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12.02.22 19:04 수정 : 2012.02.22 23:57

2030 고장난 세상을 말하다
④ 정당 불신의 대리인 안철수

2030 불안한 삶, 대의민주주의 불신 낳다
변화 열망→안철수 열풍으로 정치 바꿀진 ‘기대반 우려반’

2030들은 투표하겠다는 의지가 강했지만, 그 이상으로 기존 정당과 정치인에 대한 불신이 깊었다. 지난 15년 동안 새누리당과 민주당 사이에 정권교체가 두 차례 이뤄졌지만, 2030들의 삶은 여전히 불안하다. 2030들 다수에게 민주통합당은 새누리당과 별반 다르지 않은 이미지로 각인돼 있었다. 만약 민주통합당이 올해 양대 선거에서 이긴다 해도, 2030은 언제든 등을 돌릴 준비가 돼 있는 것이다.

기존 정당과 정치인에 대한 불신은 변화를 향한 열망으로 이어졌고, 때마침 ‘도덕적으로 깨끗하게 성공한 경영인’이란 이미지로 주목받던 안철수 교수(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가 ‘대리인’으로 떠올랐다. 지난해 9월 서울시장 보궐선거를 앞두고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안 교수는 기존 정치권과 거리를 두면서도 한때 ‘박근혜 대세론’까지 무너뜨리는 기염을 토했다. 하지만 총선과 대선이라는 두 번의 큰 선거가 가시권에 들어오면서 2030들은 안철수 교수에 대한 호감의 이면에서 조금씩 의문을 품기 시작했다. “안철수가 과연 현실 정치를 바꿔낼 수 있을까?”
32년 전 민주화 운동으로 달궈졌던 광주 동구 금남로1가 1번지 전일빌딩에 한 민주통합당 총선 예비후보가 내건 펼침막이 걸려 있다. 박현정 기자

“서민삶 변한게 없어” 깊어진 정치불신

새누리가 원래 검다면 민주, 결과적으로 검어
진보정당들은 ‘듣보잡’ 국민과의 스킨십 없다
경제권력 바꿀 당 없어 하지만 할 것은 투표뿐

광주 동구 금남로1가 1번지 전일빌딩에는 ‘분노하라’라는 글귀가 굵게 적힌 펼침막이 나부꼈다. 32년 전 이곳을 민주화 운동의 성지로 만들었던 그 함성을 2012년에 재연하라는 말일까. 4월 총선 출마를 선언한 어느 민주통합당 예비후보가 건물 6개 층에 걸쳐 내건 이 펼침막은, 그러나 시민들의 바쁜 걸음 앞에서 한없이 무력해 보였다.

금남로 부근에서 만난 김윤석(30·남)씨는 총선 예비후보들의 선거 구호에 별 감흥을 느끼지 못한다고 했다. 김씨는 광주에서 나고 자랐다. 2002년 대통령 선거 때까지는 민주당을 지지했다. 부모의 영향이 컸다. 그러나 2004년 노무현 대통령 탄핵 사건과 2008년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집회, 지난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반대 집회를 거치면서 모든 정당과 국회의원에 대한 불신이 굳어졌다. “여론과 상관없이 대통령 탄핵을 둘러싸고 국회의원들이 벌이는 난장판이 우스워 보였어요. 집회에 직접 나가 보기도 했지만, 시민들이 거리에서 그렇게 반대를 외쳤는데도 달라진 건 아무것도 없잖아요.”

그가 보기엔 새누리당이나 민주당 모두 서민들을 대변하지 못한다. 진보정당은 현실과 너무 동떨어져 생뚱맞아 보인다. “대선에서 누가 당선될지는 궁금하지만, 총선은 딱히 관심이 안 가요. 지금껏 나온 후보들은 난생처음 본 사람이거나 만날 출마하는 옛날 정치인들이죠. 이번 총선에서는 인물만 놓고 본다면 새누리당 후보를 찍을 의향도 있습니다.”

