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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2.02.22 18:42 수정 : 2012.02.22 22:51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이 지난 6일 서울 중구 태평로 언론회관에서 열린 안철수재단 설립 기자회견에 참석해 옆자리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기존의 정치인들은 우릴 위로해준적 없다”
“호감과 투표는 별개, 정치적 힘엔 의구심”
“정치법칙 너무 무시해, 한계 부딪힐수도 있어”

기존 정치에 대한 실망과 불신은 새로운 인물을 요구한다. 한국 사회는 현실정치에 피로감이 쌓일 때마다 새로운 인물로 변화를 요구했다. 1990년대 중반의 ‘깨끗한 정치인’ 박찬종, 1997년 ‘리틀 박정희’ 이인제, 2002년 민주당 경선 과정에서 일어난 노무현 열풍은 다 같은 맥락에 있다. 성공 열풍이 거세게 불며 정치에 대한 관심이 확연히 줄었던 2007년 대선에서 새로운 인물은 ‘경제 대통령’ 이명박이었다.

<한겨레>가 심층 인터뷰한 36명 가운데 다수는 2012년을 장식할 ‘새로운 인물’로 안철수를 꼽았다. 특히 ‘지지하는 정당이 없다’고 답한 이들 가운데 안철수 지지 비율이 높았다. 이들이 안철수를 말하는 까닭은 무엇일까.

■ ‘깨끗한 성공’과 ‘끝없는 노력’ 안철수에 대한 호감에는 ‘깨끗하게 성공한 사람’이라는 이미지가 크게 작용했다. 힘겨운 자신의 처지를 헤아려줄 롤모델이나 멘토로서 카리스마를 지닌 인물이라는 이야기도 많았다. ‘무당파’인 자영업자 이송희(가명·32·여)씨는 ‘재미와 의미가 있고 잘할 수 있는 일을 하라’고 말한 안철수의 발언을 따로 메모해둘 만큼 강한 호감을 드러냈다. “안철수는 많이 공부한 사람이고, 부와 명예를 가지고 있는 성공한 사람이죠. 강하고 근엄하면서도 자유로움과 따뜻한 느낌을 함께 주는 인상입니다. 여러 사람의 마음을 돌보는 감성정치가 가능할 것 같아요.”

‘무당파’ 직장인 송민주(가명·34·여)씨도 “기존 정치인보다 깨끗해 보이고 성공한 사업가라서 뭘 해도 잘할 것 같은 ‘엄친아’(엄마 친구 아들) 이미지가 있고, 그에 대한 믿음이 있다”며 “포기를 모르면서도 진지하고 배려 있게 말하는 그의 모습에서 부드러운 권위를 느낄 수 있다”고 말했다. “보수냐 진보냐를 떠나 인물을 본다”고 한 ‘무당파’ 직장인 김서연(가명·25·여)씨도 “착한 경영인으로서 성공해온 능력도 중요하고, 청년실업 등으로 힘겨운 청춘들을 처음으로 위로해준 인물이라서 존재 자체로 위안이 된다”며 “기존의 정치인들도 일자리 창출 등을 많이 얘기했지만, 우리를 위로해준 적은 없다. 사회를 바꾼다며 말로만 비현실적인 공약을 내세우는 인물보다는 위로해주는 사람이 훨씬 낫다”고 말했다.

