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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1.11.29 20:55 수정 : 2011.11.30 15:03

지난 6월, ‘디시인사이드’가 국가정보원과 함께 ‘안보 아이디어 서바이벌’ 행사를 진행하면서 기념품으로 내건 국정원 시계. 출처 디시인사이드 디시뉴스

두 개의 전쟁 <하>절대시계의 힘
※절대시계: 국정원이 주는 시계

 ‘나는 친북이 싫어요’어느 중학생의 신념

정인석(가명·15)군은 중학생이다. 경기도의 집과 학교에서 그는 성적 중상위권의 평범한 학생이다. 학교 수업이 끝나면 집에 돌아와 컴퓨터를 켠다. 사이버 공간에서 그는 반북 투사가 된다. ‘친북 카페’에 들어가 문제될 만한 글을 검색한다. 해당 화면을 캡처(갈무리)하여 국정원 누리집(홈페이지)에 신고한다. 캡처 화면은 ‘친북 누리꾼’ 처벌의 증거가 될 것이다. 자신의 신고글도 갈무리한다. 신고 화면을 ‘안보 카페’에 올리면 회원들이 격려해줄 것이다. 그들이 있어 정군은 든든하다. 정군은 ‘사이버 안보감시단 블루아이즈’의 회원이다. 지난해 11월 ‘친북 누리꾼’을 감시·신고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정군은 하루 2~3시간씩 컴퓨터를 한다. 어느 날, 유머 게시판에서 ‘친북 누리꾼’을 조롱하는 글을 봤다. “저 사람들(친북 누리꾼), 장난이겠지 싶었는데 실제로 그(친북) 카페에 들어가보고 심각성을 알게 됐죠.” 정군은 지난 3월 카페 활동을 시작했다. “처음 신고할 땐 조금 떨렸다”고 그는 말했다. 북한의 대남 사이트 ‘우리민족끼리’의 동영상을 블로그에 올린 누리꾼 등을 찾아냈다. 국정원 누리집에 들어가 신고했다.

  지금까지 정군이 신고한 ‘친북 누리꾼’은 30여명이다. “누가 시키는 일이 아니에요.” 정군이 말했다. 직장과 살림에 바쁜 부모와 정치 이야기를 나눈 적은 거의 없다. 사회·도덕 시간에 통일 문제를 잠깐 다룰 뿐, 교사들은 북한 문제를 특별히 강조하지 않는다. 친구들도 그런 일에 관심 없다.

  스스로 “애국에 관심이 많다”는 정군은 군사전문 사이트를 즐겨 찾았다. 독도가 한국 땅임을 알리는 ‘편지쓰기 운동’에도 참여했다. ‘친북 누리꾼’처럼 ‘반북 누리꾼’도 영토·군사 문제에 대한 관심과 강력한 국가에 대한 갈구가 있다.(29일치 ‘민족방위사령부’ 참조) “독도·이어도 모두 결국 국가안보 문제더라고요.” 그가 품었던 일본·중국에 대한 경계심은 이제 친북세력에 대한 경계심으로 바뀌었다.

 

 공안당국에 쫓기는 ‘통일카페’ 또는 ‘친북카페’ 누리꾼들에겐 또 하나의 전선이 있다. ‘안보카페’ 또는 ‘반북카페’ 누리꾼들이다. 그들은 기존 보수 단체와 다르다. 보수 단체들은 오프라인 활동을 중심에 두지만 ‘안보 누리꾼’은 주로 사이버 공간에서 활약한다. 역시 사이버 공간에서만 활동하는 ‘친북 누리꾼’과 닮았다. 안보 누리꾼의 활동은 단순하고 명쾌하다. 그들은 친북 누리꾼을 감시·추적·고발한다.

 안보카페 가운데 가장 규모가 큰 것은 지난해 11월 개설된 ‘사이버 안보 감시단 블루아이즈’다. 회원이 2600여명에 이른다. 지난해 5월 개설돼 780여명이 가입한 ‘사이버간첩신고센터’ 카페도 있다. 이들 카페의 등장은 ‘사이버 안보사범’에 대한 공안당국의 대대적 수사가 진행된 시기와 맞물린다. 선후관계를 단정할 수는 없으나 서로 상승효과를 일으키고 있다는 점은 분명하다.