수십년간 기성 정치권을 지배해온 공고한 지역주의가 청년세대에선 균열을 보이고 있는 걸까. 민주당의 텃밭인 광주의 2030, 새누리당이 막대기만 꽂아도 당선된다는 경북 구미의 2030은 오랫동안 지역에서 뽑히고 또 뽑힌 터줏대감들을 하나같이 외면했다. 광주에서 만난 2030 7명은 모두 ‘지지 정당이 없다’고 선언했고, 구미의 2030 5명 중에서도 새누리당 지지자는 찾아볼 수 없었다. 이들은 대체로 현 집권 세력인 새누리당에 강한 반감을 나타냈지만, 그 반감을 껴안을 수 있는 대안세력으로 민주당을 지목하지는 않았다. 민주당은 새누리당과 똑같은 기득권 세력이거나, 무능함의 상징이었다.

■ “새누리당은 원래 검고, 민주당은 결과적으로 검다” 전라남도에서 나고 자라 광주에서 대학을 나온 뒤 한 사립고교 기간제 교사로 일하고 있는 신은정(가명·30·여)씨에게 민주당은 새누리당과 별로 다르지 않은 정당이다. 그는 정치인이 국회에 들어가 입법권력이 되는 순간, 새누리당이든 민주당이든 ‘나눠먹기’를 하는 이권세력이 된다고 본다. 신씨는 최근 민주당이 민주통합당으로 당명을 바꾼 것을 두고도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다. “‘통합’이란 말이 들어갔지만, 전체적인 통합과 소통을 하지 못하고 그냥 자기들끼리 모인 거 아닌가요.”

광주에서 치과의원을 개업한 의사 조승환(가명·34·남)씨에게 민주당은 ‘철새’ 같은 느낌을 준다. 새누리당이나 보수 세력보다 조직 체계가 허술하고, 뚜렷한 색깔이나 정치적 신념도 없다고 생각한다. “지역색이 남아 있긴 하죠. 하지만 빈부격차가 벌어지다 보니, 이젠 지역보다는 계층 격차가 더 크게 느껴집니다. 지금은 무조건 새누리당이 싫기 때문에, 민주당 후보를 찍긴 할 겁니다. 그러나 새누리당이 원래 검다면, 민주당은 이 색깔 저 색깔이 섞여 결과적으로 검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광주에서 사립학교 기간제 교사로 일하고 있는 김화은(가명·25·여)씨는 새누리당을 ‘노무현 대통령을 죽게 만든 장본인’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민주당에 선뜻 마음이 가는 것도 아니다. “김대중, 노무현 두 민주당 대통령을 뽑았지만 바뀌는 게 없잖아요. 지역적으로도 변하는 게 없었고요.”

광주만이 아니었다. 서울의 사립학교 교사인 김우섭(가명·36·남)씨는 자신을 ‘단순 반새누리당’이라고 규정했다. “민주당은 속내가 새누리당과 비슷하면서도 민생을 앞세우긴 하죠. 그러나 정작 민생이 무엇인지는 모르는 것 같아요. 민주당이 집권하더라도 경제권력은 바꾸지 못할 겁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희망을 갖지 못하는 것 같아요.”

직장인 남성진(가명·28·남)씨는 개인적인 경험 때문에 민주당의 정체성을 신뢰하지 못하게 됐다. 한 대학 친구는 어릴 때부터 서울 강남구 청담동에 살았고 돈을 물 쓰듯 했으며, 어릴 때 외국에 나가 살다가 귀국해 수시모집으로 쉽게 대학에 합격했다. 전형적인 기득권층의 모습이라고 했다. 하지만 친구의 아버지는 법조계에 있다가, 2004년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민주당의 전신인 열린우리당의 공천을 받았다. “얼마나 아이러니한가요. 이런 걸 보면 정치인들에겐 나라를 바꾸겠다는 대의, 이런 건 없는 것 같아요. 새누리당이나 민주당 둘 다 바보지만, 새누리당이 상바보인 형국이죠.”

