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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2.02.19 22:11 수정 : 2012.02.20 09:07

2030 고장난 세상을 말하다
① ‘IMF 세대’, 4개의 열쇳말
부모 IMF 실직뒤 ‘스펙에 저당잡힌’ 내 인생

2030세대를 하나의 개념으로 일반화하기는 어렵다. ‘대한민국 어버이연합’ 회원과 함께 활동하는 대학생, 부모가 일군 재산을 지켜내려고 새누리당(옛 한나라당)을 지지하는 청년, 2008년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시위를 주도한 ‘촛불 소녀’, 대학 진학을 거부하고 다른 형태의 꿈을 찾고 있는 스무살 등은 같은 시간대에 존재하지만 각기 다른 삶을 살고 있다. <한겨레>는 이들을 다양한 관점에서 살피기 위해 계층별·학력별·거주지별로 모두 36명을 심층 인터뷰했다. 이들 가운데 다수는, 크게 네 가지 특성을 보여주었다.

① ‘생존 경쟁’에 내몰린 일상

김우섭(가명·36·남)씨는 2002년 한·일 월드컵이 지금까지의 삶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사건 가운데 하나다. 10년 전 광장은 그에게 처음 경험하는 축제였다. 그 광장에서 한국팀이 연거푸 승리하는 장면을 지켜보고 환호하며 다 함께 느낀 것은 ‘흥’이었다. 흥은 그해 연말 치러진 대통령 선거까지 이어졌다. 노무현 당시 민주당 후보는 서민의 목소리를 대변해줄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을 대변했다. 마침내 그가 대통령이 됐다. 대학생활의 마지막 해이던 2002년은 희망이란 단어가 대미를 장식했다.

2030세대에 영향 미친 시대 변화사 (※ 이미지를 클릭하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무한경쟁이 삶 옥죄어
안정적 교사직에 목매


1996년 시작한 김씨의 대학생활은 지금의 대학생들과는 달랐다. ‘연간 등록금 1000만원’에 허덕이고, 취업난 때문에 ‘스펙’(specification 줄임말: 학력·토익점수 등 취업 준비용 이력) 올리기에 열을 올릴 일은 없었다. 스펙은 아예 신경 쓰지 않았고, 경쟁에 둔감했던 친구들끼리는 거리낌없이 강의노트를 빌려주고 또 빌렸다. 기타 연주와 연극 동아리 활동도 빼놓지 않았다.

그러나 1997년 말 아이엠에프(IMF) 구제금융 사태가 터지면서 변화가 닥쳐왔다. 아버지가 다니던 회사는 부도가 났다. 1996년 말 대학 1학년을 마치고 입대한 김씨는 제대 이후에야 아버지의 실직 소식을 들었다. 아버지는 한 성당에서 사무직 일을 다시 얻었다고 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아이엠에프가 직접 김씨의 삶을 옥죄지는 않았다.

하지만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로 나오자 서서히 무한경쟁의 문화가 그를 조여오기 시작했다. 서울 신도림동의 한 검정고시 학원 강사로 사회에 첫발을 디뎠다. 만학도들을 가르치는 보람은 있었지만, 매일 꼬박 12시간씩 일하고 받는 월급은 160만원 안팎이었다. 더 늦기 전에 임용시험을 준비해야겠다는 생각에 이 일을 6개월 만에 그만두고, 노량진 고시촌으로 향했다. 고시촌 생활은 암흑이었다. 컴컴하고 좁은 독서실과 임용시험 학원을 오가는 생활을 2년 동안 했다. 그 사이 임용시험 경쟁률은 30 대 1까지 뛰었다. 두 차례 낙방했다.

2002년의 희망은 김씨와 인연이 멀어진 듯했다. 고시촌에 있을 때 정치에 대한 관심은 사치라고 김씨는 생각했다. 그러다 정권이 바뀌었고, 그는 4년 전부터 한 사학법인이 운영하는 교육시설에서 재단의 눈밖에 나지 않기 위해 갖은 눈치를 보며 교사로 생활하고 있다. 김씨는 교장이 걸핏하면 “실력이 없으니 이런 데서 일하는 거 아니냐”는 식으로 말하는 통에 자괴감이 더 깊어졌다고 했다.

