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지엠(옛 지엠대우), 하이닉스·매그나칩, 케이티엑스(KTX), 현대자동차 등의 사내하청 노동자들(왼쪽부터)은 불법파견에 따른 정규직화를 요구하며 장기투쟁을 벌였으나 아직까지 정규직으로 전환되지 못하고 있다. 맨 왼쪽 사진은 지난 2008년 전국금속노동조합 지엠대우자동차 비정규직지회 소속 해고 노동자 이준삼(31)씨가 서울 마포대교 난간에 밧줄로 매단 바구니에 들어가 사내하청 해고 노동자들의 복직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이다 119구조대가 다가오자 한강으로 뛰어내리는 장면이다. <한겨레>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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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일자리’ 사내하청 ④ 만연한 불법파견
지엠·하이닉스, 정부판정 무시KTX·현대차는 법원판결 외면 벌써 6년이 지났지만, 김민수(가명·39)씨는 날짜까지 정확히 기억하고 있었다. 2005년 4월13일. 노동부가 한국지엠(당시 지엠대우) 창원공장 사내하청 노동자 800여명에 대해 불법파견을 인정한 날이다. 김씨는 “정부가 불법파견이라고 했으니까 곧 정규직이 될 거라고 굳게 믿었다”고 했다. 하지만 그건 착각이었다. 오히려 그때부터 시련이 시작됐다. 노조원들이 많이 소속돼 있는 하청업체는 느닷없이 폐업을 했고, 관행적으로 늘 반복돼왔던 3개월·6개월 단기직들의 계약이 종료됐다. 수많은 하청 노동자들이 정규직은커녕 하루아침에 실업자가 된 것이다. 창원공장 내 40미터 높이의 굴뚝에 한 달 동안 올라가 농성을 하고, 단식투쟁에 노숙농성 등 ‘죽는 것’ 빼고 다 했지만 정규직 채용의 꿈은 점점 멀어져 갔다. 그는 “당시 불법파견으로 인정된 이들 가운데 200여명만이 남아 지금 사내하청으로 일하고 있다”며 “나머지는 다 떠났다”고 말했다. 김씨는 아직도 해고자 신분이다. 또 지엠 하청 노동자들의 정규직화 투쟁은 멈췄다. 지난해 12월 창원지법은 ‘파견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파견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지엠대우의 데이비드 닉 라일리 전 사장(현 지엠유럽 사장)에게 벌금 700만원을 선고했을 뿐이다. 한국지엠뿐만 아니라 하이닉스·매그나칩, 케이엠앤아이, 르네상스호텔 등의 수많은 사내하청 노동자가 불법파견을 인정받았지만 정규직 전환은 이뤄지지 않았다. 케이엠앤아이 노동자들은 ‘집단 유서’까지 쓰며 격렬하게 투쟁했지만, 회사는 꿈쩍도 안 했다. 노동자들은 결국 싸움을 접어야 했다. 검찰도 노동부가 불법파견으로 판정한 사건에 대해 번번이 무혐의 처분을 해 기업에 ‘면죄부’를 줬고, 기소를 하더라도 벌금형이 고작이었다. 5년4개월 동안 ‘목숨을 걸고’ 싸워 정규직화를 이뤄낸 기륭전자와 5년 만에 대법원에서 승소해 원청에 직접고용된 한국마사회 사내하청 노동자들의 성과가 그나마 눈에 띄는 정도다. 김소연 금속노조 기륭전자분회장은 “기업은 법을 무시해도 아무런 처벌을 받지 않고, 불법파견 노동자만 집단해고를 당하고 투쟁하다 구속되는 등 일방적으로 피해를 보는 일이 지금도 반복되고 있다”며 “불법파견 문제를 보면 ‘무전유죄, 유전무죄’의 현실을 절감하게 된다”고 말했다. 그는 “강한 처벌이 없으니 불법파견이 활개를 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현행 파견법에는 불법파견을 하면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2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규정돼 있다. 죽는 것 빼고 다해본 노동자들
해고·사내하청에서 못 벗어나 더 큰 문제는 노동부가 불법파견이라고 판정한 사업장에 대해 검찰이 계속 ‘무혐의’ 처분을 하자, 노동부가 아예 불법파견을 인정하는 데 인색해졌다는 점이다. 분명한 불법파견인데도 기준을 엄격하게 적용하는 바람에 노동현장에서 불법파견이 만연해지고 있는 것이다. 케이티엑스(KTX) 여승무원 사례가 그 전환점으로 꼽힌다. 서울지방노동청은 2006년 9월 집단해고에 맞서 투쟁중이던 케이스엑스 여승무원에 대해 “불법파견이 아니다”라고 결정했다. 서울노동청 결정에 실낱같은 기대를 걸었던 여승무원들은 절망했고, 주저앉아 통곡했다. 이 사건에 대해 서울고법은 올 8월, 케이티엑스 여승무원들이 한국철도공사(코레일)를 상대로 낸 근로자지위확인 등 청구소송 항소심에서 1심과 같이 “여승무원은 철도공사 직원”이라고 판결했다. 법원은 “여승무원들이 소속된 철도유통은 사업 독립성을 갖추지 못한 철도공사의 일개 사업부로 기능했다”며 노동부의 5년 전 판단을 완전히 뒤집었다. 법원은 단순한 지휘·감독 관계가 인정되는 불법파견을 뛰어넘어, 여승무원들은 처음부터 철도공사 직원이었다고 판결했다. 여승무원들이 소속된 하청업체는 독립된 사업체가 아닌 철도공사의 한 부서로 볼 수 있을 만큼 실체가 없었다는 얘기다. 노동부의 결정이 얼마나 허술했는지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죽는 것 빼고 다해본 노동자들
해고·사내하청에서 못 벗어나
정부의 소극적인 태도는 통계로도 확인된다. 노동부가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이미경 민주당 의원에게 낸 ‘사내하도급 실태점검 결과’를 보면, 2007~2009년 정부는 모두 1339개 원·하청 업체를 대상으로 조사를 벌여 7개 업체에 대해 불법으로 판단했다. 이 가운데 사법처리를 위해 검찰에 송치한 업체는 1곳(벌금 70만원)에 불과했다. 이는 2004~2006년 정부의 실태조사 결과와 대비된다. 노동부는 이 기간에 모두 2720개 원·하청 업체를 대상으로 실태 점검을 벌여 507개 사업장을 법 위반 사업장으로 판단했다. 이 중 253개 사업장이 형사처벌을 받았다. 이미경 의원은 “노동부가 불법파견 문제에 손을 놓은 것이나 마찬가지”라며 “사내하청을 사용하고 있는 노동현장에서 불법파견이 만연돼 있을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김소연 기자 dand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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