부단히 노력하고 끝없이 도전하는 모습에서 호감을 느끼는 이들도 있었다. 역시 ‘무당파’인 대학생 김민재(가명·21·남)씨는 “일단 의사가 됐고, 그러면서도 명예가 보장된 외과 과장 자리를 버리고 컴퓨터 바이러스를 없애려고 기득권을 포기했다는 걸 알게 된 뒤 ‘정치 일선에 나오면 무조건 뽑아야지’ 하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는 “잠을 3시간밖에 자지 않으면서 프로그래밍했다는 얘기를 듣고 재미있는 사람이구나, 나도 잠을 줄이고 싶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고 덧붙였다. 구미의 한 장비제조업체에서 일하는 김현수(가명·21·남)씨도 “기존의 정치인들과 달리 인간적인 친근함을 갖추고 있으면서도, 일밖에 모른다 싶을 정도로 끊임없이 도전하고 노력하면서 하는 분야마다 성공을 거두어 왔다는 점에서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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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치인’ 안철수에 대한 의구심 안철수가 자꾸 거론되는 까닭은 2030들이 기존의 이념과 정치로부터 거리감을 두고자 하는 의도에서 비롯된 측면이 있다. 기존 정치인과 정당에 대한 불신과 혐오가 새로운 정치에 대한 요구를 낳은 것이다. 결국 안철수는 때마침 그 자리에서 그 열망을 대신 소구해줄 ‘대리인’ 노릇을 하고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광주 토박이 김윤석(30·남)씨는 “‘정치인들이 잘했으면 나 같은 사람이 화제가 되겠느냐’는 안철수의 말에 동감하게 됐다”며 “정치인은 항상 변명하거나 거짓말을 하는데, 안철수는 ‘우리같이 먼저 태어난 사람들이 제대로 된 터전과 여건을 만들어주지 못해서 당신들이 고생하는 것 같다’며 자기반성을 먼저 했다는 것 자체가 좋아 보였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들은 기존의 이념이나 정치에 거리감을 두고 새로운 인물을 찾는 것일 뿐, 새로운 정치 패러다임으로의 전환을 상상하거나 요구하는 데까진 가지 못하고 현실정치의 잣대로 복귀했다. 이들은 안철수에 대한 호감에도 불구하고, 그가 현실정치에 나섰을 때 과연 연착륙을 할 수 있을까 하는 강한 의구심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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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성향은 일단 ‘계급정치’에 가장 강력하게 발언한 서울 강남권에서 도드라졌다. 서울 송파구 잠실동에 살면서 외국계 금융회사에 다니고 있는 김승우(가명·31·남)씨는 “안철수가 끊임없이 노력하고 자기 자신에게 끝없이 도전하는 모습에서 동질감을 느끼고 있다. 존경하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면서도 “기업에서 사람을 다루는 것과 국민을 대하는 것, 즉 업무적인 능력과 정치적 리더십은 분명 다르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정치인으로서는 의구심을 던질 것”이라고 말했다. 강남구 압구정동에 살고 있는 임주현(가명·28·여)씨도 “안철수는 존경할 만한 기업인이고, 함께 나누고 공유하는 모습에서 좋은 멘토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면서도 “사람이 좋은 것과 정치적인 능력은 별개의 문제”라고 선을 그었다.

이런 정서는 새누리당 지지자가 많은 강남권에만 국한되지 않았다. 김우섭(가명·36·남)씨는 “청렴결백한 이미지는 좋지만, 한국 정치는 혼자서 할 수 있는 게 아니다”라며 “안철수가 당선된다고 해도 측근들을 관리감독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고, 문제가 생기면 곧 실망할 수도 있기 때문에 지금은 안철수를 지지할지 말지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구미의 대기업 사무직 노동자 조성수(가명·21·남)씨도 “안철수가 출연한 ‘청춘콘서트’를 봤는데, 한국 사회가 어떻게 발전해갈 것인지 잘 알고 있다는 점에서 일단 호감이 갔다”면서도 “결국엔 무언가를 실천하기 위해 정당정치를 해야 하는데 계속 그러지 않고 있으니까 가끔 의구심이 든다. 지금은 정당이 잘못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정당정치를 없앨 수는 없는 것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위로해주는 멘토”로서 안철수에게 호감을 나타냈던 ‘무당파’ 직장인 김서연(가명·25·여)씨도 “‘정치권에서도 부드럽게 하는 정치가 먹힐까’, ‘다른 당이랑 손잡으면 휘둘리지 않을까’, ‘그 사람의 뜻을 똑바로 펼칠 수 있을까’란 생각이 자꾸만 든다”며 “안철수에겐 정치인으로서의 권위나 권력의지 같은 것들이 좀더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구미의 제조업체에서 일하는 서한승(가명·27·남)씨는 “대기업이 공정하지 않다는 문제에 동의하지만, 안철수는 대기업을 누를 수 있는 정치적인 힘이 없을 것”이라며 “그가 표현하는 올바름 때문에 사람들이 그를 좋아하고 롤모델로 삼을 수도 있겠지만, 올바름은 정치의 영역에서 쥐약이 될 수도 있다. 정면으로 안 되면 우회로를 통해서라도 개혁해야 하는데, 안철수는 너무 정공법만 추구할 것 같다”고 했다.

■ “안철수, 정치법칙 너무 무시한다” 지난해 서울시장 보궐선거를 앞두고 정치 일선에 깜짝 등장을 했다가, 5개월 넘게 안갯속 행보를 보이고 있는 안철수에 대해 피로감을 나타내는 견해도 있었다. 지방대 의대에 다니는 김경주(가명·21·여)씨는 “어머니가 읽어보라는 책이 있어서 읽어도 봤고, 자기 삶을 열심히 사는 사람이라서 상당히 호감이 있었는데 최근 행보는 그냥 그렇다”며 “호감과 투표는 별개”라고 말했다.

“정치가가 아니라 행정가가 되겠다”고 말한 안철수의 탈정치적 발언에 거부감을 나타내는 이도 있었다. 중소기업에 다니는 고민윤(가명·21·여)씨는 “사회인으로서는 좋은 사람이고, 자기관리에 투철한데다 잘 나눌 줄 아는 사람이지만, 결국 정치적 한계에 부딪힐 수밖에 없다고 본다”며 “안철수가 정치라는 독특한 세계의 법칙들을 너무 무시한다는 느낌이 들었다”고 했다.

이재훈 박현정 기자 na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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