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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1.11.03 20:16 수정 : 2011.11.03 22:47

지난 7월 중국 길림성 통화지구 유하현 유하조선족중학교 교실에서 지리 수업을 듣던 김림향이 창밖을 바라보고 있다. 유하/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조선족 대이주 100년 〈1부〉뿌리] ① 마지막 학교

26개 중학교 있었던 유하현
모두 문닫고 이젠 한곳 남아
거리엔 온통 한족뿐이에요

김림향은 칠삭둥이였다. “고양이처럼 작았대요. 엄마가 나를 칠개월만 품었거든요.” 작고 연약한 아이가 4살이 되었을 때, 아빠는 한국에 갔다. 아이가 7살이 되었을 때, 엄마도 한국으로 떠났다. 친척집에서 자란 아이가 8살이 되었을 때, 아빠와 엄마는 이혼했다.

림향은 그날 밤 잠들지 못했다. 한국에서 번 돈으로 아빠는 중국 길림성 유하현에 아파트를 샀다. 한달 동안 아빠·엄마·림향은 함께 지냈다. 함께 지내는 동안 아빠와 엄마는 계속 싸웠다. “내가 잠든 줄 알았나 봐요.” 그날 밤 눈감고 누운 림향 곁에서 엄마가 말했다. “헤어집시다.” 아빠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다시 엄마가 떠나고, 아빠도 떠났다. 모두 한국으로 갔다. 새 아파트를 구한 보람은 없었다. 한국 땅에서 엄마와 아빠는 서로 연락을 끊었다. 소학교(초등학교)에 입학한 림향은 줄곧 기숙사에서 지냈다. 엄마는 한국에서 한국인과 재혼했다. 아들 둘을 새로 낳았다. 아빠는 지난 8월 한족 여성과 재혼했다. 훗엄마(새엄마)는 중국에 살지만, 아빠는 여전히 한국에 있다.

“나는 아빠 편이에요.” 림향이 작은 입술을 오므리며 말했다. 아빠는 석달에 한번 림향을 보러 중국에 왔다. “너무 어릴 때 헤어져 엄마는 기억에 없어요. 보고 싶지 않아요.” 엄마는 중국에 오지 않았다.

“이혼했으면 했지 신경쓸 필요 없어.” 2층 침대가 있는 기숙사 방에서 동갑내기 친구가 림향에게 말해 주었다. 같은 방을 쓰는 4명 가운데 2명의 부모가 이혼했다. 소녀들은 한국 남자 연예인 사진을 벽에 붙여 두었다.

“친구들도 다 그런 일을 겪고 선생님과도 담화(대화)하니까, 이해할 수 있어요. 나도 이제 컸으니까.” 볼에 아직 젖살이 남은 림향이 잠시 머뭇거렸다. “그렇다고 이혼한 이유를 이해한다는 건 아니고…. 더이상 화를 내지 않는다는 거죠. 누구한테도.”

그것은 특별한 일이 아니다. 유하조선족완전중학교(이하 유하조중) 학생들의 대다수는 부모와 떨어져 지낸다. 그들 부모 가운데 상당수는 별거·이혼했다.


20년 전 유하현에는 26개 조선족 중학교가 있었다. 1990년대부터 조선족 학생 수가 급감했다. 조선족 학교는 통폐합됐다. 림향이 다니는 유하조중만 남았다. ‘한국 바람’이 불어닥친 유하의 거리에는 온통 한족만 남았다.

바람이 불면 림향의 부드러운 단발머리가 그의 사춘기처럼 흔들린다. “웨이, 메이뉘.”(어이, 미녀) 거리의 한족 남학생들은 림향을 그냥 지나치지 않는다. “전화번호 좀 알려줘.” 림향은 중국말을 다 알아듣는다. “남자친구는 없어요. 다 말썽꾸러기뿐이에요.” 림향의 얼굴이 빨개졌다. “어쨌든 한족하고 사귀진 않을 거예요.”

지난 7월 림향은 한자 한자 뜯어가며 학기말 조선어 시험을 치렀다. 87점을 받았다. 그의 성적은 반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든다. 림향은 콩나물을 좋아한다. 고기는 좋아하지 않는다. 천생 조선족인 림향은 엄마·아빠가 헤어진 이유, 또래 친구가 줄어드는 이유를 알지 못한다. 그것이 100여년에 걸친 조선족 대이주의 결과임을 15살 림향은 아직 알지 못한다.

유하/안수찬 기자 ah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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