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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2.01.09 21:43 수정 : 2012.01.10 16:32


2012 트위플 혁명 ④트위플 일어서다

‘열쇳말 지도’로 본 한진중
세상일 관심없던 회사원김진숙에 달려가기까지

2011년 7월9일 토요일 오후 3시40분, 천미라(28)씨는 서울역에 왔다. 뭔가 마음속에서 울컥울컥 치밀어오르고 있었다.

노동자 집회에 참여하게 될 줄은 천씨도 몰랐다. 그는 쌍용차 파업 사태를 기억한다. 2009년 6월, 방송 뉴스는 경찰에게 새총 쏘는 쌍용차 노동자를 집중 보도했다. 천씨는 얼굴을 찌푸렸다. ‘저 사람들 왜 저래. 경찰한테.’ 곁에 있던 어머니가 말했다. “시위하는 사람은 다 빨갱이야.” 천씨는 반박하지 않았다. 어차피 어떤 뉴스에도 관심이 없었다.

보험사에서 일하며 고된 출퇴근을 반복하는 일상에서 그가 마음을 두는 일은 사진 찍기였다. 틈틈이 찍은 사진을 올리고 싶어 2010년 8월 트위터에 가입했다. 친구와 직장 동료들을 팔로(추종)하며 그들의 안부도 확인했다.

한진중공업 노동자 정리해고 철회를 요구하며 영도조선소 안 8 5호크레인에서 고공농성을 했던 김진숙 민주노총 지도위원이 지난해 6월 크레인 위를 걸으면서 스마트폰으로 트위터를 하고 있다. 부산/이정우 선임기자 woo@hani.co.kr
2011년 1월 탤런트 김여진씨의 트위트를 봤다. 홍익대 청소노동자에 대한 글이었다. 사극 드라마에 나온 적 있는 배우인 것을 천씨는 기억해냈다. “연예인이 이런 이야길 다 하네.” 호기심에 김씨를 팔로하고 트위트를 계속 읽었다. 그 뒤 회사 건물을 청소하는 아주머니들이 천씨의 눈에 자꾸 밟혔다.

2011년 4월 김여진씨가 또다른 트위트를 보냈다. 석달째 크레인 위에서 농성하는 이가 있다고 했다. 김진숙 민주노총 지도위원이었다. ‘대체 뭔데 그래?’ 천씨는 관련 글을 찬찬히 읽었다. 회사 사정이 어렵다고 직원을 해고한 경영진이 주식배당금을 챙겼다는 내용도 있었다. 친구들과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이거 좀 그렇지 않냐?” “헉, 여자가 거기 올라가 있다고?”

천씨는 김진숙 위원도 팔로하기 시작했다. 2011년 7월9일, 김 위원을 응원하는 ‘2차 희망버스’ 공지글이 트위터에 계속 올라왔다. 토요일인 이날 천씨는 오후 3시까지 당직이었다. 출근 뒤 천씨는 자꾸 시간을 확인했다. ‘나도 한번 가볼까?’ 선뜻 용기가 나진 않았다. “그런 거 한번도 안 해봤으니. 아는 사람도 없고, 혼자 가는 게 두렵기도 했다”고 나중에 천씨는 말했다.

고민하던 천씨는 결국 서울역에 와버렸다. 부산행 기차에 혼자 올라탔다. 3시간 뒤 부산역에 도착했다. ‘얼마나 모였을까….’ 떨리는 마음으로 역 출입문을 열었다. 트위터가 일으켜 세워 달려오게 만든 1만여명의 희망버스 참가자들이 천씨의 눈에 왈칵 들어왔다.


지난해 7월9일 처음 희망버스에 오른 이후 한진중공업 사태 해결은 천미라씨의 2011년 최대 목표가 됐다. 이후 두 차례 더 희망버스를 타고 부산을 찾았다. 5차 희망버스 때는 회사에 휴가를 내고 2주 동안 부산에서 지냈다. 노조 사무실, 찜질방, 모텔 등에서 숙박하며 집회에 참석했다. 한진중 노조원들의 가을운동회에도 함께했다. 천씨는 노동자들의 친구가 됐다. 퇴근 뒤 정동길에 있는 민주노총 금속노조 사무실에 들러 다른 노사분규 현장의 이야기를 듣기도 했다. 천씨는 트위터에서 한국쓰리엠과 풍산마이크로텍 등 노사분규가 진행중인 회사의 상황을 계속 살피고 있다.

