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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2.02.19 20:14 수정 : 2012.02.19 22:11

2030 고장난 세상을 말하다
① ‘IMF 세대’, 4개의 열쇳말

아버지 부도뒤 ‘생존경쟁’
고졸편견의 아픔 ‘불공정’
뒤늦게 대학진학 ‘스펙업’
선거때 인물 보는 ‘합리성’

김서연(가명·25·여)씨는 서울의 한 콜센터에서 아르바이트 상담원 관리직을 맡고 있다. 한 달에 170만원을 받는다. 그중 100만원은 생활이 어려운 부모에게 드린다. 김씨의 아버지는 작은 마트를 운영하다 부도를 두 차례나 냈다. 김씨가 초등학교 5학년, 고등학교 3학년 때의 일이다. 빚을 내어 경기도 구리시에서 시작했던 마트는 아이엠에프(IMF) 외환위기로 갑자기 자금이 돌지 않아 1998년 부도가 났다. 빚 독촉을 피해 세 차례 이사를 다녔다. 힘들게 모은 돈으로 경기도 포천시에서 다시 마트를 열었지만, 이번엔 인근에 기업형 슈퍼마켓(SSM)이 들어왔다. 손님들은 차를 몰고 대형마트로 몰려갔다. 김씨는 2006년에 다니던 대학을 그만둬야 했다. 입학하고 한 학기 만의 일이다. 그 뒤 몸으로 때우는 갖가지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며 부모의 빚을 대신 갚았다. 지금 회사에서 정규직 일자리를 얻은 것은 2008년이다.

김서연씨가 본 불공정사회

김씨는 자신의 노동으로 사람들이 웃는 모습을 보고 싶다는 소박한 생각에 서비스 직종을 택했다. 하지만 지금은 넌더리가 난다고 했다. 상담원이 고객 응대에서 실수하면 전화는 김씨에게 넘어온다. 인격모독성 욕설과 폭언이 쏟아져도 대꾸를 해선 안 된다. 사람을 사람으로 보지 않는 ‘고객’들의 모습에 날마다 스트레스를 받는다. 폭식이 잦고, 화풀이도 부쩍 늘었다.

김씨는 한국 사회의 가장 큰 문제점이 불공정함이라고 생각한다. 대기업이 피자나 통닭 장사에까지 손을 대면서 자영업자와 중소기업을 황폐화하고 경제를 독식한다. 사람의 ‘능력’을 보는 대신 학력과 학벌 등 ‘스펙’이 갖춰지지 않은 개인을 무능력자로 낙인찍는 것도 문제다. 김씨는 뉴스에서 터져나오는 각종 불법과 비리 소식이 이런 불공정함의 연장선에 있다고 본다.

15년 전의 트라우마는 옛 얘기가 아니다. 지금도 주변에서 반복되는 현실이다. 1997년 말 외환위기 때 아버지 세대의 좌절을 보고 자란 20대와 30대가 지금은 승자독식의 무한경쟁을 겪고 있다. 그러나 2030들은 지금 자신들의 처지가 사회 구조보다 노력 부족에서 비롯됐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김씨도 사회가 쉽게 바뀌지 않을 것임을 안다고 했다. 그래서 취업후 학자금 상환제로 등록금을 대출받아 ㅁ전문대 일본어과에 진학했다. 고졸 학력이 갖는 편견과 제한을 넘어서기 위해서다. 토익 학원에도 다닌다. “우리가 스펙에 신경 쓰지 않아도 괜찮을 사회가 갑자기 오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어쨌든 사회는 계속 그런 구조일 텐데, 스펙을 못 갖춘 이유가 뭔지 변명만 하고 있을 수는 없겠지요.”

김씨는 그래도 꾸준히 투표를 해왔다. 2007년 대통령 선거에선 서울시장 때 능력을 보여줬다고 생각한 이명박 당시 한나라당 후보에게 투표했고, 지난해 10월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선 이 대통령에 대한 실망감에서 박원순 무소속 후보에게 표를 던졌다. “투표로 사회가 갑자기 바뀌진 않겠지만, 언젠가는 불공정한 사회가 바뀌기를 바라는 마음은 분명히 있습니다. 그걸 위해선 제가 할 수 있는 게 투표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이제까지 아무것도 해준 게 없는 정당보다는 이제 인물을 보고 제 나름의 합리성에 맞춰서 판단해볼 겁니다.”

이재훈 박현정 기자 na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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