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11.10.05 20:27 수정 : 2011.10.05 23:01

지난해 11월 ‘장군 폭행사건’이 일어나자 국방장관실을 출입하는 국정원 윤아무개 요원은 사건 배경과 전후 맥락을 담은 진술서를 작성해 상부에 제출했다.

‘전 정권 장교 살생부’ 논란
국정원 요원 진술서로 본 장성 폭행사건 실체

“김대업 고소 취하 종용받아”
폭행당한 장군, 요원에 진술

지난해 11월 일어난 현역 장성 폭행사건의 배경이 됐던 ‘전 정권 장교 살생부’ 논란이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폭행 피해자였던 ㄱ 장군이 국가정보원 요원을 만나 몇몇 장교들을 김대업 비호세력으로 지목했으며 당사자들이 인사상 불이익을 받았다고 밝힌 국정원 내부 문서가 외부에 공개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동안 풍문으로 떠돌던 ‘살생부’의 존재와 역할은 이보다 더 광범위한 것이라는 이야기들이 군 안팎에서 나오고 있다.

■ 상반되는 국정원 요원과 ㄱ 장군 주장 ‘전 정권 장교 살생부’ 논란은 지난해 11월 장군 폭행사태를 계기로 군 안팎에 공론화됐다. 이아무개 전 국정원 국방보좌관(예비역 준장)이 “왜 나를 김대업 비호세력이라고 음해하느냐”며 ㄱ 장군에게 항의하다 주먹질로 이어진 것이다. ㄱ 장군은 이 전 보좌관 등에게 “기관이나 정치권이나 군 수뇌부에 (누가 김대업 비호세력이라는) 그런 얘기를 한 적이 없다”며 항변했다. 또 육사 동기인 ㅈ 대령에게도 “네가 김대업 비호세력이라니 처음 듣는 말이다”, “김대업 비호세력이라고 기관에 얘기해 피해를 입혔다는 것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고 여러차례 강조해왔다.

하지만 윤아무개 요원의 진술서 내용은 다르다. 윤 요원은 진술서에서 정보의 출처가 ㄱ 장군이라고 밝힌 뒤 “ㄱ 장군이 이런 사실을 토로해 속으로 많은 충격을 받았다”, “ㄱ 장군이 (그 이야기를) 저에게 털어놓을 수 있었던 것은 저에게 쌓인 작은 신뢰와 애정이 바탕이 되지 않았나 생각한다”고 밝혔다.

사안의 성격상 윤 요원이 ㄱ 장군이 하지도 않은 말을 상부에 보고했을 것으로 보긴 어렵다. 그럴 만한 이유도 없고, 고소 취하를 종용한 것으로 지목된 이들이 그 사실을 털어놓을 이유는 더더욱 없기 때문이다.

(*클릭하면 더 큰 이미지를 볼 수 있습니다.)
■ 당사자 해명도 없이 인사 불이익? ㄱ 장군은 폭행사건 당시 “내가 그런 말을 하고 다니지는 않았으나 고소 취하 종용은 사실”이라고 주장했지만, 고소 취하 종용 당사자로 지목된 이들은 한결같이 그 자체를 부인한다. ㅈ 대령은 고소 취하를 종용하기 위해 식사자리를 함께 한 사실 자체가 없는데 음해를 당했다며 억울해하고, 이 전 국방보좌관과 김아무개 준장은 ㄱ 장군과 셋이 함께 식사는 했지만, 이는 “육사 후배인 ㄱ 장군이 김대업 사건으로 마음고생한다 하여 격려하기 위한 자리였다”고 말했고, 만난 시기도 ㄱ 장군의 주장과 달리 ㄱ 장군이 김대업을 고소한 직후가 아니라고 반박하고 있다. 이 전 국방보좌관은 “이명박 정부 출범과 동시에 새로운 정치적 기회를 엿보게 된 ㄱ 장군이 자신의 존재를 좀더 과시하기 위해 벌인 짓”이라고 주장했다.