  온라인 공간의 국가보안법 위반 사건 수사는 경찰이 맡고 있다. 사이버 보안 수사를 담당하는 경찰 인력은 전국적으로 80여명이다. 지난해 경찰청의 권고·요청으로 삭제된 인터넷 ‘친북 게시물’은 8만건이 넘는다. ‘친북 카페’들은 폐쇄돼도 곧 재개설되곤 한다. 경찰 입장에서 그것은 끝도 없는 추적이다. 안보 누리꾼은 그 일의 조력자 구실을 한다.

  어떤 면에서 안보 누리꾼은 공안당국보다 더 공세적이다. “(많은 회원을 거느린 보수 사이트에 비해) 수백명 모여 있는 친북카페의 활동력이 몇배 더 높습니다. … 안보의식에 대한 패러다임의 변화가 요구됩니다. 안보위해세력에 대해 선제적 공격으로 도태시켜야 합니다.” ‘블루아이즈’ 운영진이 올린 카페 소개글의 한 대목이다.

  이들은 ‘친북카페’ 회원들의 아이디나 대화명을 주요 포털 사이트에 입력해 문제의 게시글을 찾아낼 수 있는 검색 프로그램을 사용한다. ‘친북카페’가 폐쇄됐다면 아이디 검색을 통해 다른 사이트로 옮겨간 누리꾼을 수색한다. 온라인에서 찾아낸 ‘친북의 흔적’은 국정원의 ‘NIS 111콜센터’ 누리집(홈페이지) 등에 신고하고, 그 화면을 다시 갈무리한 ‘인증샷’을 ‘블루아이즈’ 카페에 올리면, 다른 회원들이 이를 칭찬하고 독려한다.

국정원의 ‘NIS 111 콜센터’ 누리집에는 ‘좌익사범 의심 유형’을 설명하며 신고를 촉구하는 만화가 올라와 있다. 국정원 누리집 자료
  신고를 한다고 대단한 금전적 보상이 따르는 것은 아니다. 지난달 법무부가 간첩선 신고 최대 포상금을 1억5000만원에서 7억5000만원으로 크게 인상했지만, ‘찬양·고무’ 사건 신고자는 보상의 우선순위에 있지 않다.

  다만 국정원은 이들을 독려한다. ‘NIS 111콜센터’ 누리집에는 ‘좌익사범 의심 유형’이 정리돼 올라와 있다. 국정원은 △카페 등에 북한 찬양 문건을 집중 게재하는 사람 △사용자 특정이 어려운 대학 구내 컴퓨터 등을 이용해 북한 찬양글을 올리고 황급히 자리를 뜨는 사람 △휴대전화 문자 메시지나 트위터·페이스북 등으로 북한 찬양글을 전파하는 사람 등을 그 유형으로 소개하면서, 이를 발견할 경우 적극 신고할 것을 권하고 있다. 

  특히 국정원은 신고 실적이 높은 이들에게 ‘선물’을 보낸다. “귀하의 나라사랑 정신을 잊지 않을 것”이라 적힌 편지와 함께 국정원 영어 로고(NIS)가 박힌 시계를 누리꾼들에게 우편으로 보낸다. 안보 누리꾼들은 그 시계를 영화 <반지의 제왕>에 나오는 절대반지에 빗대 ‘절대시계’라 이름 붙였다. 국정원도 그 명칭을 따라 쓰고 있다. 지난 6월, 국정원은 ‘간첩·좌익사범 의심유형 찾기’ 퀴즈 이벤트를 벌였는데, 경품으로 내건 시계를 “넘치는 자신감 절대시계”라고 소개했다. 국정원이 직접 나서 시계의 ‘상징성’을 고조시킨 셈이다.

  ‘절대시계’를 받은 회원은 카페에 그 사실을 알리고 자랑한다. 집으로 배달된 ‘절대시계’의 사진을 카페에 올려 ‘인증’받기도 한다. 안보 누리꾼들 사이에서 그 시계는 일종의 훈장 구실을 한다. 시계 가격이 얼마인지, 지금까지 얼마나 많은 시계를 안보 누리꾼에게 전달했는지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 국정원은 ‘안보카페’ 회원들을 초청해 견학도 시켜준다. 안보 강연, 국정원 직원들과 식사, 가상 사격체험 등의 프로그램이다.

