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 ‘사이버 민족방위사령부’에 북한 찬양 글을 올렸다는 이유로 수사를 받고 있는 김창남(가명)씨가 27일 저녁 서울 여의도 거리에 서 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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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개의 전쟁 〈상〉민족방위사령부
1948년 12월1일 이승만 정권은 국가보안법을 제정했다. 기본권을 유린하는 ‘반헌법적 악법’이라는 비판이 반세기 이상 끊이지 않았다. 민주정부 시기 그 효용을 다한 듯 보였던 보안법은 이명박 정부 들어 다시 맹위를 떨치고 있다. 온라인 공간의 이적표현물을 문제삼으며 다시 한번 보안법 위반자를 색출하고 있다. ‘친북카페’ 또는 ‘종북카페’라는 단어는 지난해 가을부터 본격 등장했다. ‘사이버 안보사범’을 대대적으로 단속한 검경이 이름붙였다. 그 명명에는 카페 회원 전체를 종북주의자로 낙인찍는 효과가 있다. 국가보안법이 서슬 퍼런 한국에서 친북·종북의 낙인은 사회적 사망선고나 다름없다. 그 회원들은 해당 카페를 ‘통일카페’라 부른다. 이번 기사에선 카페 및 그 회원에 대한 ‘낙인’을 최대한 지양하되, 해당 취재원의 판단 기준에 맞춰 ‘통일카페’ 또는 ‘친북카페’라는 단어를 번갈아 쓴다. 지난 9월부터 두달에 걸쳐 이들 카페 회원 등 수사 대상자 12명을 만나 인터뷰했다. 해외에 있거나 대면이 여의치 않은 10명은 전화·전자우편·채팅 등으로 인터뷰했다. 이밖에 21명의 카페 회원을 상대로 심층 설문조사를 했다. 그들의 가족과 담당 변호사를 만났고, 검찰과 경찰의 관계자를 접촉했다. 문제의 카페에 올라온 수백쪽 분량의 글, 검찰의 공소장과 법원 판결문 등도 검토했다. 기사에 등장하는 이들은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수사를 받고 있다. 그들은 이름·거주지·직장·가족관계·학력 등에서 철저한 익명 보장을 요구했다. 직장인·자영업자·주부…그들은 되묻는다“표현의 자유가 있는데 왜 그런 글 쓰면 안되는 거죠?” 지난 8월 “위대한 김정일 장군님 만세”라는 제목의 기사가 몇몇 보수언론에 실렸다. ‘사이버민족방위사령부’(이하 사방사) 카페 회원이자 <두개의 전쟁전략> 집필자인 황아무개(43)씨가 항소심 법정에서 “…만세”를 외쳤다는 내용이었다. 때맞춰 신임 한상대 검찰총장은 취임사에서 “이 땅에 북한 추종세력이 있다면 마땅히 응징되고 제거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후 “사이버 공간에 암약하는 종북세력”에 대한 보도가 쏟아졌다. 그들은 북한에서 내려보낸 간첩이 아니다. 정당·노조활동을 한 것도, 재야 통일단체에 회원으로 가입한 적도 없는 평범한 직장인이 대부분이다. 그런데 왜? 취재 과정에서 만난 ‘통일카페’ 또는 ‘친북카페’ 회원들은 그 질문을 받고 오히려 되물었다. “표현의 자유가 있는데, 왜 그런 글을 쓰면 안 되는 거죠?” 이들 가운데는 “<한겨레>도 믿을 수 없다”며 인터뷰나 설문조사를 거절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한겨레>의 접촉에 응한 40여명이 이른바 ‘사이버 친북세력’을 얼마나 대표할지는 알 수 없다. 다만 당국의 수사를 받고 있는 처지임에도 두달에 걸쳐 거듭 만나며 당당하게 의견을 피력한 이들은 ‘확신 세력’인 것이 분명했다. 그 신념의 바탕에는 민족·군사·반미의 정서가 흐르고 있었다.