2030 가장 크게 영향 받은 사회적 사건

광주에 있는 한 사립학교에서 기간제 교사로 일하고 있는 김화은(가명·25·여)씨의 아버지는 금융권 회사에 다니다 ‘아이엠에프 때’ 부도난 회사를 나왔다. 특별한 기술이 없던 아버지가 다시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았다. 어머니가 생계 전선에 뛰어들어야 했다. 어머니는 백화점 카드사 계약직 영업사원으로 일하고 있다. 실적 압박은 어머니를 건조하게 만든다. ‘계약직’이라는 신분이 건조함을 배가시킨다. 그래서 딸이 임용시험에 합격해 정규직 교사가 되기를 바라는 어머니의 바람은 더욱 간절하다.

금융권 정규직이지만
강박관념속 ‘이력쌓기’

외국계 보험회사에서 금융컨설턴트로 일하는 최상현(가명·32·남)씨의 인생에서 2008년과 2009년은 ‘공백’이다. 일을 통해 내 능력을 보여줘야겠다는 강박으로 스스로를 채찍질하며 지내왔다. 고지를 바라보는 오르막길에서 이판사판의 심정으로 자전거 페달을 밟아대는 한 사내의 모습이 마치 자신의 삶을 묘사하는 그림 같았다. “어릴 때부터 경남 김해 쪽에 살면서 초등학교와 중학교 때 늘 1등을 했죠. ‘넌 1등이야’라는 말을 의식하면서 계속 1등을 하려고 열심히 한 겁니다. 그런데 사회에 나와보니까, 제가 너무 미미한 존재인 거죠. ‘이건 말도 안 돼’라고 생각하며 다시 열심히 일에 매몰됐죠.”

어려워진 집안 사정 탓에 간절히 소망했던 대학을 가지 못한 트라우마도 남아 있다. 그가 대학수학능력시험을 봤던 1998년, 아버지가 하던 중고자동차 매매 사업에 어려움이 닥쳤다. 아이엠에프의 여파였다. 그는 장학금을 받으려고 성적보다 서열이 낮은 서울의 한 4년제 대학에 진학했다. 대학 때도 다른 생각을 할 틈은 없었다. 생활비를 벌려고 과외와 학원강사, 신약 테스트 등 닥치는 대로 아르바이트를 했다. 그는 아이엠에프 같은 거대한 파도가 자신의 삶을 집어삼키지 않도록 지금도 늘 조바심내며 대비하는 생활을 하고 있다. “대학 때부터 지금까지 삶을 개인주의적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었어요. 내가 살아야 하는 삶을 살아왔으니, 다른 사람을 신경 쓸 겨를이 없었습니다.”

② ‘스펙업’에 기대는 불안한 개인

실업계 고교를 졸업하고 제약회사에서 생산직으로 일하고 있는 고소현(가명·22·여)씨는 아직 그 말을 잊지 못한다. 지난해 대학생인 남자친구와 사귈 때였다. 집이 부유해 보이는 그 남자친구의 어머니가 지나가는 듯한 말투로 한마디를 툭 던졌다. “대학은 나와야 하지 않겠니?” 고씨는 그 순간 자신의 어머니가 평소에 걱정스럽게 하던 말을 문득 떠올렸다. “가방끈이 짧으면 결혼할 때 약점 잡힌다.”

2030세대 4명의 개인사 (※ 이미지를 클릭하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고졸학력, 결혼때 약점 잡혀”
생산직 일하며 주말엔 공부

고씨의 고교 동창들은 실업계임에도 대부분 대학에 진학했다. 고씨는 도통 공부에 취미가 없었다. 남들보다 빨리 일을 시작해 돈을 모으는 쪽이 낫다고 생각했다. 처음 일을 시작한 뒤 대학생 친구들이 자신에게 돈 빌리러 오는 모습 등을 볼 때는 ‘역시 내 선택이 옳았다’고 여겼다. 하지만 전문대에 간 동창들이 하나둘씩 졸업을 하고, 사무직으로 취업하면서 슬슬 생각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그 친구들은 고씨를 빼놓고 메신저로 이런저런 대화를 나눈다. 하루 종일 서서 약병을 세척하고, 약을 충전하고, 약병에 라벨을 붙이고, 이물검사를 하고, 청소를 하는 생산직 노동자인 고씨로선 친구들의 세계에 끼어들 수가 없다. 그들과 자신을 견주다 보면 참기가 어려워져 어머니에게 하소연하며 술잔을 기울이기도 했다.

