 들어갔을 때는 벽지가 군데군데 찢어지고 방안 곳곳에 곰팡이가 많이 피었다고 한다. 이 할아버지를 담당하는 돌봄이 김명숙(가명·48)씨는 “어르신이 거의 고립된 상태에서 발견됐다”며 “처음에는 도움을 받는 것에 거부감을 보였으나 도배를 해드리고 밑반찬도 해드리면서 마음의 문이 열었다”고 말했다.

2년 전 당뇨 혈당수치(식후 2시간 뒤)도 정상치의 5배가량인 600㎎/dl까지 나왔으나 지금은 250㎎/dl 수준까지 내려왔다. 이 할아버지도 당뇨 완화를 위해 매일 꾸준히 걷는 일에 열심이다. 복지관 쪽이 만일의 사태를 대비해 돌봄이와 단번에 연락할 수 있는 ‘안심폰’(화상폰)도 설치해 놓았다. 밥도 열심히 해먹고 설거지도 그때그때 마무리하는 등 비교적 깔끔하게 생활하는 편이다.

2년 전에 비해 삶이 나아졌다고는 하지만 이 할아버지는 여전히 공기 소통도 잘 안되는 집 안을 중심으로 고립된 채 살아가고 있다. “소망이 무엇이냐”는 물음에 냉장고를 가리키며 “모터 소리가 심하게 왱왱거려서 내가 잠을 못 잔다”는 답이 돌아왔다. 상표를 보니 엘지 전신인 ‘골드스타’였다. 출시된 지 30년쯤 되어 보였다.

이 할아버지처럼 사회적으로 고립된 채 경제적 빈곤과 질병에 허덕이는 ‘고독사 예비군’은 10만명으로 추정된다. 보건복지부는 지난 4월 내놓은 자료에서 사회적 관계 단절로 일상생활 능력이 심하게 떨어지는 ‘위기 가구’를 9만5000명으로 추정했다. 여기에다 사회적 교류가 일부 이뤄지지만 일상생활에 제한이 많은 ‘취약 가구’(20만5000명)까지 포함하면 정부의 지원이 당장 필요한 독거노인은 30만명까지 확대된다.

그러나 독거노인 돌봄이 서비스, 기초생활보장수급과 노인 일자리 등 정부의 지원을 받는 독거노인들은 크게 제한돼 있다. 특히 독거노인의 자살 문제는 심각하다. 10만명당 81.9명인 전체 노인 자살자 수보다 훨씬 높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으나 별도의 대책은 부재한 실정이다. 복지부의 지난해 11월 실태조사 결과(1만7850명 대상) 자살을 생각해본 적이 있는 사람은 15.1%에 이르고 이들 중 11.8%가 실제 자살을 시도한 것으로 나타났다. 복지부 관계자는 “독거노인의 경우 자살을 시도하면 도와주는 사람이 없어 성공률이 매우 높다”며 우려를 표명했다.

고독사의 가장 밑바닥에는 빈곤과 질병 문제가 짙게 깔려 있는데도 정부의 손길이 태부족한 게 현실이다. 복지부 자료를 보면 2012년 현재 독거노인 119만명 가운데 ‘빈곤층’(중위소득의 50% 이하인 상대적 빈곤층)은 77%인 91만명에 이른다. 50만원 남짓의 최저생계비 이하 소득을 갖고 있는 독거노인은 42.5%(50만명)에 이른다. 이에 비해 정부의 소득보장 지원을 받는 독거노인은 기초생활보장수급자(23만4000명), 노인 일자리 참여자(8만4000명) 등 전체 독거노인의 28.8%(31만8000명)에 불과하다. 이렇다 보니 돈 때문에 비극적인 상황이 발생하기도 한다.

재작년 5월 췌장암 수술을 받은 한 60대 남성이 아들이 병원비를 마련하지 못해 고민하는 것을 보고 아픈 몸을 이끌고 병원에서 나와 집에서 자살했다. 지방에서 공장을 다니던 아들은 퇴원 소식을 까맣게 모르다 일주일 뒤에야 소식을 듣고 달려가서 통곡을 했다.

이석곤 할아버지의 방 한쪽 벽면엔 만일의 사태를 대비하기 위해 영등포노인종합복지관과 단번에 연락할 수 있는 ‘안심폰’(화상폰)이 설치되어 있다. 류우종 기자
고독사를 막을 질병·응급상황 대책 부족은 더욱 심각하다. 질병으로 일상생활 수행에 곤란을 느끼는 독거노인은 전체 노인의 17%(20만명)에 이르고 있으나 이 가운데 장기요양과 노인돌봄종합서비스 등을 받는 노인은 그중 31.5%에 불과하다. 특히 응급상황 발생 때 고독사를 직접 예방할 수 있는 노인돌봄기본서비스와 응급안전서비스, ‘노노케어’(독거노인이 독거노인을 돌보는 서비스)를 받는 독거노인은 전체의 17.4%(20만7000명)에 지나지 않는다.

고독사의 문제는 노령층에 한정된 문제가 아니다. 장례업계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정부의 관심이 독거노인에 집중되면서 최근 들어서 65살 이상 고령자의 고독사는 줄어들고 있는 반면, 50~60대 초반의 중장년 고독사가 크게 늘고 있다. 중장년층 고독사는 여성보다 남성이 압도적으로 많은 게 특징이다. 홀로 사는 남성은 자존심이나 과거 지위를 털어내지 못해 여성보다 사회적, 경제적으로 고립된 채 살아가는 경우가 많은 탓이다.

여기에다 이혼·사별로 혼자 살다 자살했다 뒤늦게 주검이 발견되는 20~30대 청년층의 고독사도 적지 않다.

한 유품관리업체 관계자는 “내가 처리한 고독사 가운데 자살의 경우는 1년 전에 비해 30%가 늘었다”며 “고독사한 중장년층의 경우 자식들이 있어도 이들이 사회적인 기반을 잡지 못하거나 결혼 전이어서 신경을 쓰지 못해 비극으로 이어진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김도형 선임기자 aip20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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