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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2.02.21 20:31 수정 : 2012.02.21 22:09

2030 고장난 세상을 말하다
③ 계급정치는 ‘강남’에만 존재한다
강남선 ‘재산도 대물림, 지지정당도 대물림’

2030 정치의식도 ‘양극화’
강남, 계층이익 지키는 데 한표
구미, 노동자당에 되레 거리감

한국 사회는 빈부격차가 점점 더 벌어지고, 중산층이 줄어드는 사회 양극화 현상이 심화하고 있다. 하지만 다수의 사람들은 자신을 ‘저소득층’이나 ‘노동자’ 대신 ‘중산층 회사원’이라고 불러주길 바란다. 정당들도 특정 계층을 대변한다고 말하기보다 뭉뚱그려 ‘국민’을 대변한다고 말한다. ‘2030’이라고 한 묶음으로 불리는 청춘들도 과연 그럴까.

‘2030 고장난 세상을 말하다’ 시리즈 3회에선 부유층이 많은 서울의 ‘강남 3구’(강남·서초·송파구)에서 나고 자란 토박이 2030과 청년 노동자 밀집지역인 경북 구미에 거주하는 2030들을 만나 그들의 삶과 정치에 대한 생각을 들어봤다. 강남의 2030은 새누리당에 그다지 호감을 갖고 있진 않지만, 가족의 이해관계와 맞아떨어진다는 생각 때문에 지지한다고 했고, 구미의 2030은 지역의 전통적인 정서에서는 벗어나 있었지만 노동자 정당과는 접점이 없거나 정치에 무관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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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 사는 20대 “우리집 왜 종부세 물리나”

나중에 돌이켜 보니, 그날의 결과는 곧 닥쳐올 위기의 예고편이었다. 설마 했던 일이 실제로 일어나자 고3 소녀의 집안은 빠르게 냉각됐다. 텔레비전에선 방금 노무현 민주당 후보가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를 제치고 제16대 대통령에 당선됐다는 소식을 전하고 있었다. 소녀의 부모는 마뜩잖은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소녀도 덩달아 얼굴을 찌푸렸다. 2002년 12월19일. 그날의 기억은 이후 10년 동안 겪은 다른 어떤 일보다도 임주현(가명·28·여)씨의 뇌리에 또렷이 박혀 있다.


위기감은 머잖아 현실이 됐다. 태어날 때부터 살아온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 현대아파트 단지에는 철거촌 혹은 파업 현장에서나 봄 직한 펼침막이 내걸렸다. 노무현 정부가 부동산 과다 보유자에 대한 과세를 강화하겠다며 2003년 10월 종합부동산세 도입을 발표한 직후였다. ‘정부는 사람 잡는 종부세를 즉각 폐지하라’, ‘집 한 채 가진 것도 죄가 되는 조세제도!’, ‘살자니 종부세 팔자니 양도세’. 빨간 글씨가 유난했다. 임씨로선 처음 보는 살풍경이었다. 임씨의 부모는 “내지 않아도 될 세금을 왜 내야 하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고 푸념했다. 부모의 위기는 곧 임씨의 위기로 ‘상속’됐다. “제가 지금 살고 있는 이 집에서 태어났고, 부모님이 30년 가까이 이 집을 소유했으니 투기 목적으로 산 것도 아니죠. 그런데 왜 또 세금을 내야 하나요?”

임씨가 살고 있는 40평대 아파트는 실거래가가 20억원 정도다. 개업의사인 아버지와 강남에서 자영업을 하는 어머니의 한해 소득은 7억원쯤 된다. 여기엔 강남에 있는 오피스텔과 상가 임대수입이 포함돼 있다. 임씨도 2002년께 조부모한테서 상속받은 재산으로 서울 은평구에 6층짜리 상가를 구입했다. 하지만 재산세와 건물세, 토지세와 종합소득세 등 때만 되면 날아오는 세금고지서에 머리가 지끈거린다.

지난해 무상급식 논란이 한창일 때, 임씨는 노무현 전 대통령을 당선시킨 서민들이 다시 꿈틀대고 있다고 느꼈다. 임씨에게 ‘서민’은 남의 이름이다. 무상급식은 내야 할 세금이 더 늘어난다는 말로 들린다. 임씨가 조세정책을 불신하는 까닭은 단지 재산 손실 때문만이 아니다. 노 전 대통령은 서민들의 절대적 지지를 받아 당선됐지만, 임씨는 그가 당선된 뒤에도 서민의 삶이 하나도 나아지지 않았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 그러고도 중간층 이하를 위한 정책을 편다며 세금으로 자신과 부모가 속한 계층을 ‘공격’하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이냐고 마음속으로 되물었다. 임씨는 그런 ‘거짓부렁’ 조세정책보다 오히려 기부나 봉사활동이 소외계층을 돕는 데 더 효율적이라고 믿고 있다.