그러다 결국 지난해 8월부터 서울의 한 4년제 대학에서 학사 학위를 받을 수 있는 학점은행제 과정을 수강하고 있다. 평일 장시간 노동으로 피로한 몸을 쉴 틈도 없이, 고씨는 토요일 하루 종일 수업을 듣는다. 하지만 회사엔 이런 상황을 알릴 수 없다. 대학을 가겠다며 회사를 그만두는 동료들에게 회사 간부는 “너희가 대학 가면 별거 있을 줄 아느냐”고 대놓고 비꼬았다. 회사는 그래서 여사원은 고졸만 뽑고, 결혼하면 육아휴직도 주지 않아 스스로 그만두게 하려는 건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사실 공부하고 싶은 사람만 대학에 가면 좋은데, 대학을 나와야 무시당하지 않고 살 수 있는 것 같아요. 요즘엔 고졸자와 다른 대접을 원하는 대졸자들 마음도 이해가 갑니다. 아직 학위를 받은 것도 아닌데, 저도 이젠 더이상 생산직 일은 하지 말아야겠다 생각하니까요.”

2030들은 자신과 가족 말고는 기댈 곳이 별로 없다. 부담스럽다고 여기면서도 사회가 요구하는 ‘스펙’을 업그레이드하는 것이 좀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는 현실적인 선택이다. 한국 사회의 생존 경쟁은 학벌주의를 기반으로 펼쳐진다. 통계청 자료를 보면, 고졸 가운데 비정규직의 비율은 59.4%에 이른다. 이에 반해 4년제 대졸자 중 비정규직 비율은 26.6%다. 고졸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 치열한 경쟁은 공동체를 분열시킨다. 학창 시절부터 상대적 평가에 익숙한 2030은 그 잣대를 그대로 남에게 들이대며 상대적인 만족감이나 열패감을 느낀다.

“시급 받죠?” 학생 말에
기간제 교사 마음 서늘

김화은씨는 간혹 자신의 이기적인 마음을 들여다볼 때면 흠칫흠칫 놀란다. 그가 다녔던 전남대는 2006년 ‘지잡대’(지방의 잡스러운 대학)로 분류되는 지역의 한 대학과 통합됐다. 수능 점수 몇 점 차이로 다니는 학교가 달라지는 게 현실인데, 그 대학 아이들은 순식간에 간판이 업그레이드된 것이니 억세게 운이 좋은 녀석들이라고 생각했다. 같은 강의실에서 공부하면서도 마음속으로는 ‘쟤네는 ㅇ대 출신’이라는 딱지를 붙이곤 했다.

2030 가치관 및 사회인식

하지만 김씨도 서울의 대학을 생각하면 똑같이 비하의 눈총을 받을 수 있다는 점을 나중에야 깨달았다. 넉넉하지 않은 집안 형편 때문에 전남대 사범대에 진학했지만, 원래 그의 꿈은 방송사 아나운서였다. 아나운서가 되려면 서울에 있는 대학으로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1년을 휴학하고, 편입을 준비했다. 하지만 뜻을 이루지는 못했다. “편입에 성공했을 때를 상상해본 적이 있어요. 제가 ㅇ대 친구들을 바라봤던 그 시선으로, 서울의 학생들이 저를 쳐다볼 것 같아 두려워졌어요. 편입 관련 인터넷 커뮤니티를 보면 ‘학교를 옮긴 뒤 혼자 지냅니다’라는 글들을 볼 수 있거든요.”

그런 습속은 고스란히 자신이 기간제 교사로 가르치는 학생들에게도 투영돼 있다. 교사의 평가 기준은 수업의 질이 아니라 학생들이 어떤 성적을 내느냐에 따라 갈린다. 하지만 평소 김씨는 학습교재를 만드는 것보다 서류 업무를 더 능숙하게 해내야 한다. 윗사람은 서류 업무의 숙련도로 사람을 평가한다. 그가 근무하는 학교 교사 중 30%는 기간제다. 눈치 백단인 학생들은 그런 상황을 빤히 알고 있다. 가끔 날아오는 질문에 마음이 서늘해진다. “선생님은 시급 받아요, 월급 받아요?”

“한국사회, 돈있는 사람에게만 유리하게 돌아간다”

③ 우리가 사는 세상은 ‘불공정’ 사회

무한경쟁에 내몰려 스펙 올리기에 매달리면서 살아가는 2030들도 사회에 뭔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한겨레>가 만난 2030의 절대다수는 ‘한국 사회는 불공정하다’고 말했다. 그들이 말하는 불공정의 주범은 편법과 반칙, 독식의 대명사인 대기업과 도덕 불감증에 빠진 정치인들이다.

