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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1.07.27 20:59 수정 : 2011.07.28 16:44

강정마을의 해군기지 예정 터에 대한 행정대집행이 예고된 26일 밤 주민들과 시민활동가들이 강정마을의 해군기지건설사업단 앞에서 반대 뜻을 함께 하는 촛불문화제를 열고 있다. 서귀포/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한겨레in] 제주 강정마을의 분노 ② 기지의 정체
찬성은 이 슈퍼 반대는 저 슈퍼로…해군기지가 원수

제주 강정마을에 추진되는 해군기지를 둘러싼 군사적 논란의 핵심은, 이 기지가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미군의 전초기지로 활용되느냐 여부다. 제주도가 남중국해-동중국해-센카쿠열도-대만해협-서해로 이어지는 미-중 ‘갈등의 바다’의 축선에 위치해 있기 때문이다. 이런 ‘전략적 요충지’의 미군기지화 가능성을 두고서는 기지 건설 찬반 양쪽의 논리가 팽팽하게 대립하고 있다.

제주, 미-중 ‘갈등의 바다’ 위치…기지 성격 둘러싸고 논란 팽팽

제주 해군기지 건설을 추진하는 정부와 해군은 우리나라 수출입물자 대부분이 오가는 길목인 제주 남방해역의 해상교통로 확보와 함께 향후 해양분쟁 발발 때 신속한 대처를 위해 기지 건설이 필수적이라고 주장한다. 이어도 영유권, 제주 해역 대륙붕 경계 획정 등을 두고 주변국과 분쟁이 일어날 수 있는데, 이때 유리한 고지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배타적경제수역(EEZ)에 근접한 기지가 있어야 한다는 얘기다. 이어도는 영토를 기준으로는 우리나라(제주도)와 제일 가깝다. 그러나 해군기지를 기준으로 하면 부산(해군 작전사령부)은 일본의 사세보나 중국의 상하이보다 이어도에서 더 멀리 위치해 있다.

해군기지를 반대하는 쪽은 제주도와 그 남방해역에 외부의 심각한 군사적 위협이 존재한 적이 없으며 현재도 마찬가지라고 반박한다. 해군기지 건설이 되레 중국의 견제를 불러일으켜, 긁어 부스럼 만드는 격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는 “현재 위협이 없다고 미래에도 없으리라는 보장은 없다. 하지만 미래의 불확실한 위협에 대비한다는 명분으로 제주 해군기지 건설을 강행하면 오히려 불확실한 위협을 확실한 위협으로 만들 우려가 있다”며 “전략적 자산이 아니라 전략적 부담만 떠안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제주 해군기지의 미군 사용 가능성을 두고서는 더욱 첨예한 의견대립이 있다. 일단 해군은 “한-미 동맹을 위한 미 군함 출입항 기지와 시설은 부산과 진해에 있으며, 제주에는 미군을 위한 시설은 단 하나도 들어서지 않는다”고 강조한다. 미 군함이 제주 해군기지에 기항할 수야 있겠지만, 미 해군의 베이스캠프가 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신인균 자주국방네트워크 대표도 “미군기지로 활용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강조한다. 요코스카와 오키나와 등지에 대형 해군기지가 있는데, 굳이 전단급 규모의 소형 기지인 제주 해군기지로 미군이 들어올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신 대표는 “기지로 사용하기 위해서는 항구뿐만이 아니라 보급기지와 주거지역 등 배후시설이 필요한데 제주 해군기지는 그럴 만한 규모가 안 된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욱식 대표는 “소파(SOFA·주한미군 주둔군 지위협정) 규정상 미국이 요구하면 사용하도록 할 수밖에 없는데, 미국이 해양에서는 전략적 중심축을 대서양에서 태평양으로 옮기고 있다”며 “미국이 아시아-태평양 지역 해군력을 증강한다면 그만큼 해군기지 수요도 커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평화와 통일을 여는 사람들’ 고영대 공동대표도 “노무현 정부 시절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을 허용해줬는데, 그 전략적 유연성의 육지에서의 발판이 평택기지라면 바다에서의 발판은 제주 해군기지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강정마을 해군기지 예정 터인 구럼비해안의 철조망에 예쁘게 걸려 있는 나무 팻말들. 기지 건설을 반대하는 마음을 글로 새겼다(위쪽). 26일 밤 촛불문화제를 마친 주민들과 참가자들은 해군기지건설사업단에서 중덕삼거리까지 촛불행진을 벌였다. 서귀포/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반대쪽 “미사일방어체제 염두…도리어 중국의 견제만 부를 것”

정부쪽 “규모 작아 활용 못해 영유권분쟁때 유리한점 있어”

미국의 기지 사용 우려는 미사일방어(MD) 체제 참여에 대한 의구심으로 이어진다. 기지 건설에 반대하는 인사들은 지난해 미국과 해상 엠디 훈련을 벌인 바 있고, 공동연구 약정까지 체결할 정도로 한국과 미국 사이 엠디 논의가 진전되고 있다며 괌이나 오키나와 미군기지를 겨냥한 미사일을 요격하는 시설이 제주 해군기지에 구축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해군은 “노무현 정부, 이명박 정부 모두 한결같이 미국 주도 엠디 체계에 동참하지 않겠다는 공식 입장을 여러 차례 밝혔거니와 강정항에 정박할 이지스함은 미사일 요격 능력이 없어 제주 해군기지와 엠디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반박한다.

