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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1.10.10 08:32 수정 : 2011.10.10 08:32

전남 순천시 해룡면 ‘율촌 산업단지’에 있는 철강업체 현대하이스코 순천공장. 이곳에서는 정규직노동자 393명과 사내하청노동자 500명이 함께 일을 하고 있다. 김소연 기자

‘나쁜 일자리’ 사내하청 ① 나쁜 일자리 만드는 재벌

일자리는 복지의 기본이다. 우리 사회에서 ‘좋은 일자리’ 만들기가 주춤하고 있는 데는 사내하청이 중요한 원인으로 꼽힌다. 사내하청은 고용불안과 열악한 노동조건으로 ‘나쁜 일자리’를 대표한다. 그동안 ‘좋은 일자리’를 만들어 내던 대기업과 공공부문에서 사내하청은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실태와 원인, 해법을 다섯 차례에 걸쳐 살펴본다.

현대하이스코 순천공장 실태

전남 순천시 해룡면 ‘율촌 산업단지’에 있는 철강업체 현대하이스코는 순천의 상징적인 기업이다. 2008년 에스피피(SPP)에너지가 율촌단지에 들어오기 전까지 10년 동안, 이 회사는 순천의 유일한 대기업이었다. 순천 젊은이들이 ‘외지’로 떠나지 않고 고향에 터를 잡으려면 일자리가 절실했다. 현대자동차그룹 계열사인 현대하이스코의 ‘순천 입성’은 순천을 설레게 했다.

순천에서 태어난 박강식(가명·34)씨는 올해로 6년째 현대하이스코로 출근하고 있다. 하지만 현대하이스코 직원은 아니다. 그는 입사하고 나서야 자신의 ‘신분’이 다르다는 것을 깨달았다. 작업복부터 달랐다. “일주일이 지난 뒤 같이 일하는 형님(정규직)한테 물어보니 저보고 하청이라고 했습니다.” 박씨의 일터는 수백도의 열기가 뿜어져 나오는 용광로다. 강판을 아연으로 도금하는 공정인데, 삽을 들고 용광로에 떠다니는 불순물을 없애는 일을 한다. 불순물을 제대로 없애지 않으면 불량이 나기 때문에 늘 긴장을 해야 한다. 박씨의 업무는 ‘아연도금강판’을 만드는 데 없어서는 안 되는 일이다.

둘 중 하나 사내하청 노동자
월급 절반수준에 해고 불안

박씨의 낡은 작업복에는 유난히 구멍이 많다. 뜨거운 아연이 튀어 옷을 뚫었고, 그의 살도 녹였다. 박씨의 몸에는 수십개의 화상 상처가 있다. 아연을 막을 수 있는 특수 작업복을 요구했지만, 하청업체는 “돈이 없다”며 거절했다. 용광로 작업은 박씨와 같은 하청노동자들이 3조3교대로 돌아가면서 맡는다. 새벽 6시30분~오후 2시30분, 오후 2시30분~밤 10시30분, 밤 10시30분~새벽 6시30분 근무조로 나뉘는데, 5일마다 근무시간이 바뀐다. 근무조가 바뀌는 날은 부담이 크다. 아침 근무조의 경우 새벽부터 일하기 시작해 오후 2시30분 일을 끝내고, 낮에 잠시 잠을 잔 뒤 밤 10시30분에 다시 출근해 밤을 새워야 하기 때문이다. 젊은 그도 머리가 멍해지기 일쑤다. 박씨가 한달에 받는 월급은 평균 150만~160만원(실수령액)이고, 상여금이 있는 달(1년에 4번)에는 190만원을 받는다. 그는 “공장 밖을 나서면 2011년인데, 공장 안에 있으면 1970년대를 사는 것 같다”며 “그만두고 싶을 때도 많았지만 두 아이(7살, 5살)를 생각해 견디고 있다”고 했다.