한진중공업과 관련해 지난해 작성된 96만4000여건의 트위트 변화 과정을 살펴보면, 수십만명의 트위플이 천씨와 비슷한 경험을 했음을 확인할 수 있다. 홀로 크레인에 오른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에게 주목하기 시작해 한진중공업 노사분규의 원인과 배경에 대한 인식이 깊어지고, 정리해고 노동자들의 처지에 공감하며 정부와 경찰에 반감을 갖게 되고, 희망버스에 동승하며 적극적으로 사태해결에 나서는 트위플의 변화 과정이 ‘열쇳말(키워드) 지도’에서 드러난다.

송경화 기자 freehwa@hani.co.kr


지금껏 접할 수 없었던 담론의 네트워크가 트위터에서 만개하고 있다. 그러나 말만으로는 세상이 변하지 않는다. 트위터 사용자들은 과연 트위터 밖 세상을 바꾸는 행동에 나설 것인가. 지난해 한진중공업 ‘희망버스’는 트위터가 개인의 행동을 어떻게 촉발하는지 보여준 전형적 사례다.

<한겨레>는 소셜미디어 분석기업 ‘사이람’에 의뢰해 ‘소셜텍스트 마이닝 기법’(사회연결망 분석과 텍스트 분석을 결합한 조사방법)을 통해 한진중공업 사태 관련 트위트 키워드(열쇳말) 지도를 만들었다. 우선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이 크레인 고공농성을 시작한 지난해 1월부터 노사 합의로 농성이 마무리된 11월까지 ‘한진중공업’, ‘김진숙’, ‘희망버스’ 가운데 하나라도 포함된 트위트 96만4042건을 모두 수집했다. 이후 이들 트위트에 등장하는 모든 단어를 다시 추출했고, 이를 바탕으로 매 시기 한진중공업 사태와 관련해 가장 많이 등장하는 40개의 단어를 골라냈다. 아울러 각 단어가 함께 등장하는 빈도 등을 바탕으로 시기별 열쇳말의 관계도 분석했다. 단 같은 문장을 그대로 전달하는 리트위트는 텍스트 분석에서 제외했다. 리트위트를 포함해 분석할 경우 몇몇 유력자들이 주로 사용한 단어들의 비중이 지나치게 커져 일반 트위터 사용자들이 쓴 단어들을 가릴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번 분석은 어떤 단어들이 많이 노출됐는지보다 일반 트위터 사용자들이 어떤 단어를 많이 사용했는지 살펴보는 데 초점이 맞춰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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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과 이해

초기엔 ‘85호 크레인’ ‘응원’ 등장 ‘노동자’ ‘정리해고’…원인에 관심

지난해 1월6일 크레인에 올라간 김 위원은 2월27일부터 트위터를 시작했다. 1~5월은 트위플이 김 위원의 고공농성에 주목하고 농성의 이유가 무엇인지 관심을 갖기 시작한 시기다.(그래프 참조) 이 시기엔 ‘85호 크레인’이라는 단어가 ‘김진숙’이나 ‘한진중공업’이라는 단어와 함께 가장 많이 등장한다. 중년 여성이 홀로 크레인에 오른 농성방법 자체가 사람들의 눈길을 끌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김 위원의 고공농성에 주목한 트위플의 호기심은 공감으로 이어진다. 김 위원의 이름과 함께 ‘동지’, ‘응원’이라는 단어가 많이 사용됐다. ‘김진숙’과 ‘트위터’가 하나의 트위트에서 사용된 경우가 많은 점도 특징적이다. 크레인에 올라간 김 위원에게 트위터는 지상의 사람들을 접속하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트위플의 관심은 김 위원의 행동 이면에 있는 사태의 원인에도 쏠렸다. ‘한진중공업’과 함께 많이 쓰인 단어는 ‘노동자’, ‘정리해고’다. 한진중공업 노동자들의 전면파업은 2010년 12월15일 회사가 생산직 노동자 1100명 가운데 400명을 정리해고·희망퇴직 시키겠다는 계획을 통보하면서 시작됐다. 트위플의 관심은 한진중공업의 노동쟁의 역사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김진숙’, ‘85호 크레인’과 함께 ‘김주익’이라는 이름이 117회 등장한다.