문제는 양쪽 사이에 합리적인 대화와 합의가 어렵다는 점이다. 심지어 같은 사안이 서로 다른 주장을 펴는 근거가 된다. 기지를 반대하는 쪽은 이명박 정부 출범 뒤 한-미 동맹 강화가 이뤄지면서 “결국 엠디에 참여하게 될 것”이라고 주장하는데, 기지 추진을 찬성하는 쪽은 “한-미 동맹을 가장 중시하는 이명박 정부도 엠디에 참여하지 않는다고 하지 않느냐”고 말한다. ‘중국의 반발’도 마찬가지다. 기지를 반대하는 이들은 “결국 미군이 들어오면 중국이 반발하고 긴장이 고조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찬성하는 쪽은 “중국이 반발할 테니 미군이 제주 기지로 들어올 리 없다”고 반박한다.

한국 해군기지와 제주 기지의 전략적 위치/제주 해군기지 개요

첨예한 대립, 타협전망 ‘캄캄’ 정부·군, 대화 통한 해결 소극

이렇듯 쳇바퀴 돌듯 논의가 풀리지 않는 것은, 양쪽 모두 상대방에 대한 불신을 깔고 있는데다 서로 주장이 맞부딪치는 대목이 미래 전망에 관한 것들이기 때문이다. 현재의 사실관계라면 객관적인 옳고 그름의 규명이 가능하지만, 각자의 프레임으로 미래를 읽다 보니 타협이 쉽지 않다.

사실 한-미 동맹 체제 아래서 미 7함대가 해상교통로 보호와 전시 해상통제 등 주도적 임무를 수행했다면 한국 해군은 연안방어 위주의 보조적 임무를 수행해왔다. 그러던 게 미국의 안보전략상 변화와 중·일 등 주변 강대국들의 해군 군사력 확충, 한국의 국력 신장 등이 맞물리며 한국 해군에게 좀더 적극적 역할이 요청됐다. 제주 해군기지 또한 이런 흐름에서 진행되는 프로젝트다. 하지만 기지와 관련한 부정적 의견이나 전망이 제기된다면 이들과 최대한 대화를 하고 적절한 설명을 통해 우려를 불식시키는 것은 사업을 추진하는 쪽의 몫이다. 하지만 지금 강정마을의 현실은, 이 부분에서 정부와 해군의 노력이 부족했음을 반증한다.

군사외교 전문지 <디앤디포커스> 김종대 편집장은 제주 해군기지 사업과 관련해 “군사 개발주의와 녹색 생태주의는 서로 대치할 수밖에 없는 관점들이긴 하다. 그런데 여기에 충분한 의견 수렴이나 체계적 설득, 타당성에 대한 조사 등도 모자랐다”며 “기무사령부 과천 이전 발표 때도 많은 반대가 있었지만 실제 이전 때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그때와 같은 갈등관리 기법이 왜 이번엔 적용되지 않았는지 모르겠다”고 아쉬워했다.이순혁 기자 hyuk@hani.co.kr


■ 대안은 있나

제주도·의회 “대타협 논의틀 마련”

구체 내용·시한 없는데다 정부·여당 강경해 ‘안갯속’

제주도와 제주도의회는 27일 오전, 3시간에 걸친 정책협의회를 열었다. 해군기지 문제를 집중적으로 의논하는 자리였다. 협의회 직후 제주도·제주도의회는 공동발표문을 통해 “해군기지 문제를 적극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논의 틀을 마련키로 하고, 구체적인 내용은 실무협의를 통해 확정한다”고 밝혔다. “평화적 해결 원칙이 존중돼야 한다”는 점도 강조했다.

공동발표문에는 지자체와 지방의회가 합심하고 정파간 장벽까지 뛰어넘어 ‘대합의’를 내와야 한다는 절박감이 담겨 있다. 우근민 제주도지사는 무소속이다. 도의회는 민주당 19석, 한나라당 12석, 민주노동당 3석, 국민참여당 1석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여러 쟁점을 두고 대립해온 지역 정치인들조차 해군기지 문제만큼은 합심해 해결해보자는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다. 그 바탕에는 중앙정부에 제주도 문제를 온전히 맡길 수 없다는 특유의 지역 정서도 흐르고 있다.

고희범 민주당 제주도당 해군기지특별위원장은 “정부와 강정마을 주민이 직접 대치하는 상황을 지속하면 심각한 충돌과 불상사가 일어날 수 있다”며 “제주도의 여러 정치 주체들이 협의체를 구성하여 새로운 대안을 정부와 해군, 제주도민, 지역주민에게 동시에 제시하고, 이를 함께 수용하는 과정을 밟아야 한다”고 말했다.

‘정치적 대타협’이 가능할지는 아직 미지수다. 제주도·제주도의회는 공동발표문 채택까지는 성공했지만, 공동 논의 기구의 구성방법·운영내용 등에 대해선 시한을 정하지 않은 채 “빠른 시일 안에 추진한다”고만 밝혔다. 경찰의 강경진압 기류도 완전히 진화하지 못했다. 제주도의회 오영훈 운영위원장은 “경찰이 철수하도록 도지사에게 역할을 요청했으나, 제주도 쪽이 도지사의 권한 문제 등을 들어 합의점을 내오지 못했다”고 말했다.

지역 정치권이 공동의 대안을 내놓는다 해도 정부와 주민이 이를 수용하는 데는 또다른 어려움이 예상된다. 기지 건설에 반대하는 주민·운동가 등은 기지 건설을 백지화하고 이미 국가에 수용된 부지에 ‘평화공원’을 만들자는 그림을 그리고 있다. 고유기 제주참여환경연대 사무처장은 “강정마을을 평화산업의 거점으로 육성하는 것이 군사기지를 짓는 것보다 훨씬 더 국익에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반면 한나라당 김무성 의원은 27일 해군기지 반대 농성자에 대해 “북한 김정일의 꼭두각시 노릇을 하는 종북세력”이라며 “공권력 실추가 계속돼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정부·여당의 강경기류를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서귀포/허호준 안수찬 기자 hojo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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