대형매장탓 9평가게 매출 뚝
“요즘은 경쟁 출발선이 달라”

2010년부터 광주 충장로에서 9평짜리 휴대전화 가게를 운영하고 있는 박준수(가명·32·남)씨는 요즘 한국 사회가 점점 더 돈 있는 사람에게만 유리하게 돌아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당장 그의 가게 주변만 해도, 대형 휴대전화 매장이 들어오면서 가게 매출이 뚝 떨어졌다. 대형매장 쪽에선 넉넉한 자본을 동원해 라디오 광고 등 다양한 홍보를 한다. 박씨도 질세라 매장을 새로 꾸며보기도 했지만 효과는 신통치 않다. “마치 대형마트가 들어오면서 힘들어진 구멍가게나 골목 슈퍼들처럼 대형매장이 독식을 하는 거죠. 가게 임대료가 여기보다 좀더 싼 시 외곽으로 나가서 가게 평수를 늘려볼까 싶습니다.”

박씨는 그래도 운이 좋은 편에 속한다. 식당을 하면서 알뜰하게 재산을 모은 아버지의 도움으로 가게를 열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가 처음부터 아버지에게 손을 벌렸던 것은 아니다. 박씨는 전남 나주에 있는 4년제 대학을 졸업한 뒤, 4년 동안 대기업 통신사에서 판매사원으로 일했다. 계약직으로 시작했지만 전문대 나온 친구보다는 승진이 빨랐다. 그러나 그 역시도 서울에서 대학을 나온 공채 출신보다는 승진 속도가 더뎠다. 실적은 박씨가 뛰어났지만, 회사에선 이미 학력으로 계급이 갈렸다. 더는 비전을 찾을 수 없었다. “저야 아버지 덕에 이만한 가게라도 시작할 수 있었어요. 하지만 집에 돈이 없는 사람들은 살기가 정말 막막할 거예요. 요즘은 경쟁의 출발선 자체가 다르죠. 그런 점에서 한국 사회는 공정하지 않습니다. 영화 <도가니> 같은 게 말이 되느냐고요. 전관예우도 그렇고요. 치가 떨렸습니다.”

경쟁의 출발선이 되는 계층은 사람들의 생각까지 지배한다. 이른바 ‘명문대’를 졸업하고 증권업체에서 일하는 남성진(가명·28·남)씨에겐 두 부류의 친구들이 있다. 우선 배꼽 친구들이 있다. 그가 나고 자란 서울 구로구는 서울의 대표적인 저소득층 밀집지역이다. 동네 친구들 가운데 4년제 대학에 간 사람은 남씨뿐이다. 동네 친구들은 공고나 전문대에 진학했다. 그들은 무료한 일상을 반복하며 별다른 희망 없이 지낸다. 만나면 주로 나이트클럽에서 만난 여자들 얘기를 한다. 동네 친구들은 하나같이 로또를 산다. 대박을 꿈꾼다기보다는, 그게 가장 쉽게 접할 수 있는 취미라는 생각에서다.

반면 대학에서 만난 친구들은 유복한 엘리트 집안 출신이 많다. 그들의 부모는 정치계나 언론계에 있다. 대학 친구들은 자주 정치 얘기를 꺼낸다. 하지만 남씨가 생각하는 불공정의 대상은 그런 계급 사회보다 정치인들의 도덕 불감증에 집중돼 있다. “이명박 대통령의 내곡동 사저 문제도, 국민들이 모를 것 같다고 생각해서 그런 건지 도덕 불감증의 결과인지 모르겠지만, 이해가 되지 않았죠. (정치인 중에) 털어도 나오는 게 없는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눈밖에 나면 일자리 잃을까
직장 비리 목격해도 눈감아

도덕 불감증은, 그러나 정치인들에게만 있는 건 아니다. 사학법인 교육시설 교사인 김우섭(가명·36·남)씨는 자신의 직장이 한국 사회의 축소판이라고 했다. 비리를 자주 목격하고 있지만 매번 눈을 감아야 한다. 재단의 눈 밖에 나면 어렵게 얻은 일자리조차 지키기가 힘들어지겠기 때문이다. “교육청에서 감사가 나오지만, 언제나 형식적이에요. 재단 쪽 이야기만 듣고 말죠. 한국 사회랑 비슷해요. 돈 있고 힘 있는 자들이 항상 이기고, 공정한 절차로 문제가 해결되는 과정은 보기가 힘들잖아요?”