한진중공업 노조위원장을 맡았던 김주익씨는 2003년 10월 김진숙 위원과 같은 85호 크레인에 올라 129일 동안 고공농성을 벌이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박창수’라는 이름도 44차례 등장한다. 박씨는 1991년 5월 한진중공업의 전신인 대한조선공사 노조위원장으로 활동하다 서울구치소 수감 중 의문사했다. 이 시기 트위플은 박창수, 김주익, 김진숙으로 이어지는 한진중공업 사건의 맥락을 이해하기 시작한 것이다.

문화평론가 진중권씨(unheim)가 4월14일에 쓴 “한진중공업 김진숙씨 고공농성 100일째, 격려와 응원의 리트위트를…”이라는 글과 조국 서울대 교수(patriamea)가 4월3일에 쓴 “노동운동가 김진숙씨가 정리해고 철회를 주장하며 한진중공업 영도조선소 85호 크레인에 올라간 지 85일이 넘었다”는 글 등이 이 기간에 가장 널리 퍼진 트위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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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대와 직접행동

‘한진중’ ‘김진숙’ 제치고 ‘희망버스’ ‘경찰’ ‘최루액’ ‘언론보도’ 급부상

김 위원에 대한 공감 단계에 머물던 트위플은 지난해 6월 들어 ‘희망버스’를 중심으로 관련 트위트를 폭발시켰다. 이전까지 하루 최대 수백건에 머물던 한진중공업 관련 트위트가 6월10일 7282건으로 급증하더니 이튿날인 11일에는 1만7106건, 12일에는 2만2652건으로 늘었다. 6월10일은 희망버스 방문을 앞두고 사쪽이 영도조선소 입구를 지키던 노조원들을 강제로 몰아낸 날이었다. 11일과 12일은 희망버스가 부산에 도착해 시위를 벌인 날이다. 이후 희망버스가 떠날 때마다 트위트는 폭증하는 양상을 보였다.

직접행동이 시작되자 트위트에 자주 등장하는 단어에도 변화가 나타난다. 6~7월에는 ‘희망버스’라는 단어가 ‘한진중공업’이나 ‘김진숙’이라는 단어를 제치고 가장 많이 등장했다.

주요 단어의 양상도 다채로워졌다. 우선 희망버스의 목적지인 ‘부산’의 사용빈도도 폭증했다. ‘경찰’도 주요 단어로 급부상했다. 경찰은 ‘시민’, ‘용역’, ‘최루액’, ‘연행’ 따위 단어와 함께 많이 등장했다.

‘언론보도’라는 단어도 많이 등장했다. 한진중 사태 해결을 위한 방법으로 희망버스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이를 제대로 보도하지 않는 기성 언론과 이를 제지하는 경찰에 대한 반감이 이 기간에 집중적으로 형성된 것이다.

6월27일 한진중 사태 관련 트위트가 6만1061건을 기록해 조사기간 중 최대치를 기록한 것은 의미가 크다. 이날 한진중 노조 지도부는 조합원들의 의견수렴을 거치지 않은 채 사쪽과 협의해 파업을 접기로 결정했고, 법원은 강제퇴거명령 집행에 나섰다.