“민주당은 민주화 세대의 감수성에 의존하지만, 이념 정당은 아닌 것 같다. 386세대를 대변하는 건지, 중산층을 대변하는 건지, 그들의 견해가 뭔지 잘 모르겠다. 지금 당장은 정권교체의 열망을 담을 수 있는 그릇일지 모르겠지만, 언젠가는 없어져야 하지 않을까.” 21살 김민수씨가 말했다.

■ 진보정당은 투명망토를 걸치고 있다 반새누리당 정서가 강하지만, 민주당을 대안으로 생각하지 않는다면 통합진보당과 진보신당 등 진보정당이 그 자리를 대체할 수 있을까. 하지만 진보정당은 눈에 띄지 않는 ‘듣보잡’(듣지도 보지도 못한 잡놈)에 불과하다고들 말했다.

전남대에 다니는 김소은(가명·23·여)씨에게 통합진보당과 진보신당은 “아예 생각 안 해본 정당이고, 모르는 존재들”이었고, 광주의 자영업자 박준수(가명·32·남)씨에게는 “이름은 들어봤지만, 어떤 당인지는 모르는 정당”이었다. 김우섭씨는 “심정적으로는 진보정당을 지지하고 싶지만, ‘듣보잡’이다. 정당이 국민과 이런저런 스킨십이 있어야 하는데, 진보정당은 국민과의 스킨십이 없다”고 했다.

계급 문제가 지역 정서보다 더 중요한 문제라는 인식은 하고 있지만 정작 진보정당과 거리감을 느끼는 2030도 있었다. 김윤석씨는 “진보라는 성향은 좋지만 무조건 반대만 하는 것을 보면 현실에서 괴리감이 느껴진다”고 말했다.

2008년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의 분당 사태가 외면을 부추긴 측면도 있다. “민주노동당 초기에는 개혁을 시도한다는 느낌이 있었죠. 그러나 물도 고이면 썩는 것처럼, 진보신당과 분열하면서 그 원인이 기득권 싸움처럼 보여 실망했습니다.” 조승환씨의 통합진보당 지지 철회 이유다.

진보정당에 호감을 보이면서도 그 한계를 지적하는 견해도 있었다. 김민수씨는 “통합진보당이 옳은 길을 가야 한다는 생각을 하지만, 그 알량한 조직을 갖고도 ‘땅따먹기’를 하는 것 같다”며 “진보 진영은 청춘 세대를 계몽의 대상으로만 보고, 커뮤니케이션의 주체로는 인정해주지 않는다”고 말했다.

2030세대 정당 지지율 및 정당에 대한 인식 (※클릭하면 큰 그림을 볼 수 있습니다)
■ “나를 대변해주는 정당이 없다” 2030이 지역 정서에서 떨어져 나와 강력한 ‘무당파’적 정서를 보이고 있는 건, ‘망국적 지역주의 해체’라는 대의를 따른 결과가 아니다. 다수의 2030은 정치인의 비리를 자주 다루는 언론을 통해 정치에 부정적 인식을 체득했고, 지난 10여년간의 정치가 자신들의 삶을 하나도 개선해주지 못했다는 생각으로 불신을 키워왔다.

강원택 서울대 교수(정치외교학)가 지난해 12월 한국청년정책연구원이 주최한 ‘대한민국 2030 청년세대를 말하다’ 심포지엄에서 발표한 ‘2030 청년세대의 정치의식과 참여’라는 연구 결과를 보면, 20대의 65.1%가 ‘지지 정당이 없다’고 답했다. 한겨레사회정책연구소와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지난 1~6일 2030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온라인 설문조사에서는 20대 449명 가운데 79.3%(356명)가 ‘나를 대변하는 정당이 없다’고 답했다. 이 비율이 30대에선 77.3%(551명 가운데 426명)로 나타났다.

