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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1.11.28 20:23 수정 : 2011.11.29 10:18

지난 27일 저녁, 서울 여의도 어느 피시방에서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수사를 받고 있는 김창남(가명)씨가 북한 관련 국내 보도를 찾아 읽고 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두개의 전쟁 〈상〉민족방위사령부
‘무궁화꽃이…’ 소설 읽고
민족의식 고취됐을때 기분
카페글 보고 똑같이 느껴

낯선 목소리의 남성이 문을 두드렸다. “김창남씨, 김창남씨, 문 여세요.” 지난 6월 어느 날 오전 9시께 김창남(가명·41)씨 집에 경찰 10여명이 들이닥쳤다. 아침 식사를 준비하던 장모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김씨 장모님이시죠?” 경찰은 장모의 얼굴을 알아봤다. 그들은 가족 모두의 얼굴을 알고 있었다. 4살배기 아이가 경찰의 얼굴을 멀뚱멀뚱 쳐다봤다. 경찰은 컴퓨터, 가방은 물론 이불 밑, 화장실 천장까지 뒤졌다. 경찰은 김씨를 데리고 자주 가는 피시방과 그의 직장 사무실을 찾아가 다시 압수수색했다.

전날 밤, 김씨는 아내에게 말했다. “이젠 장모님께 말씀드려야 할 것 같아. 놀라시면 안 되니까. 보통 아침에 온다던데….” 온라인 카페 회원 가운데 압수수색을 당한 이들이 있었다. 그들이 카페에 올린 글은 김씨의 글과 큰 차이가 없었다. 국가보안법의 고무·찬양죄에 해당하는 글이라고 경찰은 판단하고 있었다. 아내 앞에선 태연한 척했지만, 김씨는 불길한 예감을 다독이며 잠이 들었다. 눈을 떠보니 예감은 현실이 됐다.

김씨는 1980년대 말 대학에 입학했다. 학생운동과는 거리가 멀었다. “통일이 되면 좋겠다”는 막연한 생각은 품고 있었으나, 그 생각을 실현하려고 앞장서지는 않았다. 그는 그저 평범했다. 군대를 다녀왔고 회사에 취직했고 직장 동료와 결혼했다. 김씨는 먹고사는 문제로 바빴다. 고달픈 일상 가운데 “미국 주도의 신자유주의에 문제가 있다”는 생각을 가끔 했지만,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집회가 한창이던 2008년 여름, 김씨는 퇴근하여 돌아온 집에서 포털 사이트 다음의 ‘아고라’ 방에 들어가 여러 글을 읽었다. “미국 주도의 국제정세에 절망하고 있었다”고 김씨는 당시의 심정을 회고했다. 어느 날 국제정세를 명쾌하게 분석하는 온라인 카페가 있다는 추천글을 발견했다. 네이버에 만들어진 ‘사이버 민족방위사령부’라는 카페였다.

지난해 7월 김씨는 카페에 가입했다. 많은 회원들이 하나의 글을 추천했다. 제목은 <두개의 전쟁전략>. 사무실에 앉아 글을 읽던 김씨의 가슴이 터질 듯 뛰었다. “다른 나라도 아닌 같은 민족인 북한에 힘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가슴에 뭉쳤던 한이 풀리는 느낌이었다”고 김씨는 회고했다. “그때의 기분은 김진명의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를 읽고 민족의식이 고취될 때와 같았다”고 말했다. 보수 민족주의적 작품이라는 평가를 받는 소설에 심취했을 정도로 김씨는 ‘불온사상’과는 거리가 멀었던 것이다.

김씨는 그 글을 다른 카페에 퍼날랐다. 북한 관련 정보와 주장도 카페에 올렸다. 그 때문에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수사받게 될 줄은 몰랐다. “민족주의자, 자생적 사이버 통일운동가”를 자처하는 카페 회원들을 공안당국과 보수언론은 주사파, 종북주의자, 심지어 간첩이라 불렀다. 주변 친구들까지 김씨를 “미쳤다”고 외면했다. 6개월째 경찰 수사를 받고 있는 김씨는 피가 마른다. “집과 직장에 창피를 주어 자기검열에 얽매이게 하려는 의도인 것 같다”고 그는 말했다. 재판은커녕 기소도 되지 않았지만 김씨는 이미 ‘빨갱이’로 매장당했다. 압수수색 직후 직장에서 대기발령 조처를 당했다. 2009년부터 올해 10월까지 보안법 위반 혐의로 입건된 이는 335명이다. 절반인 165명이 김씨와 같은 ‘사이버 안보사범’이다.

송경화 기자 freehw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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