그는 두 살배기 아이만큼은 자기처럼 살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절실한 바람을 갖고 있다. 아이가 살아갈 사회는 지금처럼 불공정하지 않고, 좀더 정의롭고 상식이 통하는 세상이어야 한다는 게 김씨의 생각이다.

경북 구미의 전자부품 업체에서 일하는 김지연(가명·32·여)씨는 법이 약자들 편에 서지 않는다는 점이 불공정의 증거라고 말했다. 그의 직장에선 2010년 파업이 있었다. 회사가 노조와의 임금 협상을 거부하면서 시작된 일이었다. 그러나 이 파업은 곧 ‘불법’이 됐다. 회사는 직원 800여명 가운데 299명을 정리해고하거나, 상여금 500%를 삭감하고 복지수당과 연장근로수당을 없애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그동안 회사는 수많은 불법이나 편법을 저질러도 벌금 몇 백만원만 내면 됐는데, 힘없는 우리는 (파업을 했다는 이유로) 감옥에 가거나 심한 처벌을 받아요. 이건 공정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④ 세상을 읽는 코드 ‘나의 합리성’

2030들의 머릿속 정의와 상식은, 부정의와 비상식을 불공정과 같은 것으로 보는 그들 나름의 합리성과 맞닿아 있다. 합리성의 개념은 진보와 보수라는 이념 지형 또는 진영 논리와는 분리된 것이다. 이들은 자신이 겪은 경험, 스스로 수집한 정보를 바탕으로 합리와 비합리를 따질 뿐, 집단의 판단은 편파성을 띠고 있다고 본다.

“진보·보수라는 단어 어색
제 눈에는 둘 다 낡아 보여”

지방대 의대에 재학중인 김경주(가명·21·여)씨는 지난해 서울시 무상급식 찬반 주민투표에 참여해 전면 무상급식에 반대표를 던졌다. 오세훈 전 서울시장이 자신의 정치적 목적을 위해 이념을 이용했다고 생각하지만, 그보다 예산을 아끼면 더 많은 저소득층 아이들을 도울 수 있다는 점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진보냐 보수냐를 따지기보단 되도록 많은 정보를 수집해 무상급식 문제에 대해 저 스스로 판단하고 싶었어요. 인터넷의 찬반 의견을 찾아보고, 학교 선생님인 어머니께 여쭤보기도 했죠. 전면 무상급식을 찬성하는 분들은 저소득층 아이들의 ‘낙인효과’를 많이 우려하던데, 그건 기술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라고 봤어요.” 김씨는 한강 르네상스나 4대강 사업에 대해선 반대한다는 견해를 분명히 했다. 환경을 파괴할 뿐 아니라 실효성도 없어 보인다는 게 김씨의 판단이다.

광주에서 카페 창업을 준비중인 김윤석(30·남)씨는 노무현 전 대통령을 지지했지만, 미국이 주도한 이라크전에 파병을 한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 미국이 군수산업을 키우고 석유를 확보하려고 일으킨 전쟁에 우리 젊은이들을 보낼 이유가 없다는 생각에서다. 북한을 돕는 것도 실효성이 없다고 생각한다. 남쪽에서 보낸 구호품이 정작 가난한 사람들에겐 전달되지 않는 것 같다는 게 김씨의 생각이다. 그의 기억에 또렷이 자리잡은 사회적 사건 중 하나는 2010년 천안함의 침몰이다. 그는 천안함 침몰이 북한의 소행이라고 보고 있다. 그렇다고 정부를 덮어놓고 신뢰하는 것은 아니다. 김씨는 정부의 발표 내용이 자꾸 바뀌니까 음모설이 나오는 것 같다고 했다.

2030들은 이념에서도 자유롭고 싶어 한다. 지난해 8월 정부 특임장관실에서 작성한 ‘2030 정치의식에 관한 설문조사’를 보면, 자신의 정치 성향을 ‘중도 혹은 어느 쪽도 아니다’라고 답한 이들이 응답자의 60%를 넘었다. <한겨레>가 만난 2030들도 환경과 복지, 대북문제 등 세부 분야별로 진보와 보수를 넘나드는 의견을 내놓았다.

