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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1.07.28 21:00 수정 : 2011.07.28 22:13

[한겨레in] 제주 강정마을의 분노 ③ 구럼비 바위의 꿈

강정마을 앞바다의 아침은 고요하다. 눈을 비비며 일어난 몇몇 사람은 아무 말 없이 구럼비 바위 끝으로 걸어간다. 바위에 앉아 하염없이 바다를 본다. 10여명은 나무판자로 짠 무대 위에 맨발로 올라 100배를 올린다. 바위 치는 파도 소리는 오직 은은할 뿐, 그들의 명상과 기도를 방해하지 않는다.

그들은 강정천 계곡에서 몸을 씻거나 구럼비 바위 틈 용천수에 얼굴을 닦는다. 톱밥 뿌린 친환경 화장실에서 볼일을 보고, 차양막으로 둘러친 공동식당에서 친환경 채소와 갓 잡은 생선으로 밥을 먹는다. 한끼 30~50인분의 쌀과 부식은 전국의 이름없는 시민들이 보내준다.

7월 들어 일부 정치인·언론은 “외부 종북세력이 강정마을에 버티고 있다”고 비난했다. 구럼비 바위 근처 농성장에 가면 그 세력의 실체를 알 수 있다. 바위 근처 300여m에 걸쳐 크고 작은 텐트 10여개가 있다. 강정마을에 하루 이상 머무는 사람들의 숙소다. 일부는 마을회관 등에서 잠을 잔다. 7월 들어 새로운 텐트가 계속 생기고 있다. 대부분 1인용 텐트다. 마을을 찾는 사람들이 직접 들고 왔다. 한달 전, 주민들은 비닐하우스 3개를 이어붙여 대형 텐트를 만들었다. 텐트를 챙기지 못한 ‘외부 세력’을 배려했다. 외지인들이 밥을 먹는 공동식당도 마을 주민 김종환(55)씨가 운영한다.

구럼비바위 근처 농성텐트엔 시민·활동가·외국인 잇단 발길
전국으로, 해외로 소식 전하며 투쟁하는 주민들과 마음 나눔

지난 25일 낮 강정마을의 ‘구럼비 바위’ 모습. 주민들과 시민활동가들이 세운 ‘해군기지 결사반대’ 깃발이 펄럭이고 있다. 서귀포/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7월28일 현재 60~80여명의 ‘외지인’이 강정마을에 머물고 있다. 이들은 바닷가 텐트에서 먹고 자고 명상하며 토론한다. 그들은 강정마을 사람들과 어울려 함께 산다. 26일 기독교 대학생 동아리 회원 17명이 사흘 예정으로 구럼비 바위에 왔다. “우리는 오직 평화롭게 지내야 합니다.” 대학생들은 김종일 전 평통사 사무처장의 당부를 주의깊게 들었다. 28일 낮 20대 여성이 마을을 찾았다. “강정마을 주민이 되려고 해요.” 그는 마을회관을 찾아와 말했다. 대구 출신의 그는 마을 소식을 외부에 전하는 일을 해보겠다고 자처했다. 여성단체가 기증한 천연 모기퇴치제를 뿌리며 그 역시 고요한 아침을 텐트에서 맞을 것이다.


마을에 머물고 있는 외지인 가운데 시민단체 상근자는 10여명이다. 나머지는 평범한 시민이다. 유동인구가 많아 정확한 통계를 내긴 어렵지만, 일주일 이상 머무는 사람 30여명, 사나흘씩 머물다 떠나는 사람 30여명, 하루 단위로 잠깐 방문하는 사람 20~40여명으로 추산된다. 그들 대부분은 언론·인터넷·트위터 등을 통해 해군기지 문제를 접하고 스스로 마을을 찾아온 사람들이다. 그들의 직업은 대학생, 교사, 주부, 화가, 영화감독 등을 망라한다.

외국인들도 구럼비 바위로 온다. 왕유촨(26)씨는 대만인이다. 한국인 친구를 통해 강정마을을 알게 됐다. 타이완대 경제학과를 졸업한 그는 7월 초에 강정마을에 왔다. 9월 말까지 머물 생각이다. 그의 얼굴은 이미 까맣게 그을렸다. 토요일 밤마다 구럼비 바위에서 열리는 작은 음악회를 좋아한다. 그는 대만의 2·28 사태를 이야기했다. 1947년 2월28일 시작된 대규모 반정부 시위를 진압하는 과정에서 2만여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그 사건을 공부하면서 전쟁과 평화에 대해 관심이 생겼다”고 그는 말했다. 그는 강정마을을 보며 대만 2·28 사태를 떠올린다.

“외부 종북세력”으로 매도당하는 그들의 참여는 지친 주민에 활력
평화 위한 순례자들은 오늘도 “생명 꿈꾸는 강정마을” 염원

25일 강정마을에 온 데이비드 바인 미국 아메리카대학 교수(인류학)는 공동텐트에서 사흘을 묵었다. 세계 곳곳의 미 해군기지를 찾아다닌다는 그는 “미 해군이 폭력적으로 자리를 잡는 곳에서 사람들이 어떻게 저항하는지 기록하려고 왔다”고 말했다. 그는 강정마을 소식을 외교전문 웹사이트 ‘포린폴리시 인 포커스’(www.fpif.org )에 기고할 예정이다. 28일 밤에도 정치학·인류학·환경학 등을 전공하는 미국인 교수 4명이 강정마을을 찾았다. 외국인들은 육지의 한국인들보다 더 빨리 강정마을 주민과 한마음이 됐다.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는 “세계 평화단체를 중심으로 강정마을에 대한 관심과 우려가 확산되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 26일 오전 천주교 제주교구 신부들과 문정현 신부(단상 맨 오른쪽)가 제주 서귀포 해군기지 예정지인 구럼비 바위에서 신자들과 함께 미사를 올리고 있다. 서귀포/김태형 기자