임씨는 어릴 때부터 다니고 있는 강남의 한 대형교회를 통해 가끔 미혼모 돌봄센터나 노숙자 급식센터에서 봉사 활동을 한다. 국제아동구호기구를 통해 다달이 후원금도 내고 있다. “종합부동산세같은 세금은 어디에 쓰이는지 전혀 알 수가 없죠. 사실상 공무원들의 주머니에 들어가고 있다고 봅니다.”

임씨는 올해 대선에서 박근혜 새누리당 의원을 찍을 작정이다. “박원순 서울시장이 당선되고 나서 재건축도 안 되고 한강 르네상스도 멈추는 것을 보고 나니, 새누리당이 다시 집권하는 게 저한테 유리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재건축도 돼야 하고, 노무현처럼 상류층을 공격하는 세금 정책도 내놓지 않을테니까요.”

재건축·세금 문제 때문에
새누리당의 재집권 바라

■ IMF는 나와 상관없는 일 ‘아이엠에프(IMF) 이후 세대’의 꿈틀거림은 강남에 살면서 새누리당을 지지하는 2030들과는 무관한 얘기다. 이영민(가명·28·남)씨에게 외환위기의 기억은 냉소의 대상이다. 1997년 중1이던 이씨는 당시 한국 사회의 암울함과는 동떨어진 세상에 살았다. 대기업 계열 광고회사 고위 간부이던 아버지의 지위는 변함이 없었다. 그런데도 신문과 방송은 “나라를 구하자”며 대대적으로 일어난 ‘금모으기 운동’을 앞다퉈 보도했다. 장롱에 넣어뒀던 예물까지 내놓는 유별난 애국심을 칭송하는 말이 난무했다. 이씨는 사람들이 참 순진하다고 생각했다. “서민들이 금을 내놓을 때 상류층 사람들도 동참했을까요? 안 했습니다. 상류층은 아이엠에프 때에도 안 어려웠으니까요.”

‘절망의 20대’라며 언론에 보도되는 취업난도 이씨와는 상관없다. 유학 간 아버지 덕에 6년 동안 미국에서 살며 습득한 영어는 든든한 자산이 됐다. 고3 때는 월 100만원짜리 고액과외도 받았다. 서울 소재 4년제 대학을 무난히 졸업한 이씨는 6개월 전 아버지가 운영하다 은퇴한 광고회사에 취업했다. “취업난이라고 하지만, 사실 주변에 직업이 없어서 밥 굶는 사람은 없더라고요. 사회현상이라는 데는 동의하지만, 제게 와닿는다고는 말할 수 없습니다.”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에서 나고 자란 임주현(가명)씨가 지난 4일 오후 서울 신사동 가로수길 상점들을 보며 걷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그는 자신이 ‘사회 상류층’이란 사실을 부인하지 않는다. 아버지는 은퇴한 뒤에도 모아둔 돈으로 월 600만원 가량의 투자소득을 올린다. 부모는 강남구 대치동에 ‘만년 재건축 후보’인 은마아파트도 한 채 갖고 있다. 임대소득을 불로소득으로 보는 시각에 대해 이씨는 “진짜 불로소득은 은행 이자 받아먹는 것”이라며 “부동산 정보를 찾아보고, 어떤 부동산이 더 투자가치가 있는지 살피는 것도 다 능력”이라고 말했다. 그는 2030들 사이에서 정치적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자신은 정치적 비판을 아낀다고 말했다. “교회에서 제일 친한 친구는 아버지가 한국에서 두 손가락 안에 꼽히는 피아니스트입니다. 국회의원 아들인 친구도 있죠. 저도 사회 상류층 집안에서 자라왔고, 살다 보니까 먹고살려면 그 논리를 부정할 수 없더군요.”

그는 지난 10년 동안 치러진 모든 선거에서 새누리당 후보를 찍었다. “김대중, 노무현의 10년 정치가 서민을 위한 것이었나요? 아니었다고 봅니다. 민주당 세력은 반새누리당 정서에만 기대어 먹고살고 있어요. 새누리당과 이명박은 버스준공영제라도 했죠. 실천능력이 있는 겁니다.”

무상급식등 복지확대 경계
가족이익 배치 정책에 반대

■ ‘부의 대물림‘은 없다? 김승우(가명·31·남)씨는 송파구 잠실동에 실거래가 20억원 상당의 63평짜리 아파트에 산다. 건설회사 고위간부로 연 3억~4억원 정도의 소득을 올리는 아버지 소유다. 그는 미국 미시건대 경제학과를 졸업했다. 졸업하고 귀국한 지 2달 만인 2010년 6월 외국계 금융회사에 취직해 연봉 3800만원을 받고 있다. 그는 스스로를 ‘성공 욕망’에 따라 움직이는 존재라고 했다. 김씨는 요즘도 남보다 1시간 일찍 출근해 공부하고, 주말에도 집 근처 독서실에서 8시간 정도 공부한다. 회계사 시험 준비를 위해서다.