10·20대가 회원의 50% 넘어
무기·군사·전쟁 관심 많아
“대북 강경 군사주의 기운
현정부서 높아진 것과 연관”

  ‘블루아이즈’ 운영진이 게시판에 공개한 카페 통계를 보면 회원의 50% 이상이 10·20대고, 30대까지 합하면 젊은층이 70%가 넘는다. 10대 회원을 찾아보기 어려운 ‘통일카페’와는 대조적이다.

  실제로 지난 1월, 10대들이 주도하여 ‘대한청소년나라사랑연합’이라는 카페를 새로 만들었다. ‘블루아이즈’의 동맹카페를 표방하고 있는데, 그 회원 상당수가 ‘블루아이즈’에도 가입한 것으로 추정된다. ‘…나라사랑연합’의 회원은 700여명이고, ‘블루아이즈’ 회원은 2600여명이다. 회원의 80%는 남성이다. ‘통일카페’ 회원이 40대 남성이 주축이라면, ‘안보카페’ 회원의 주류는 20대 안팎의 남성이다.

  카페 회원 정인석(가명·15)군은 자신의 활동에 대해 “친구들이 컴퓨터 게임이나 총기류를 좋아하듯이 나는 좀더 전문적으로 안보 문제에 관심이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독도 문제에도 관심이 많았던 그는 ‘블루아이즈’에 가입하기 전, 각종 무기를 전문적으로 소개하는 군사 사이트를 즐겨 찾았다. 정군은 특별한 예외가 아니다. 한국 10대 남자 청소년의 대부분은 가상의 적을 파괴하는 전쟁 시뮬레이션 게임에 익숙하다. 영토, 무기, 군사, 전쟁, 강력한 국가에 대한 취향은 ‘통일카페’ 회원과 ‘안보카페’ 회원이 공유하는 정서적 기반인 듯했다.

  취재 과정에서 경찰청 사이버 안보수사를 지휘하는 고위 책임자를 만났다. 그도 전쟁 이야기를 꺼냈다. “6·25 전쟁 때 민간인을 학살한 건 북한에서 내려온 사람들이 아닙니다. 남한에 원래 살던 사람들 중에 어떤 이들이 주변 민간인을 죽였어요. 지금은 남북 대치 상황이고 북한은 적입니다. 그런데 종북 카페 회원들처럼 그런 신념을 가진 사람들이 유사시에 과연 어떻게 행동할까요?” 그의 말처럼 1950년 한국전쟁 때, 정규군이 아닌 민간 무장세력이 민간인을 학살하기도 했다. 거기에는 좌우가 따로 없었다. 정부는 민간의 학살을 방조하거나 도왔다. ‘죽여도 괜찮은 적’이 내부에 있다는 관념이 민간인 사이에 번지도록 부추겼다.

  한때 뉴라이트 단체에 몸담았던 익명의 시민운동가는 젊은층 중심의 안보카페에 대해 “이명박 정부 들어 당국과 (보수) 언론이 주도하여 대북 강경 군사주의의 기운을 전사회적으로 높여놓은 것과 관련이 있다”고 분석했다. 국가·영토 등을 고민해온 젊은 세대 가운데 일부가 정부가 주도하는 대북 군사주의에 몰입하고 있다는 것이다.

  김호기 연세대 교수(사회학)도 “국가주의·애국주의·국수주의를 바탕에 둔 일부 젊은층은 (사회주의에 대한) 극도의 혐오감·저항감을 갖고 있는데, 이것이 최근 극단적 반북의식으로 표출되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경찰청 관계자가 말한 “민간인이 민간인을 죽이는 유사 사태”는 사이버 공간에서 매일 일어나고 있다. 

송경화 기자 freehwa@hani.co.kr


독일은 구체적 위협 입증돼야 정당 해산
한국은 단순한 표현만으로 일반인 처벌

국내 보수세력이 이른바 ‘친북세력’을 단죄할 때 흔히 동원하는 논리가 ‘방어적 민주주의’다.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헌법적 기본권을 박탈할 수 있다는 법·정치 철학이다.

 그 원류는 독일에 있다. 나치 치하를 겪은 독일은 1949년 제정한 기본법(헌법) 21조 2항에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침해·폐지하려 하거나 연방공화국의 존립을 위태롭게 하는 정당은 위헌”이라고 규정했다. 한국 헌법에도 ‘방어적 민주주의’의 요소가 있다. 8조 4항에서 “정당의 목적이나 활동이 민주적 기본질서에 위배될 때에는 … 헌법재판소의 심판에 의하여 해산된다”고 규정했다.