강정마을을 향한 본격적인 순례는 지난봄 시작됐다. “4년에 이르는 긴 투쟁으로 주민 대부분이 주눅들고 침체하여 절망적인 상황이었는데, 봄부터 새로운 활력이 생겨났다”고 강동균 마을회장은 당시를 회고했다. 3월1일 도법 스님이 강정마을에서 ‘생명평화순례’를 시작했다. 뒤이어 설치미술가·다큐제작자·소설가 등 문화예술인들이 강정마을을 찾았다. 그들의 글과 영상은 인터넷을 통해 번졌다. 시민들은 강정마을 주민을 후원하는 트위터모임인 ‘강정당’을 만들었다. 4월부터는 직접 마을에 찾아와 머물겠다는 사람들이 생겼다.

기지 건설을 맡은 해군기지사업단 주요 인사는 대부분 제주 출신이다. 뭍사람을 불신하는 제주도 정서를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해군기지 건설에 반대하는 시민들은 대부분 육지에서 왔다. 강정마을 사람들은 그들과 어울려 매일 밤 촛불집회를 열고 있다. 뭍사람과 섬사람을 구분하는 제주 특유의 정서는 강정마을에서 다른 방식으로 표현된다. 김종일 평통사 사무처장은 “처음에는 (외지인이라며) 경계하는 이도 있었지만, 지금은 부담스러울 정도로 신뢰를 받고 있다”고 말했다. 김 처장은 “해군기지를 절대로 건설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지만, 강정마을 주민들이 뜻을 모아 결정을 내리면 당연히 그에 따를 것”이라고 말했다.

구럼비 바위에 둥지를 튼 사람들은 ‘부안 방폐장 거부 운동’을 자주 입에 담는다. 전북 부안에 방폐장 건설을 강행하려던 정부는 지역 주민의 반발과 시민단체의 비판을 받아들여 다시 전국적인 여론 수렴을 거쳐 방폐장 터를 경주로 옮겼다. 지역 주민이 반대하고 평화·생태의 미래가치에 걸맞지 않다면 대형 국책사업 역시 시민사회의 공론장에서 재검토해야 한다는 점을 입증한 사례다.

그런 것까지 깊이 고민하지 않고 그저 구경하고 놀다 가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28일 오후 구럼비 바위 근처 나무벤치에 초등학교 1학년 여자아이가 앉았다. 달랑달랑 발을 흔들며 노래 불렀다. “여기는 강정, 생명 푸른 마을/ 두리둥실 한마음으로 살리세.” 아이는 서귀포 남원읍에 산다. 강정마을 주민이 아니다. 30대 후반인 엄마 손을 잡고 매일 구럼비 바위에 온다. 엄마가 농성자들에게 줄 음식을 만들면, 아이는 또래 친구들과 어울려 ‘강정마을 노래’를 부르며 논다. 강정마을 주민이 아니라 해도 그 노래를 부를 권리는 누구에게나 있다. <끝> 서귀포/안수찬 기자 ahn@hani.co.kr

곽영신 민보영 인턴기자


야당, 공사중단뒤 민-관기구서 논의 추진

5당 석달간 현장·자료조사
다음달초 보고서 발표예정

민주당·민주노동당·창조한국당·진보신당·국민참여당 등 야5당은 8월 초 ‘제주 해군기지 진상조사 보고서’를 발표할 예정이다. 강정마을 구럼비 바위에 시민들이 모여들던 지난 4월, 한나라당을 제외한 각 정당은 해군기지 진상조사단(단장 이미경 의원)을 구성해 활동에 들어갔다. 3개월 동안 현장 및 자료 조사를 벌였다.

보고서 내용은 아직 공개되지 않았다. 진상조사단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하면 기지 건설의 절차상·내용상 흠결을 집중적으로 제기하는 내용이 될 것으로 보인다. △정부의 책임 회피로 인해 갈등이 증폭했고 △제주 해군기지 건설이 해군력 증강에 결정적으로 도움이 된다는 확고한 증거가 부족하고 △강정마을에 대한 과학적 입지 조사가 결여되어 있으며 △포구가 협소한 강정마을은 오히려 전략기지 터로 부적절하다는 것이다.

대안에 대해서는 조사단 내부에서 막판까지 고심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해군기지 주요 쟁점을 논의·합의하는 민관 합동기구를 설치하고, 관련 논의가 진행되는 동안 공사를 중단하자는 것에는 대체적인 동의를 이뤘지만, ‘제대로 된 주민투표를 실시하여 최종 결정하자’는 의견과 ‘기지 건설 자체를 전면 재검토하자’는 의견 사이에서 절충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는 게 조사단 관련자들의 증언이다.

뚜렷한 갈피를 잡지 못하는 정치권에 비해 강정마을은 하루하루 긴박하다. 고유기 제주참여연대 사무처장은 “29일께 서귀포시가 중덕해안 농로를 용도폐기하는 결정을 내릴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기지 터인 동시에 농성장인 구럼비 바위에 이르는 농로는 하나뿐이다. 이를 용도폐기하면 주민 출입이 불가능해진다. 고 처장은 “이르면 다음주에 농로 출입을 막고 기지 부지 전체를 둘러싸는 펜스를 설치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마을 분위기는 갈수록 흉흉해지고 있다. 올해 68살인 주민 김기혁(가명)씨는 “우리가 가진 것은 몸뚱이밖에 없으니, 그냥 땅바닥에 드러눕고 경찰에 끌려가고, 풀려나오면 다시 공사장에 달려가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서귀포/안수찬 기자 ah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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