각종 ‘통일카페’는 2000년대 초반 생겨났다. 가장 큰 규모의 ‘사이버민족방위사령부’가 개설된 2002년에는 효순·미선 사건, 미 F-15K 전투기 도입 논란, 겨울올림픽 오노 사건 등이 있었다. 카페 초기부터 회원들은 미국에 대한 반감을 바탕으로 군사 지식을 뽐내는 논쟁을 벌이며 ‘강력한 민족국가’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했다. 열성 회원들은 비무장평화의 이상보다 군사력에 바탕을 둔 강대국의 미래에 더 열광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80·90년대 ‘주사파’와도 달라
사상·이념에는 관심도 없어
“정부·언론 발표 밖에 없는
북한 정보 제대로 알고 싶다” 2008년 미국산 쇠고기 반대 촛불집회는 이들 카페의 저변을 넓혔다. 인터뷰에 응한 ‘통일카페’ 회원들 상당수가 촛불집회에 참여했고, 더 많은 정보를 얻고자 포털사이트 다음의 ‘아고라’에 접속했으며, 더 전문적인 국제정세 분석 카페를 찾다가 ‘사방사’ 등에 가입한 경우였다. 그들은 “먹기 싫은 것을 억지로 먹게 하는 미국”에 대한 반감을 스스로 설명할 논리적 근거를 갈구했다. 강력한 군사력에 대한 동경과 미국 패권주의에 대한 반감이 북한을 만난 계기는 ‘천안함 사건’(2010년 3월)과 ‘연평도 포격사건’(2010년 11월)이었다. ‘대북 강경론’의 근거가 됐던 천안함·연평도 사건이 오히려 북한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킨 것은 역설적이다. 40대 변호사 이철범(가명)씨는 “천안함 사건 이후 진실을 알고 싶어 의혹을 추적하다가 카페 활동을 하게 됐다”고 밝혔다. 이 시기를 경계로 평범한 누리꾼들의 범상한 카페 활동은 근본적 변화를 일으켰다. 네이버의 ‘사방사’ 카페 회원이 7000명을 넘어섰고, 비슷한 성향의 다른 카페에도 1000여명의 회원이 몰렸다. 40대 주부 민정아(가명)씨는 연평도 포격사건 직전인 지난해 10월 카페 활동을 시작했다. “북한 정보를 제대로 전달해주는 언론 매체가 없지 않나요? 북한 지도자를 찬양하자는 게 아니라, 카페를 통해 국제정세와 북한의 현실을 이해하고자 하는 거예요.” 인터뷰에 응한 ‘통일카페’ 회원 모두가 민씨와 다르지 않았다. 기성 언론의 북한 관련 보도를 믿지 않았다. 50대 자영업자 최지훈(가명)씨는 “강대국들이 항상 북한에 ‘강력 조치하겠다’고 해놓고 총 한번 쏜 적 없는 걸 의아하게 여겨 스스로 정보를 찾고자” 카페에 가입했다. “인터넷이 없었으면 우리 같은 사람들은 영원히 진실을 알 수 없었을 거예요. 북한에 대해 정부와 언론 발표 말고는 알 길이 없었잖아요.”
공안 당국이 문제 삼은 카페들은 속속 폐쇄되고 있다. 당국이 이른바 ‘친북카페’로 분류한 네이버의 어느 카페 초기 화면에 “수사기관(경찰청)의 공식 요청에 따라 이용(접근)이 제한된 상태”라는 알림이 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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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힘에 민족적 자긍심 느껴”
‘미국 주도의 현실’ 반감과
‘강력한 군사력’ 동경 치달아 천안함·연평도 사태 이후 ‘통일카페’ 회원들의 관심은 북한에 더 집중됐다. 회원 대다수의 ‘활동’은 유튜브·외신 등에서 구한 북한 관련 정보를 카페에 올리고 이를 분석하는 데 맞춰졌다. 40대 자영업자 박석운(가명)씨는 “당국이 폐쇄한 북한 사이트에 들어가 자료를 구하는 게 아니다”라고 말했다. “국내에서 차단된 (북한이 운영하는) ‘우리민족끼리’ 사이트에 프록시 서버를 이용해 들어가 자료를 모을 거라고 (공안당국이) 추정하던데, 그렇지 않아요. 북한과 관련해 (인터넷에) 공개된 자료가 얼마나 많은데요. 북한의 힘을 모르는 이들이라면 그냥 지나칠 정보를 우리가 공동작업으로 수집하고 분석하는 거죠.” 수집된 정보는 여러 해석에 의해 보충된다. 파편적 정보는 때로 과장된 해석을 낳는다. <…전쟁전략>을 쓴 황아무개(43)씨는 김 위원장이 어느 농장을 방문한 사진에 대한 해석에서 “배경에 펼쳐진 (북한 현지의) 농장 지도가 장차 북한이 점령하게 될 미국 영토를 암시한다”고 주장했다. 이는 1980·90년대 학생운동권을 지배했던 ‘주체사상파’와 확연히 다르다. 카페 회원 가운데 북한이 펴낸 <주체사상 총서> 등을 접한 이는 없었다. 사상·이념에 특별한 관심도 없었다. 북한 당국과 연계를 맺는 일에도 신경쓰지 않았다. 그들은 온라인에 퍼진 북한의 군사·무기·외교 정보를 모으고 해석하는 데 집중해왔다. <…전쟁전략>이 이들 사이에서 ‘독보적 분석물’로 꼽히게 된 것도 군사·무기 체계에 대한 세부 정보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사이버 종북세력’으로 불리는 그들의 정서에 영토 확장을 꾀하는 보수 민족주의가 깃들어 있는 점은 흥미롭다. ‘사방사’ 개설자인 황씨의 <…전쟁전략>에는 “일본도 우리땅, 미국 서부도 우리땅, 북방 고토도 우리땅”이라는 표현이 있다. <…전쟁전략>을 읽고 가슴이 터질 것 같았다는 김창남(가명·41)씨도 “그때의 기분은 김진명의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를 읽고 민족의식이 고취될 때와 같았다”고 말했다. <무궁화꽃이…>는 박정희 정권 시절 미국 몰래 핵무기를 개발하던 물리학자를 다룬 소설이다. 문단에서는 보수적 민족주의에 입각한 작품이라는 평가가 많다. “‘패권국’ 미국에 맞서, 남한이 못하는 걸 유일하게 그 작은 나라, 북한이 하고 있는 거예요. 그 힘을 뒤늦게 알게 되니 매료되고 민족적 자긍심을 느끼게 된 거죠.” 김씨가 말했다. “비정상적 놀이터를
엄숙함과 진지함으로 수사
찬양에 현실적 실천력 없어
무엇이 위험하다는 거죠?”
▷ ‘종북척결’ 앞세워 인터넷 샅샅이…보안법 기소 85%가 ‘찬양·고무’
▷최대 통일카페 ‘사방사’…위장가입도 많아
▷“북, 미국 유대자본과 전쟁”…핵대결 과장된 해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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