나임윤경 연세대 교수(문화인류학)는 2030의 판단 코드가 기성세대와는 다르다고 설명한다. 여러 문제에서 비교적 일관된 견해를 갖고 입장을 잘 바꾸지 않는 기성세대와 달리, 이들은 사안별로 그때그때 맥락에 따라 합리적인지 아닌지를 따져서 판단한다는 것이다. 루이뷔통 가방을 든 여성들이 위안부 문제 해결 촉구를 위한 수요집회에 참여하는 것은, 2030들에게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루이뷔통 가방을 살지 말지, 수요집회에 갈지 말지를 전혀 다른 맥락의 문제로 인식한다는 것이다. 문화적 취향이 다양해지면서 판단 맥락도 복잡해졌다. ‘나의 합리성’을 구성하는 개인의 경험과 정보는 고정돼 있지 않다.

학생운동의 명맥이 유지되던 시절 대학에 다닌 30대 후반을 제외한 2030 대다수는 진보와 보수라는 단어의 사용을 어색해한다.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 개발자 이진수(가명·32·남)씨는 진보와 보수라는 말이 현실에선 사전적 의미로 통용되지 않는 것 같다고 했다. “언론에서 진보와 보수라는 단어를 많이 사용하니까 책을 한 번 찾아 봤어요. 보수는 현 체제를 지키면서 국가를 보호하고, 진보는 현 체제를 개혁하고 평등한 가치를 실현하자는 건데, 어찌 보면 둘 다 이 사회를 잘 살게 하자는 것 아닌가요? 그런데 보수라고 불리는 사람들은 사익을 추구하는 부패 세력과 맞닿아 있는 것 같아요. 책에서 말하는 보수가 아닌 거죠. 진보라고 불리는 사람들도 이런 보수에 반대함으로써 권력을 잡으려는 것 같아요. 너무 이상적인 이야기만 하고요. 제 눈엔 진보와 보수 둘 다 낡아 보입니다.”

박현정 이재훈 기자 saram@hani.co.kr

어떻게 인터뷰 했나

통계로는 못잡는 삶 담아내려

36명 최소 2시간씩 심층 면담

한국 사회의 청춘들은 2007년 대통령 선거 이후 4년 동안 기성세대들에게서 “투표하지 않는다”는 호된 질책을 들었다. 20대에겐 더욱 험한 지탄이 쏟아졌다. 하지만 최근 들어 이 청춘들이 다시 세상을 바꿀 동력이라며 떠받들리고 있다. 지난해 서울시장 보궐선거 이후 “정치적으로 각성했다”는 환호가 쏟아지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기성세대의 이런 반응과 변화된 관점에 동의할까. 그들에게 삶과 정치란 과연 무엇일까.

<한겨레>는 이 의문의 해답을 찾고자 지난 한 달 동안 2030세대 36명을 만나 1명당 최소 2시간 넘게 심층 인터뷰를 진행했다. 설문조사와 통계가 잡아내지 못하는 날 것 그대로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서다. 36명은 서울 ‘강남 3구’(강남·서초·송파구)와 서울 비강남, 지방 등 거주지역과 계층, 학력별로 다시 분류해 봤다.

조사 결과, 심층 인터뷰 대상 36명 가운데 86.1%(31명)는 ‘현재 지지하는 정당이 없다’고 답했다. 지지 정당이 없는 까닭은 기존 정당과 정치인에 대한 불신 때문이었다. 36명 가운데 69.4%(25명)가 강한 불신을 드러냈다. 그러나 올해 치러질 국회의원 선거와 대통령 선거에서 ‘적어도 1번 이상은 투표할 것’이라고 답한 이가 91.7%(33명)나 됐다. 대의 정치를 불신하지만, 완전히 이탈한 것은 아니라는 점을 알 수 있다.

또 ‘한국 사회가 공정하다고 생각하느냐’는 물음에는 86.1%(31명)가 ‘불공정하다’고 답했다. 하지만 그 까닭과 풀이 방법은 제각각 달랐다. 승자독식과 무한경쟁의 문화를 깊이 내면화해 사회 구조보다 자기 자신을 책망하고 그 언저리에서 해답을 찾으려는 이들이 많았다. 반면 그런 문화로부터 벗어나고 싶어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들의 이야기는 한 방향으로 수렴되지 않았다.

<한겨레>는 20년 만에 총선과 대선이 같은 해에 치러지는 2012년을 맞아, 2030세대가 말하는 ‘나의 정치’에 대해 5차례에 걸쳐 짚어볼 예정이다. 먼저 1회에서는 <한겨레>가 만난 36명 가운데 다수가 공유하고 있는 특징을 4가지 열쇳말을 통해 정리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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