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족 대이주 100년
<1부>뿌리 ④ 성공과 실패
한국 조선족은 지하철길 위에 집거한다. 서울 구로구 가리봉동 우마길~구로동길 주변은 ‘조선족 타운’이다. 발밑으로 서울 지하철 1·2·7호선이 집결한다. 가리봉동 근처 여러 환승역의 새벽 지하철은 수도권 곳곳의 공장·건설현장·가정집으로 조선족 잡부·파출부·간병인을 실어나른다. 그들은 1970년대 초 지어진 연립주택 쪽방에서 눈 비비며 일어난다. 70년대 말 형성된 가리봉 시장에서 ‘유탸오’(튀김빵)로 허기를 달래고, 80년대 형성된 구로 인력시장에서 일거리를 찾는다.
해질녘 지하철은 산지사방으로 흩어진 조선족을 가리봉동에 불러모은다. ‘양뀀’(양꼬치구이), ‘훠궈’(샤브샤브), ‘꿩바러우’(찹쌀탕수육)를 파는 식당 130여곳이 골목마다 숨어 있다. 그리고 냉면. 조선족이 ‘국수’라 부르는 냉면을 먹으러 잡부·파출부·간병인은 ‘진달래 냉면’을 찾아온다. 진달래꽃으로 육수를 낸 냉면이 6000원, 옥수수 가루로 만든 온면이 5000원이다. 식당 주인 김숙자(57)씨는 평일이면 100여만원, 주말이면 300여만원의 매상을 올린다.
중국 길림성 연길에서 태어난 김씨는 한국에서 성공했다. ‘진달래 냉면’을 비롯해 5개 식당을 운영한다. 남편·아들딸과 함께 한국 국적을 얻었고 중국에 부동산도 마련했다. ‘재한동포연합총회’ 회장이기도 한 그는 한국의 노인·장애인을 위해 봉사활동을 한다. 가련한 동족을 위해 쉼터도 운영한다. 몸둘 곳 없는 조선족 20여명이 햇볕 들지 않는 쉼터에서 하루 5000원을 내고 먹고 잔다. 일용노동에 지친 그들에게 김씨의 성공은 꿈결같다. 그들은 고향의 냉면을 먹으며 고향에서 품었던 소싯적 꿈을 생각한다. 그들은 김씨와 다른 인생 궤도에 올라타 있다.
안수찬 기자, 이상원·안세희 인턴기자 ah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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