‘무당파’를 자처하는 이장우(가명·28·남)씨에게 기성 정치인들은 모두 부정·비리로 꽉 찬 진흙탕에 몸을 담그고 있는 사람들처럼 보인다. 여당이든 야당이든 권력을 잡으면 ‘골리앗’처럼 커다란 조직에 안주하면서, 국민을 위해 써야 할 권력을 자신들의 사사로운 이익을 위해서 쓴다고 했다. “디도스 사건이나 돈봉투 사건 등 숨 쉴 틈도 없이 부정, 비리와 관련된 뉴스가 터져나오잖아요. 그런데 새누리당만 그런 게 아니라, 지난 정부에서 민주당도 그랬잖아요? 정당이 제대로 잘하고 있다는 얘기를 들어본 적이 없으니까, 그냥 싫습니다.”

송민주(가명·34·여)씨는 중소기업 노동자와 프리랜서 방송작가라는 두 가지 직업을 갖고 힘겹게 살아가고 있지만, 사회적 관심은 저소득층 노인들에게 가 있다고 했다. 하지만 자신들의 이해관계에만 매몰된 정치인들이 저소득층을 돌보는 제도를 제대로 만들어낼 것이라고는 기대하지 않는다. “바뀌어야 한다는 생각은 누구나 하고 있지만 현실이 곧 바뀔 것이라는 기대가 없는 거죠. 정치가 제도를 바꾸려면 그 사이에 수많은 이해관계가 작동하니까, 정말 오래 걸리거나 혹은 우리의 삶과 동떨어진 방향으로 가고 말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대학생 김민재(가명·21·남)씨도 한국에는 제대로 된 정당이 없다고 생각한다. “정치라는 게 정당마다 이념과 색깔이 있어야 하는데, 여당이 엘리트들의 이익을 추구하는 쪽이라면 야당은 반대로 서민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게 맞죠. 하지만 한국의 야당은 서민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게 아니라, 정권을 잡으려고 서민을 이용하고 있죠. 한-미 에프티에이와 관련해서도, 노무현 대통령 때 한-미 에프티에이를 지지하던 사람들이 이제 와서 반대하는 걸 보면 색깔도 없고 일관성도 없다는 생각이 들어요.”

구미의 노동자 김지연(가명·32·여)씨도 “정당정치가 사람들이 살기 좋아지는 세상을 만드는 데 별 도움이 안 되는 것 같다”며 “정치인들은 결국 자기가 속해 있는 당의 이익을 위한 싸움만 할 뿐”이라고 말했다.

■ 탈정치화 세대의 정치 복귀? 이들은 정당정치를 불신하면서도 선거를 통한 대의정치를 완전히 외면하진 않았다. 이들에게 ‘투표’는 하나의 ‘의무’다. 언론이나 기성세대가 젊은 세대에게 퍼부었던 “투표하지 않으면 불만을 토로할 자격도 없다”는 말을 별다른 반발 없이 그대로 되짚어 읊는 2030도 있었다.

지방대 의과대학에 재학중인 김경주(가명·21·여)씨는 ‘지지 정당이 없다’고 했지만, 올해 총선과 대선 때 꼭 투표를 하겠다고 말했다. “투표를 안 하면 뭔가 사회에 불만을 이야기할 자격이 없는 것 같아요. 1~2년 전부터 사회적 이슈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 그런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선거 외에 어떤 정치적 활동을 해야 할지 모르기 때문에 투표를 하겠다는 의견도 있었다. “하루 종일 일을 하거나 스펙을 준비하는 우리 또래들 처지에선 운동권에 참여하거나, 시민단체에서 활동하지 않는 이상 할 수 있는 게 투표밖에 없지 않을까요.” 구미의 노동자 고창민(가명·21·남)씨가 말했다.

이재훈, 광주/박현정 기자 nang@hani.co.kr

광고

관련정보

브랜드 링크

기획연재|한겨레 in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