용광로 작업 등 힘든일 배치
특수작업복 안줘 화상 일쑤


정규직은 다르다. 아연도금 공정에서 정규직은 강판 두께에 따라 작업 속도를 조절하는 자동화 시스템을 맡는다. 하청노동자 박씨의 눈에는 정규직들이 ‘버튼만 누르는 사람’으로 보인다. 휴게실도 차이가 있다. 박씨는 “정규직 휴게실은 에어컨이 두개나 있고 (방음 처리가 돼) 귀마개를 하지 않아도 조용하다”며 “사내하청 휴게실은 소음이 너무 심해 대화를 하려면 목이 아플 지경”이라고 했다. 게다가 정규직은 4조3교대다. 정규직들이 한 달에 8번 쉬는데, 하청노동자는 최대 4번만 쉴 수 있다. 그마저도 하청노동자들은 인력이 부족한데다 적은 월급을 보충하려면 돈도 더 벌어야 해 2번만 쉬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노조 사무실도 정규직은 공장 안에 있지만, 하청 노조는 공장에서 차를 타고 20분가량 걸리는 외곽에 있다.

휴게실 소음탓 대화 어렵고
노조사무실도 회사서 20분

현대하이스코 순천공장은 원청(정규직) 노동자가 393명인 반면 사내하청 노동자는 107명이나 많은 500명(13개 업체)이다. 직원 2명 중 1명 이상이 하청노동자인 셈이다. 현대하이스코 당진공장은 원청이 580명, 하청이 426명(10개 업체)이고, 울산공장은 생산직(300여명)의 경우 정규직은 한 명도 없고 100% 사내하청으로 채워져 있다. 울산공장의 정규직들은 당진과 순천공장으로 옮겨왔다. 현대하이스코 비정규직노조 관계자는 “순천공장의 경우 정규직은 울산 출신들이 많고, 사내하청 노동자는 대부분 순천 출신”이라며 “대기업이 순천에 들어와 기대가 컸는데, 비정규직만 늘린 꼴”이라고 말했다.

이 때문에 지역사회의 시선도 곱지 않다. 순천에서 택시운전만 20년 넘게 해온 이만수(가명·51)씨는 “순천에서 현대하이스코가 가장 큰 기업인데, 6년 전 싸움(하청노조 파업)이 크게 한 번 나면서 하청이 고생을 많이 하고 있다는 것이 알려졌다”며 “겉은 멀쩡한데 속은 곪은 기업이라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하청노동자들은 공장에서 용광로 업무뿐만 아니라 크레인 운전 등 노동 강도가 센 일을 맡고 있으며, 전기·기계정비는 정규직 노동자들과 함께 하고 있다. 제품 포장 일을 하는 김길수(가명·39)씨는 “포장 업무에서도 정규직들은 자동화 시스템을 이용해 작업을 하지만 하청노동자들은 뛰어다니면서 손으로 직접 포장을 한다”고 말했다. 한승철 현대하이스코 비정규직노조 위원장은 “같은 공장에서 정규직보다 더 힘든 일을 하거나 비슷한 일을 해도 임금 등 노동조건이 정규직의 50~60% 수준”이라며 “또 하청노동자들은 현대하이스코 직원이 아니어서 늘 정규직 관리자들의 눈치를 보고, 주변 사람들에게 현대하이스코에 다닌다고 떳떳하게 말하지 못하는 등 심리적으로도 힘들게 지낸다”고 말했다.

“공장 밖은 2011년인데
공장 안은 1970년대다”

현대하이스코 하청노동자들은 노동조건의 차별뿐만 아니라 2005년엔 노조 설립 등과 맞물려 업체들이 잇따라 폐업을 하면서 120여명이 하루아침에 실직을 당하는 등 고용불안도 겪고 있다.

이렇듯 사내하청 노동자들은 늘 열악한 노동조건에 시달리지만, 현대하이스코의 당기순이익은 2008년 229억원에서 2009년 544억원, 지난해에는 1990억원으로 해마다 늘고 있다. 순천/김소연 기자 dand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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