문제는 이렇듯 양쪽 주장이 엇갈리는데도, ㄱ 장군의 일방적인 주장에 근거해 당사자들이 인사상 불이익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는 점이다. 군의 한 소식통은 “ㄱ 장군이 김대업 비호세력으로 거명한 장교들은 국방부와 합동참모본부의 요직을 거친 진급 유력자들이었다”며 “하지만 ㄱ 장군의 주장이 나오자 권력을 등에 업고 조직적으로 대선에 개입한 ‘좌파장교’라는 낙인이 찍혀 진급에서 탈락하는 원인으로 작용했다”고 말했다. 윤 요원의 진술서에도 ㄱ 장군은 ‘아직도 좌파장교들이 득세하고 있다’며 이들에 대한 비난을 퍼붓고 있다는 내용이 언급돼 있다.

윤 요원 또한 진술서에서 고소 취하 종용을 확실한 사실인 것처럼 사건 당시 보고서를 올렸다고 밝혔다. 결국 윤 요원에게서 이런 이야기를 전해 들은 합참 담당 이아무개 국정원 요원이 사실관계를 확인하려 하는 과정에서 뒤늦게 이런 사실을 알게 된 이 전 국방보좌관이 ㄱ 장군에게 항의하며 주먹을 휘둘렀다. 이 요원은 결국 직무상 취득한 비밀을 누설한 혐의로 국정원에서 중징계를 받았다.(<한겨레> 5월12일치 6면) 그러나 이 요원은 “보호할 가치가 없는 ㄱ 장군의 음해성 주장이 왜 기밀이냐”며 징계에 반발해 행정안전부에 소청을 제기하는 등 이 문제는 국정원 내 분란으로도 이어졌다.


당사자들 “음해” 반발했지만
일방 주장만 인사반영 의구심

■ 청와대 개입 어디까지? 윤 요원은 진술서에서, 지난해 11월 폭행사건 뒤 기무부대장, 국방부 인사복지실장, 국방부 검찰단장 등과 함께 자신도 현장에 출동했으며 “국방부 인사복지실장이 당시 사안의 심각성을 주장한 데 이어 며칠 뒤에는 청와대 인사비서관실에 관련 내용을 구두 보고한 사실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폭행사건이 곧바로 청와대에 보고됐다는 것인데, 그 대상이 인사비서관실이란 점이 의구심을 불러일으킨다. 통상 이런 사건·사고는 민정수석실 업무이다.

이 때문에 장군 폭행사건을, 청와대 선에서 진급 배제라는 인사상 불이익을 주는 정도로 정리한 것 아니냐는 의구심이 나올 법하다. 윤 요원이 올린 보고서가 국정원 보고서라는 점에서 이를 인사에 반영할 수 있는 곳은 국방부가 아닌 청와대였을 것이기 때문이다. 국방부를 넘어서는 ‘윗선’ 차원에서 뭔가 조율이 이뤄졌을 가능성이 큰 셈이다.

군기 문란도 문제점으로 지적될 만하다. 윤 요원은 진술서에서 ㄱ 장군이 “과거 10년에 걸친 좌파정권이 보수정권으로 바뀌었는데도 과거 좌파정권 시절 득세를 하였던 세력들이 여전히 군내에 포진되어 있는 심각한 상황이라고 규정”했으며 “(이를 개혁하기 위해서는) 국방장관의 의지가 가장 중요한데 김태영 장관이 군인사에 대한 개혁의지가 없으며 어떻게 하면 욕을 먹지 않을까 하고 ‘좋은 게 좋다’는 식으로 모든 것을 덮는 데 주력하고 있어 군내 개혁이 요원하다”고 주장했다고 밝히고 있다. 이게 사실이라면, 현역 장군이 정보기관원을 만나 자신의 상관인 장관을 비난한 셈이다.

윤 요원은 진술서과 관련한 <한겨레>의 질문에 “내 진술서를 직접 봤느냐”고 되물은 뒤 “그 사안에 관해서는 할 말이 없다”고 말했다. 그는 기자의 거듭된 질문에 “정보활동이란 게 알려져서는 안 되는 일인데, 이 모든 게 (정보 누설 혐의로 징계를 받은) 이아무개 요원 때문에 벌어진 일”이라며 입을 닫았다.

이순혁 기자 hyuk@hani.co.kr

광고

브랜드 링크

기획연재|한겨레 in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