유학파인 김씨는 영어실력이 출세와 소득까지 결정한다는 ‘잉글리시 디바이드’ 현상을 인정하지만, 그게 모든 것을 설명해주진 않는다고 말했다. “공부를 하려는 사람은 화장실도 마다하지 않지만, 아늑한 독서실에 데려다놔도 공부하기 싫어하는 사람은 있다”는 게 그의 신념이다. 꼭 돈을 많이 썼다고 해서 학력과 학벌, 사회적 성공이 대물림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맛있는 고기도 먹어본 사람이 그 맛을 아는 것처럼, 저도 부모님 덕분에 좋은 것들을 경험해본 적이 많으니까 그런 것들을 계속해서 누리고 싶다고 생각하죠. 동기부여가 되는 정도는 있다고 봅니다.”

김씨는 노무현 정부 때부터 사회 양극화가 이슈로 떠올랐고, 부자에 대한 존경심이 점점 줄어드는 세태가 만연하게 됐다고 말했다. 민주당 세력이 다시 집권하면 가진 자와 못 가진 자의 반목과 갈등이 커지고, 복지가 확대되면서 파이를 키워야 할 국가의 성장이 정체에 빠질 것이라고 본다. 김씨에게 국가의 발전은 좀 더 노력하는 사람에게 정당한 부를 돌려주는 시스템의 확대와 동의어다. 그가 지난해 8월 무상급식 주민투표에서 무상급식에 반대하는 표를 던지고, 이어진 서울시장 보궐 선거에서 나경원 당시 한나라당 후보에게 투표한 이유다.

현정부 경제 실패에 실망
신개념 정치인물 기대도

■ 가족의 이익은 나의 이익 튼튼한 경제적 토대는 가족을 똘똘 뭉치게 한다. 이현승(가명·29·남)씨에게 부모 소유의 압구정동 현대아파트 재건축 문제는 곧 자신의 일이다. 이씨의 부모는 따로따로 병원을 개업한 의사 부부다. 소득이 월 4000만원, 연 4억원쯤 된다. 실거래가가 30억원대인 65평 아파트에선 이씨 가족이 살고, 40평대 아파트는 10억원에 전세를 줬다.

그는 압구정동이 강남 지역 안에서도 재건축에서 상대적으로 피해를 보고 있다고 말했다. “잠실 쪽은 다 재건축이 됐죠. 여기는 재건축이 되면 한국에서 가장 비싼 아파트가 되는 거니까, 민감하죠. 10년 이상 재건축이 미뤄지면서 이젠 재건축을 해서 아파트값이 올라도 재건축 투자금보다 밑지는 장사라는 얘기들이 나옵니다.”

이씨는 중2때 미국으로 유학을 갔다. 인디애나주립대에서 경영학을 전공했다. 2011년 7월 중견급 무역회사에 취업해 연봉 3200만원을 받고 있다. 대기업에도 합격했지만 가지 않았다. 꽉 짜인 조직과 시스템, 능력보다 눈치가 빨라야 인정받는 기업문화가 싫었다고 했다. 5년 정도 뒤에 시작하려는 사업에 대한 꿈도 대기업에 가지 않은 이유의 하나다. 월급을 쪼개어 적금을 조금씩 붓고 있지만, 결국 사업을 하게 되면 부모의 도움을 받아야할 것 같다고 했다.

새누리당은 그런 연유로 이씨에게 필요한 정당이다. 노무현 정부의 종부세는 가족의 이익과 배치되는 대표적인 정책이다. 민주당이 재집권하면 그렇지 않아도 어려운 재건축이 더 힘들어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새누리당 의원들이 부패를 많이 저지르고 있다는 걸 알고 있고, 체벌금지에 대해선 저도 ‘매로 사람 다스린다’는 견해에 동의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새누리당은 저희 가족의 이해에 부합하는 정당이죠. 가족의 이익은 제게도 이익이 됩니다.”

■ “정치인은 모두 거짓말쟁이다” 계급적 이해관계와 동떨어진 선택을 하는 사람도 아예 없지는 않다. 이장우(가명·28·남)씨는 서초동의 48평 아파트에서 부모와 함께 전세를 살고 있다. 부모는 모두 대학교수이고, 연소득은 1억원 정도다. 재건축 지역에 아파트도 소유하고 있다. 하지만 이씨는 12년 동안 미국에서 살면서 부모로부터 독립적인 생활이 몸에 뱄다. 서울 소재 대학에 다니면서 학비의 절반은 스스로 아르바이트를 해 충당했다. 물론 우리말보다 더 편해 할 만큼 능숙한 영어로 고액 아르바이트를 할 수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씨는 ‘성공한 기업인’이 경제를 발전시켜 줄 것이라는 기대를 품고 2007년 대선 때 이명박 당시 한나라당 후보를 찍었다. 하지만 지난 4년 동안의 정치는 너무 구태의연했다고 생각한다. 민주당도 예외가 아니다. 그는 “정치인은 모두 거짓말쟁이”라고 생각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래서 정당정치에서 자유로운 정치인을 선택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는 지난해 10월 서울시장 보궐 선거에서 무소속 박원순 후보를 찍었다. “전혀 다른 개념의 정치인이 등장해야겠죠. 지금은 모든 정치인이 보기 싫습니다.”

이재훈 기자 na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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