트위플은 이제 막 불이 붙은 직접행동에 찬물을 끼얹는 노조 지도부의 결정을 용납하지 않았다. 파업을 철회한 노조 지도부와 농성장에 투입된 경찰을 비판하는 트위트가 이날 폭발적으로 번졌다. 어느 한진중공업 해고노동자가 쓴 “업무복귀 및 협상타결은 어용노조의 계략입니다”라는 트위트가 1280차례나 리트위트돼 널리 퍼졌다. 결국 이날의 노사합의에도 불구하고 농성은 계속됐다. 노조 지도부가 아니라 직접행동에 나선 트위플이 한진중공업 해고자 복직투쟁의 주도권을 쥐게 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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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해결 위한 세력화

‘#HANJIN’ ‘#HOPEBUS’ 눈길 ‘조남호’ ‘국회 청문회’ 핵심단어로

거리에서 경찰과 맞서며 직접행동을 경험한 트위플은 스스로 조직화하기 시작한다. 지난해 8~9월 열쇳말 지도를 보면 ‘#HANJIN’(한진), ‘#HOPEBUS’(희망버스)라는 ‘해시태그’가 등장한다. 해시태그란 특정 주제에 관심을 가진 트위터 사용자들이 ‘#’ 표시 뒤에 공통의 단어를 붙여 꼬리표처럼 사용하는 것을 말한다.

7월까지는 팔로(추종) 관계로 맺어진 사용자들 사이에서 가끔씩 한진중과 관련한 트위트를 주고받았다면, 해시태그가 등장한 8월 이후에는 한진중과 관련된 모든 트위트를 모아 읽는 방식이 번진 것이다. 이는 트위트-리트위트로 이어지는 소통 방식보다 훨씬 더 적극적이고 조직적인 행동이다. 해시태그의 등장은 그동안 개별적으로 한진중 사태에 대한 의견을 쓰고 나르던 트위플이 하나의 세력으로 뭉치기 시작했음을 의미한다.

세력화된 트위플의 관심은 직접행동에서 문제 해결로 옮겨간다. 이 기간에 트위터에선 한진중공업 회장 ‘조남호’가 핵심단어로 떠올랐다. 사태 해결의 칼자루를 쥔 당사자가 주목을 받게 된 것이다. 조 회장의 이름과 함께 ‘국회 청문회’라는 단어도 자주 등장했다. 트위플이 정치권을 통한 문제 해결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트위플의 이런 여론은 결국 정치권을 움직였고, 외국 체류를 핑계로 한발 비켜서 있던 조 회장은 8월18일 국회 청문회에 증인으로 출석했다. 희망버스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국회 청문회에서 조 회장을 매섭게 몰아세운 정동영 의원(민주통합당)의 이름이 정치인으로는 유일하게 열쇳말 지도에 등장한 것이 눈에 띈다.

10~11월은 한진중 사태가 해결 국면을 맞는 시기다. 10월11일 조남호 회장과 금속노조가 첫 교섭을 시작했고, 11월10일 노사합의가 타결됐다. 이 시기에는 이번 사태와 관련된 주요인물들에 대한 형사처벌 여부에 트위플의 관심이 집중됐다. 크레인에서 내려온 김진숙 지도위원의 이름이 트위트에서 다시 한번 많이 언급됐고, ‘구속영장’, ‘기각’ 등의 단어가 김 위원의 이름과 함께 많이 쓰였다. 송경동 시인, 정진우 진보신당 비정규노동실장의 이름도 열쇳말 지도에 등장한다. 1년 동안 정보 공유, 사태 배경 인식, 직접행동, 정치권 압력 등으로 이어진 트위플은 한진중 사태 해결의 실질적인 주역이었다. 이름없는 수십만 시민을 주인공으로 만든 것은 트위터였다. 유신재 송경화 기자 ohora@hani.co.kr

트위플

‘트위터’(Twitter)는 “새가 지저귄다”는 뜻의 tweet에서 비롯한 에스엔에스(SNS) 서비스 이름이다. 트위터 사용자들은 그저 지저귀는 데서 만족하지 않고 보다 적극적인 정치참여를 도모하고 있다. 그들은 스스로를 ‘트위플’(Twitter + People)이라 부른다. 트위터하는 민중이라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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