  헌법 조항은 비슷해 보이지만, 두 나라가 ‘방어적 민주주의’를 구현하는 방식에는 차이가 있다. 독일연방헌법재판소는 1952년 ‘신나치’ 계열의 사회주의 국가당(SRP), 1956년 무장봉기 시도의 전력이 있는 독일공산당(KPD)에 위헌 결정을 내렸다. 그러나 동·서독 분단 시기를 포함해 지금까지 다른 공산당 계열 정당과 신나치주의 극우 정당의 활동은 합법적으로 보장한다. 대표적 극우 정당인 국가민주당(NPD)은 지방의회 의석을 확보하고 있기도 하다. 각 정당이 어떤 이념을 표방하는지는 독일 기본법이 보장하는 표현의 자유에 의해 보장된다. 헌정체제를 전복하려는 구체적 위협이 명백히 입증됐을 때만 해산을 결정한다. 나치즘을 추종하는 개인의 인종혐오 범죄는 폭력행위를 처벌하는 형법에 따라 법의 심판에 맡긴다.

  반면 한국에서는 정당, 단체, 개인을 가리지 않고 모든 이적·고무 행위를 처벌하는 국가보안법을 적용한다. 임지봉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독일 기본법의 정당 해산 조항에 비해 한국의 국가보안법은 (정당보다) 훨씬 더 큰 범주인 일반인을 상대로, 구체적 위협 행위가 아닌 표현만으로도 처벌이 가능하도록 하여 (기본권에 대한) 규율의 범위가 더 크다”고 말했다. 정태욱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북한에 이로운 표현이라면, 그것이 진실이라 해도 처벌할 수 있는 국가보안법은 헌법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는 물론 사상과 양심의 자유를 침해한다”고 말했다.

  ‘방어적 민주주의’ 요소가 반영된 한국 헌법 조항으로 37조 2항도 있다. “자유와 권리는 국가안전보장, 질서유지, 공공복리를 위하여 필요한 경우에 한하여 법률로써 제한할 수 있”다는 내용은 민주주의의 적에 대한 경고다. 그러나 “(안보 등을 위해) 제한하는 경우에도 자유와 권리의 본질적 내용을 침해할 수 없다”고 못박았다.

송경화 기자


보수언론 “기밀 유출 가능성 수사” 호들갑
보수언론 “기밀 유출 가능성 수사” 호들갑

‘통일카페’ 또는 ‘친북카페’ 회원들에 대한 수사는 대부분 ‘진행형’이다. 보수언론이 대서특필한 ‘종북 누리꾼’ 가운데 상당수는 수사 초기 단계의 혐의 내용이 언론에 유출된 경우다. 법정에서 “김정일 위원장 만세”를 외친 황아무개(43·수감중)씨는 원래 열병합발전소 설계책임자였다. “수사기관은 (황씨가) 설계도를 북한에 유출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고 지난 1월 <조선일보>가 보도했다. 단순 고무·찬양을 넘어 간첩 행위를 했다는 투였지만, 나중에 검찰이 제출한 공소 사실엔 그런 내용이 없었다.

 지난 5월 조선일보는 북한에 동조하는 글을 트위터에 올린 혐의로 입건된 김아무개(44)씨에 대해 “기밀 자료를 빼내 북한으로 넘겼을 가능성이 커 수사중”이라고 1·3면에 보도했다. 김씨는 정부기관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정보통신 회사에 다니고 있었다. 석달 뒤 검찰이 그를 기소했는데, ‘기밀 유출’ 사실은 확인하지 못했다.

  대법원 사법연감을 보면, 2010년 1심 판결이 내려진 국가보안법 위반 기소자 40명 가운데 34명이 유죄를 선고받았다. 이 중 26명은 집행유예였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항소1부(재판장 이원형)가 이달 초 내린 판결은 관련 사건 양형의 추세를 보여준다. 북한 찬양 글을 올린 혐의로 기소된 신아무개(35)씨에 대해 재판부는 “국가의 안전,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무너뜨리기 위해 구체적·현실적 행위까지 한 것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며 “우리 사회가 과거에 비해 한층 발전했고 사회주의 국가들이 대부분 몰락한 현실에 비춰 위험성도 그리 커 보이지 않는다”며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체제 위협 가능성이 크지 않은 개인 표현물을 보안법으로 옭아매는 일의 헌법적 정당성에 대해서는 따로 언급하지 않았다.

송경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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